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19. 18:43

<아버지들의 아버지> 인류 진화과정의 '빠진 고리'를 찾아서

아버지들의 아버지 - 상 - 6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열린책들

나는 인류가 왜 그리고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알고 있다. 달리 이름 짓기가 마땅치 않아서 우리가 흔히 '빠진 고리'라고 부르는 그것의 정체를 나는 안다.

미싱 링크(빠진 고리 ; Missing Link) : 진화의 어느 한 단계에 존재했다고 가정될 뿐 실제로는 화석이 발견되지 않은 생물종 일반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현생 인류와 그 조상 사이에 존재한다고 가정되는 중간 단계의 존재를 가리킨다.

출판된 지 꽤 오래된 책이지만 최근 출간된 <카산드라의 거울>과 일종의 연계성이 있다는 생각을 해볼 때 작가가 '카산드라의 거울'이라는 작품을 이미 예전부터 구상하고 있었겠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작품이 인류의 미래를 조명했다면 <아버지들의 아버지>는 인류의 까마득한 과거를 되짚어 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을 먼저 읽었더라면 '카산드라...'를 봤을 때 '아버지들...'을 떠올렸겠지만 나는 반대로 '카산드라...'를 먼저 읽었기 때문에 '아버지들...'을 읽는 동안 '카산드라...'와의 연계성에 대해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이 책 '아버지...'에서는 이후 나왔던 <뇌  - 궁극의 비밀(L'Ultime Secret)>에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의기투합했던 '이지도르 카첸버그'와 '뤼크레스 넴로드'가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뇌' 역시 '아버지...'보다 먼저 읽었으니 나는 작가의 작품들을 읽은 순서가 거꾸로 된 셈인데 이건 베르베르의 작품들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작가들의 책들 또한 이런 식으로 읽게 되었다.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쓴 저자들의 이전 작품을 찾아 읽는 것이 일종의 습관이 되었지만 독서를 많이 하게된 것이 최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 '카산드라...'에서 나온 주요 인물들 중 가장 중심적이었던 '카산드라 카첸버그'와 그의 오빠였던 '다니엘 카첸버그'라는 이름이 '아버지들...'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이지도르 카첸버그'와 모종의 어떤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어렵지 않게 해볼 수 있다. 과연 그들은 어떤 관계로 이어져 있을까...

학계에서는 300~400만년 전, 현 인류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가 처음으로 등장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그후 유구한 세월동안 진화의 과정을 거쳐 지금의 인류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것이 보편적인 이론이지만 과거 어느 시점에서 현재의 과학과 기술로 규명이 되지 않은채 지속적인 논란으로 남아 있는 소위 '미싱 링크(Missing Link)'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주 내용을 이루고 있다.

거의 유인원에 가까웠던 초기 인류가 오랜 시간동안 매우 느린 속도로 진화를 거듭해오던 와중에 어느 순간 현재의 인류와 유사한 종이 갑자기 등장을 하게 되었으며 그 사이의 단계는 규명이 되지 않은 채 지금도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누구도 그 기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속시원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고, 학자들은 그 기간을 '빠진 고리' 즉 미싱 링크라 부르고 있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이것을 밝혀 냈다고 주장하는 인류 고고학자가 등장했고, 곧이어 이야기의 시작과 함께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ㅡ.ㅡ

현재까지 인류 진화 이론 가운데 가장 유력한 것은 '진화론'을 주창한 찰스 다윈의 '적자 생존설'이다. 이와는 조금 의견을 달리하는 주장으로 자연의 환경에 가장 적합한 종의 개체가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거기에 점차 적응해 가면서 진화했다라고 하는 '환경 적응설'이 있고, 여기에 의견을 달리하는 천문학자들은 지구상 생물의 뿌리는 외계 박테리아가 존재했던 혜성의 지구 충돌로부터 기인한다는 '외계 기원설'을 내놓고 있다.

그 외에 가장 황당했던 다른 의견으로는 현 인류 모습 그대로 다른 행성에서 우주선을 타고 왔다는 것으로 놀랍게도 작가는 이 생각을 믿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이런 생각을 저술한 작품 '파피용(Papillon)'이 출간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남은 한 가지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이다.

15년 전 사람의 내부 장기와 가장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동물은 원숭이도 개도 아닌 바로 '돼지'라는 사실이 밝혀져 화제가 되었다. 또한, 인간에게 장기를 이식했을 때 가장 거부감이 없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그래서 사람의 장기 이식용으로 돼지를 사육한다는 얘기와 여기에 대한 반발로 동물 학대라는 논란도 생겼었다. 그러니까 그 '미싱 링크'에 해당하는 시기에 초기 인류가 어떤 계기로 인해 돼지의 조상에 해당하는 야생 짐승의 유전자 DNA와 교합하는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별별 일이 다 벌이지는 세상이라고 해도 이건 황당함을 넘어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아닐까. 그렇다고는 하지만 분명 이 내용이 불편함을 동반하면서도 흥미를 끄는 건 사실이고, 설득력 있는 주장도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다. 일례로 돼지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똑똑하고, 문제해결에 대한 지능이 높은 동물이기도 하다.

이 세상이 거대한 유전자의 실험실이라는 표현도 있다지만 왜 유독 다른 종의 짐승들에게서는 없었던 일이 사람에게는 일어났던 것일까.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건 정말 우연이었을까, 자유의지였을까.. 아니면... 어떤 실험...?? 책은 처음부터 '뇌'와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시간대의 두 가지 사건이 독립된 상태로 각각의 줄거리와 흐름을 끝까지 유지해 나간다. '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결론 부분에서 두 이야기가 만나지는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수십 ~ 수 백만년의 시차를 가지는 두 이야기가 어떻게 만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