2017. 8. 3. 15:57

`비취록(秘聚錄)` - 조선 최고의 예언서를 둘러싼 미스터리

비취록 - 8점
조완선 지음/북폴리오

만 가지에 이르는 선대의 비결과 진인의 출현.

100년도 못사는 인간들이 그 내용을 믿기도 어렵고 사실이라 해도 그게 언제일지 그 시기의 기약조차 가늠할 수 없는 예언서 하나에 목숨을 걸 필요까지 있을까. 만약 진품일 경우라면 값이 꽤 나가는 물건이기에 돈 욕심이 나서 그럴 수는 있겠지만 그 예언서와 비밀을 밝히려는 사람들이 계속 죽어나가는 게 문제. .

고서점 운영자 2명, 스님 2명이 잇달아 죽음을 당하면서 이 사건의 급류에 휘말린 경찰과 고문헌 전공 대학 교수는 사건 해결과 강한 학문적 이끌림이라는 동기로 사태에 기꺼이 동참하는데 교수 입장에서는 징계 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라 백수와 교수 사이를 판가름하는 데에도 이 책이 필요해 더욱 필사적이다.

이런 소설의 배경으로 매우 적절한 계룡산. . 그리고 십승지(十勝地). 거기에 지어진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절 쌍백사. 이 절과 여기 중들이 수상하다! 뿐만 아니라 근처 사하촌의 주민들과 동네 전체에서 스며나오는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와 묘한 느낌을 주는 그들의 섬뜩한 눈빛들 ^ 人信一大十八寸. .

불교 종단에서 파견한 승려, 경찰 수사팀, 대학교수에 의해 하나씩 서서히 밝혀지는 사실들로 이들은 일제강점기 시절의 민족 종교였던 `보천교`와 관련이 있으며 거기서 지내던 제천의식을 치르며 뭔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과 여기에 동참하는 마을 주민들의 소리없는 움직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해방이 된지 벌써 70년이 흘렀소. 강산이 일곱 차례나 변했단 말이오. 허나 아무리 세월이 흐른들 무슨 소용이 있소. 국민의 피고름을 짜내는 모리배들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으니 말이오. 가진 자들의 탐욕은 늘어만 가고, 권력을 쥔 자들은 제 배만 채우려고 하니 이게 일제 때와 무엇이 다르겠소?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으로는 죄다 곪았을 것이오. 하루가 멀다하고 가정이 해체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그곳이 무간지옥과 무엇이 다르겠소. 예로부터 천하에 두려워할 것은 국민이라 했으나, 요즘 어떤 지도자가 국민을 두려워한단 말이오. 되레 국민 위에 군림하여 제 잇속만 채우려 하지 않소.

한 나라의 지도자라 함은 무엇이오? 무엇보다 국민을 편안하게 하고 국민 편에서 생각하고 국정을 펴야 하는게 아니오? 허나 지금의 상황은 어떻소? 그들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기는 커녕 그 눈물에서 피고름 짜내지 않소.

이게 다 지도자를 잘못 만난 까닭이오. 권력에 한번 맛들이면 탐욕에 눈이 멀게 되고 간신 무리들이 설쳐대며 국민은 안중에도 없게 되는 것이라오. 민란이 일어나는 까닭이 무엇이겠소? 이 모두가 탐관오리들의 탐욕 때문이 아니오?"

이전에도 도참설이나 예언은 있었지만 유독 조선시대를 지나면서 이런 예언서가 더 많아지고 회자된데에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까. 그렇다면 아마도 그건 조선을 백성이 아닌 사대부의 나라라고 여기며 세금과 군역의 의무를 회피한 양반 기득권의 가렴주구와 벼슬 아치들의 수탈에 갈수록 부담만 늘어갔던 백성들이 고통속에서 새 세상을 염원했던데에서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조선의 양반 사대부들에게 가장 큰 적폐와 누적되었던 병폐들은 첫째, 배워서 알고 있는 걸 실천하지 않았다. 둘째, 잘못된 걸 고치려고 하지 않았다. 셋째,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다. 이 책에서 `박열`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은 의외였고, 눈길이 가는 대목이었습니다. 그리고, 여담이자 개인적인 궁금증으로 과연 우리나라는 머지 않아 남북 통일이 될 것인가. 삼천 년의 약속, 그리고 앞으로 뻗은 5만년 운수의 대운은 현실이 될 것인가.

. . . 산문을 나오자마자 정처없는 유랑 길에 올랐다. 바람과 이슬을 벗 삼아 산천을 떠돌아다녔다. 모든 잡념을 떨쳐내니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하루에 한 끼 얻어먹으면 그것으로 큰 위안이 되었다. 그렇게 3년을 떠돌면서 세상을 보았다. 한마디로 요지경 같은 세상이었다.

가진 자들의 탐욕은 극에 달했고, 권력을 쥔 자들의 부패는 끝이 없었다. 돈과 물질, 자본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장악했다. 거기서 밀려난 사람들은 고통에 시달렸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가정이 파괴되고 보금자리를 잃었다. 발길 닿는 곳마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아비규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 .

천하에 두려워할 것은 오직 백성뿐이다. 무릇 하늘이 지도자를 세운 것은 백성을 돌보기 위함이다. - 호민론, 허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