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0. 23. 11:54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 8점
김경일 지음/바다출판사

책을 읽는 내내 가려운 부분을 콕 집어 긁어주는 시원함에 이 책을 읽기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을 같이 적어봅니다. 몇 해 전부터 불거져 온 집안 제사 문제 때문에 '죽은 사람들 챙겨주려다 산 사람 잡겄다'는 생각을 하기까지도 했었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돈 내는 것부터 음식 장만하는 일, 나중에는 상대방의 태도와 말투 등을 꼬투리 잡으며 사소한 신경전으로 번지는 걸 보면서 누가 옳고 그르고, 잘했고, 잘 못했고를 떠나 이쯤되면 집안에 분란만 일으키며 갈등을 고조시키면서까지 제사를 지내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하는 결론에 도달하는 게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조상을 잘 모셔야 복을 받는다고 말들을 많이 하지만 정작 제사를 지내는 이유가 복을 받기 위해서라면 그것도 일종의 잘못된 마음이다. 조상에 감사하고 예를 갖추는 일의 한 가지 방편으로 제사를 모시는 것 자체는 아름다운 마음씨의 발로이지만 과거에 운명을 다하고 이미 끝없는 윤회의 길로 접어들어 현실의 우리와는 다른 행로를 가버린 영혼들에게 무슨 복을 구하겠는가.

모든 것이 급변하는 2000년 하고도 두 번째 10년대 '스마트한'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지만 제사 음식은 여지껏 그대로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에 의아함을 가진 적이 없었는가. 이거 좀 바꾼다고 제사 상이 뒤집어지는 것도 아니요, 간만에 제상 상으로 온 조상님들이 심기가 틀어져 돌아 앉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금 세상에서 구경할 수 있는 진기함에 반색하시지 않겠는지.

홍동백서, 조율이시, 어동육서... 이건 누군가 하나의 표준으로 정한 방식이지 세상이 뒤집어져도 못 바꾸는 절대 가치는 아니다. 배가 오른쪽으로 가고 왼쪽에 파인애플이나 망고가 올라간다 한들 공자가 묘에서 벌떡 일어나 "이런~, 망측함을 보았나?" 라고 할까.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이런 사소한 것 하나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 제사상 위에 올리는 생선 머리의 방향, 향 위에서 술잔 돌리는 횟수, 밥 위에 꽂는 숟가락의 위치 등등 사소한 곁가지 하나 하나를 엄격하게 따지는 지루하고 고리타분함에 조금의 이의제기만으로도 버릇없고, 무식한 인간으로 몰린다. 원래 유교가 그러하다.

이것은 이미 과거 2,500여년 전에 죽은, 당시에는 그저 이름이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 수준이었으나 후대에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에 의해 거의 신격화된 공자가 말한 '괴이함을 멀리한다'와 '옛 것에서 방법을 찾는다'라는 올가미에 갇힌 탓이 크다. 그렇게 못을 박은 이후로 유교는 엄숙주의로 경직되고, 창의력 향상을 가로 막는 일등공신이 되었다. 엄숙주의의 다른 말은 권위주의다. 여기서는 개혁이니 미래지향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그뿐이 아니다. 찬물도 위 아래를 강조하며 수직 문화가 팽배해져서 무조건 윗사람의 말은 들어야 하며 그랬기에 윗 사람들은 훈계라는 명목으로 아랫 사람들 위에 군림해왔고, 이 과정에서 토론은 생략되었으며 반론은 괘씸죄가 되기 일쑤였다. 이건 교육 방식으로도 이어져 주입식 교육의 바탕이 되었으며, 국어도 외국어도 쓰기 만을 강조하는 양상을 띄어왔고 지금이야 다르지만 그간 외국어를 오랫동안 배웠어도 정작 외국인들을 보면 입도 뻥긋 못하는 지경이 다반사였다. 정말이지 그 입만 열면 나오는 `창의성`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것이다. 정작 본 바탕은 그대로인 채 창의성이라는 말만 한다고 해서 짧은 기간에 교육 양상이 바뀔리는 만무하다.

항상 어디서나 '근본주의자'들이 문제라는 말이 있다. 기독교도 그렇고 회교도 그렇지만 만일 뼛속까지 유교가 몸에 벤 골수 유교론자의 시각으로 보면 멀더와 스컬리가 죽을 힘을 다해 E.T.의 흔적과 증거를 찾는 X-File이나 해리포터가 이름을 말해선 안되는 이와 목숨을 건 대결을 펼치는 이야기들은 어디까지나 해괴망측한 헛짓거리로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유교에서는 창의성을 찾아볼 수가 없다는 이야기이고, 이는 이 책을 쓴 저자의 가장 큰 주장이기도 하다. 창의성이 본 바탕을 이루고 있는 기술분야는 천대받았으며 그에 따라 기술자들이 대우를 받지 못했던, 그랬기에 결국 문물이 발전한 다른 나라들의 확장에 그늘이 진 나라로 전락하기까지 했고, 오늘날에도 판,검사, 의사, 공무원에 매달리는 의식이 뿌리 깊다. 사실 이들 직업군은 국가 경쟁력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직종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도덕'을 교과서로 배웠지만 문제는 그 '도덕'을 유교문화 안에 집어 넣은 것이다. 원래 도덕은 도(道)와 덕(德)으로 유교보다 더 큰 범주의 사상이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으나 노자를 만나고 난 공자가 '용'을 보았다고 표현한 문구도 있듯이 도덕은 유교 안에 집어 넣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도가 있었고, 덕은 그 도를 행함으로 나타는 것인데 그것이 사라지고 난 후 인(仁)이 있었고 그 후 의(義)를 거쳐 예(禮)가 나왔다. 여기서 유교가 강조하는 것이 '인'과 '의'이다. 그리고, '예' 다음으로 나온 것이 바로 '법(法)'이다. 오늘 날의 세상은 모든 것이 필요없고, 오로지 법만이 남아 법대로 하는 시대인데 그것도 '말법(末法)' 시대에 이르렀다. 어떻게 보면 유교도 그 약발이 이미 다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유교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눈에 보이지 않게 통제를 하는 뿌리깊은 패러다임으로 남아 있고, 이토록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 그것도 그 자신이 창제한 것이 아니라 그때까지 전해지던 기존의 사상을 정리한 것이 어떻게 오늘날까지도 사람들과 사회를 보이지 않는 틀에 가둬두는 방편으로 남아 있는지 미스털털이하다. 유교가 얼마나 이율배반적임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 조선시대 성리학을 공부한 사대부들이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등장한 '실학'도 이런 분위기에 파묻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서학'은 당시 엘리트 기득권층에겐 엄청난 위협이었으리라. 그들이 민초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했는지 오늘날 국회의원들이나 소위 '지도층'이라는 인간들이 우리 국민과 서민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와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

그나마 IMF가 가져온 긍정적인 변화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유교 문화의 폐단를 직시하고, 바꾸고 변하자고 주장하는 목소리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 전에는 이런 말을 하는 자체가 불순하고 괘씸한 것이라 눈치만 보며 몸 사리는 일이 일반화되면서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엔 겉 다르고 속 다른 문화가 자리잡아 왔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조선시대에는 이런 행위가 본인이나 가문에 치명적인 일이 되었던 적도 있었다. 그렇기에 유교 문화는 그 자체에 이율배반적인 요소가 정착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의 다양한 본성 중에 '에헴~'으로 대표되는 체면과 겉치레의 형식이 강조되고, 은밀한 속성은 감추어져야 했기에 그걸 풀려면 눈치보며 몰래 뒤에서 행하는 것이 비인간적인 이중적 문화가 아니고 뭐겠는가. 차라리 서로 솔직해지는 편이 투명한 세상을 위해 백배는 나으리~.

인간의 자유로운 영혼을 속박하는 왜곡된 종교와 더불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선생님 아닌 월급쟁이들이 즐비한 우리의 한심한 교육제도 역시 하루 빨리 죽기를 바란다. 거기에 한 가지를 더 덧붙인다면 유교 문화의 폐단이 만든 결정체인 영혼이 없는 정치까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와 다양한 생각과 사상, 그리고 여러 체제가 존재한다. 유교만이 그 모든 것 중에서 최상이나 최고가 아니다. 유교를 반대하면 상놈이고, 현 정권을 반대하면 바로 좌파라고 생각하는 아이큐 두 자리의 한심한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문제는 유교만이 아니다. 유교가 낡았다고 하면서 새로 갈아탄 것이 있는데 이렇게 이름과 외형이 변형된 모양새가 이상하게 변질된 기독교이다. 공자가 예수로 둔갑하고, 유교 문화가 교회 문화로 탈바꿈된 모습에도 여전히 모순과 갈등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예수님은 훌륭한 성자이고, 그 분의 말씀을 전하는 기독교는 좋은 종교이지만 오랜 역사의 시간 속에서 인류의 탐욕과 이해관계에 얽혀 상당 부분 본질이 호도되어 왔고, 특히 근대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후 좀 이상한 양상으로 흘러온 부분이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까 요점은 공자든 예수든, 유교든 기독교든 모든 것은 세월이 흐를수록 본질이 흐려진다고 볼 수 밖에 없을 때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지혜와 그것을 자유롭게 지적하고 새롭게 바꾸려는 시도를 하는 행동을 해야하지만 실제 대중은 그만큼 지혜롭거나 똑똑하지 못한 것 같고, 엘리트나 기득권층이라고 불리는 자들은 그걸 막기 위해 여러 꼼수들을 부리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꼼수다'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것 같다.

 

공무원 시험 면접에서 명심보감과 논어를 묻는다고..

차라리 조선시대 과거를 시행해라. 유교라는게 `나라에 충성`, `부모에 효도`를 표방하면서 말 잘듣는 착한 백성을 양성하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해볼때 그게 다 다스리기가 쉬운 나라를 만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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