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8. 10. 00:28

`먹고살기 너무 힘들어..... 부산은 제1의 껍데기 도시`

ㆍ부글부글 끓는 부산 민심

“원래 야도(野都)였습니더.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야당이 많이 될 낍니더.”

24일 오전 9시30분 부산역에서 내려 택시를 탔다. ‘부산 분위기가 어떠냐’고 묻자마자 47년간 택시기사를 해온 이종현씨(73)는 10여분간 한나라당을 성토했다. 그는 “젊은 사람이 없어진 부산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반한나라당 정서가 이전하고 다르다”고 말했다.

오전 11시 초량동 부산저축은행 본점을 찾았다. 농성 중인 피해자들은 때마침 민주당 의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울분을 쏟아냈다.

국회 저축은행 국정조사특위 위원들이 25일 부산 동구 초량동 부산저축은행 본점에서 피해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현장조사를 벌이고 있다. 부산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부산 국회의원들 몇이나 된다카는데 하나도 안 해주고”, “대통령은 콧방귀도 안하고”. 곳곳에서 눈물섞인 분노가 터졌다. 김말령씨(60)는 “75일째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많은 저명인사들이 다녀갔지만 6개월이 되도록 온 나라가 저축은행 사태로 쑥대밭이 됐는데도 유독 딱 한 사람은 오지 않는다”며 “그분은 6개월 동안 한마디 말도 없이 침묵만 하고 있다. 누구겠습니까. 여당 차기 대통령후보다. 부산에서는 차기는 선거 없다”며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비난했다.

25일 국회 저축은행 국정조사특위가 진행한 현장검증 때도 여당보다 야당의원 주장에 환호가 더 나왔다. 부산이 변하고 있다. 선거 개표 때마다 한나라당의 파란색으로 덮였던 보수도시가 야성(野性)을 드러내고 있다. 서민경제 추락은 끝없고 정부 정책에 대한 반감은 위험수위다. 동남권신공항 백지화-부산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건까지 겹치면서 ‘정치 도시’로 변한 부산은 민심 폭발의 임계점을 향하고 있었다.

24일과 25일 이틀간 접한 부산 민심은 절규였다. 자갈치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김모씨는 “먹고살기 힘들어 죽겠다”고 손을 내저었다. 서면 부전동에서 만난 조종운씨(48·택기기사)는 “부산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가 아니라 제1의 껍데기 도시지예”라며 “양산과 김해가 과거에는 부산의 위성도시였는데 지금은 거대한 소비도시로 변한 부산보다 차라리 살기 낫다”고 말했다.

경제지표도 최악 상황이다. 2009년 지역 내 총생산은 전국 16개 시·도 중 13위로 전년보다 0.6%포인트 감소했다. 2009년 실질 개인소득도 전국 평균은 0.5% 증가했지만 부산은 0.7% 감소했다.

청년실업률은 2010년 기준 8.0%로 전국에서 두번째로 높고 올해 상반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대전과 더불어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그 결과 부산인구는 2010년 11월1일 기준 341만여명으로 1995년 381만여명을 찍은 뒤 지속적인 감소세다.

민생의 어려움은 현 정부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졌다. 남포동에서 만난 정광명씨(52·자영업)는 “대통령은 시장에 가서 오뎅이나 먹으면서 서민쇼나 하면서 한 게 뭐가 있냐. 부자감세나 하고 부자들한테 좋은 정책만 하지 않았냐”며 “서민은 위장전입하면 바로 처벌받는데 이 정권의 장관들은 위장전입해도 문제없다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부산대 앞에서 만난 이미영씨(23)는 “이명박의 모든 것이 싫다”고 입을 닫았다.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반감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의 ‘객토’ 정서로 흐르고 있었다. 서면 부전시장의 분식가 게 주인은 “줄곧 한나라당을 찍었지만 이제는 절대로 안 찍을 낍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반한나라당 정서가 어디로 흐를지에 대한 전망은 달랐다. 서면에서 만난 김지영씨(32·직장인)는 “여당에 대한 불만이 과거와 달리 강하기 때문에 야당과 무소속이 잘하면 절반 이상 먹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초량동에서 만난 강재현씨(33·자영업)는 “한나라당은 찍기 싫지만 대안도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우리가 민주당을 찍기는 또 그런 게 있다”며 “정권이 민주당으로 했을 때 지역적으로 피해볼 수도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 좀 많다”고 말했다. 부산지역의 한 언론인은 “부산은 지금 한나라당에서 이탈한 민심이 선택지를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정치적 공백기’를 맞고 있다”며 “여당이든 야당이든 얼마나 새로운 인물을 내세우느냐가 총선 승패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총선이 인물중심 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아보이는 이유다. 부산저축은행 피해자인 김모씨(75)도 “도대체 정부나 한나라당이나 한 게 뭐가 있노”라면서도 “선거는 아직 많이 남았잖아. 누가 나올라칸지 몰라도 사람 보고 뽑아야 않겠냐”고 말했다.

경향신문 / 강병한, 박홍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