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 11. 15:07

연초에 읽기 좋은 책, `책만 보는 바보`

책만 보는 바보 - 8점
안소영 지음/보림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

중, 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배운 교과서에는 조선 중흥기 영정조 시대 실학사상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이덕무, 연암 박지원, 홍대용, 유형원, 이서구, 박제가 등의 이름이 두어 줄에 걸쳐 나온다. 그리고, 이들을 실학파 또는 북학파로 분류하면서 유학 만이 전부였던 조선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고자 노력한 학자들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책만 보는 바보'는 책 제목이기도 하지만 진짜 책 속에 파묻혀 책만 보던 글쓴이 이덕무를 벗들이 점잖게 놀리는 말로 책에서는 '간서치(看書痴)'라는 용어로 나온다. 드라마 등을 비롯해서 익히 알고 있는 서자라는 설움. 실제로 이들은 반쪽짜리 양반이라 당연히 양반 사회에 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양반의 핏줄이 아닌 것도 아니라  장사를 하거나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실상 할 수 있는게 없었기에 무과를 거쳐 무관으로 변방을 전전하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그저 앉아서 책만 보는 게 할 일의 전부인 세월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가세는 피폐해지고, 극심한 궁핍과 가난에 시달리기 일쑤였다.

이덕무 또한 어린 시절이 이와 다르지 않았으니 끼니를 넘기는게 다반사였고, 겨울이면 냉골로 변하는 좁은 집과 방에서 추위와 사투를 벌이는 상황을 생생히 적어 놓은 걸 읽으며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은 이들의 생생한 실제 생활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래도 그저 책이 좋았고, 책을 볼때면 배고픔도 추위도 그리고, 주위를 둘러싼 그 모든 근심마저 잊을 수 있었기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를 따라 책상을 옮겨 가며 책을 읽었나보다. 그렇게 운명에 갇힌 신세를 한탄하며 성장기를 보내는 동안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교류를 하게 되면서 이들은 어느덧 새로운 세상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사람을 사귐에 있어 그 사람됨이 올바르다면 신분의 높고 낮음이나 처한 상황에 상관없이 심지어 나이와도 무관하게 흔쾌히 벗삼기를 마다 않는 이들의 모습에서 과연 사람이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현실적으로 쓰일 곳이 없었던 그들의 학문이었지만 서로를 통해 묻고 배우기를 그치지 않으며 한 가닥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들 중에서 박제가는 감정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는 기질로 생각이 다르면 곧바로 자기의 주장을 내지르기 다반사라 사람들과 마찰이 많았는데 이는 이들의 스승인 연암선생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했으니 이 책을 읽다 보면 위에서 언급한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의 특징을 세세히 알 수가 있고, `혼천의`를 저술한 또 한 명의 스승 홍대용은 부드러운 언변에 거문고 연주에 능했고 이들에게 지구의 형태와 그 움직임 등의 자연과학을 가르치며 세상의 중심은 한 곳에 고정된 것이 아니므로 스스로가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가르침으로 인해 당연히 중국을 세상의 중심으로 여겨온 이들은 고정관념에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세월이 흘러 청나라의 사신단에 일행으로 가게되는 이들은 북경까지 왕래하면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는 청나라와 그들의 문물, 그리고 방대한 규모의 상업활동을 몸소 보고, 체험하는 동안 이를 조선의 발전과 조선 백성들의 삶이 나아지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연구와 정리하는데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는데 이들의 업적이 있다고 본다. 특히 어려웠던 시절 맹자전집을 팔아 식솔들의 끼니를 해결하며 자책하던 이덕무에게 역시 좌씨춘추를 팔아 술을 대접했던 벗 유득공은 원래부터 여행을 자주하며 우리의 고대역사를 정립하고 있었는데 역시 청나라 사신단으로 가 있는 동안 우리의 고대사를 알 수 있는 책들을 뒤져 '발해고'를 완성했으니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는 우리나라의 유구한 역사가 이런 분들의 노력과 헌신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리라.

박제가는 중국에서 보고 듣고 배운 것도 나라와 백성을 구하는 하나의 학문이라며 정식으로 '북학(北學)'이란 말을 책의 제목에 썼다. 스물아홉 살 난 조선의 젊은이 박제가는 그의 저서 `북학의`에서 변화를 두려워하고 편안함만을 누리고자 하는 사대부들을 날카롭게 꼬집으며 이렇게 말했다. "현재 백성들의 생활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국가의 재정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사대부는 그저 팔짱을 낀 채 바라만 볼 뿐, 백성들을 구제하지 않을 것인가? 모른 체만 하고 있을 것인가?" 라고.. 어떤가, 바로 오늘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이 책을 읽으며 알게된 또 하나의 재미있었던 점은 얼마전 방영된 SBS 드라마 '무사 백동수'의 시대적 배경이 바로 이 때이고, 이 백동수가 저자 이덕무와 처남 매부 지간이어서 왕래가 잦았다는 것인데 백동수의 실제 모습과 드라마에서 나오지 않은 행적 그리고, 나중에 정조대왕의 배려로 벼슬길에 올라 이들이 의기투합하여 성심껏 주어진 나랏일을 하고, 각 지방에서 백성들의 편안함과 보다 나은 살림을 위해 노력한 일들과 나중에 '무예도보통지'를 만드는 과정은 그 자체가 이들의 어려웠던 젊은 시절에 놓치 않았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염원이 그대로 현실에서 이루어진 모습이었다.

비록 정조대왕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바람에 이들의 노력도 결국엔 그 결실을 맺지 못했지만, 그들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가야 하는지를 몸소 고민하고 실천했기에 시간의 간격을 두고 마주한 우리는 세월을 거슬러 이 책에서 그들과 대화하며 이 나라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