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7. 09:57

지구온난화와 경계를 넘나드는 전염병

. . . 얼음은 일종의 기후 장부 역할을 한다. 냉동된 역사이기도 하며 그 중 일부는 녹아내리면 그 역사가 다시 시작될 수도 있다. 현재 북극의 빙하에는 지난 수백만 년 동안 공기 중에 퍼진 적이 없는 질병이 갇혀있다. 인류가 한번도 마주친 적이 없는 질병도 있다. 그런 인류 역사 이전의 질병이 얼음 밖으로 나오면 오늘날 우리의 면역 체계는 대응하는 방법조차 모를 것이다.

이미 여러 종류의 미생물이 연구실에서 소생된 사례가 존재한다. 2005년에는 3만 2,000년 전의 극한 생물계 박테리아를 되살리는데 성공했다. 2007년에는 800만년 전 미생물을 소생시켰다. 어느 러시아 과학자는 호기심에 350만년 된 박테리아를 자기 몸에 주입한 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찰하기도 했다(목숨에 지장은 없었다).

2018년에는 이전에 비해 덩치가 조금 더 큰, 4만 2,000년 동안 영구동토층에 갇혀있던 선충을 되살렸다. 북극에는 비교적 최근에 활약했던 무시무시한 질병 역시 저장돼 있다. 예컨대 알래스카에서는 1918년에 5억 명을 감염시키고 5,000만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독감 바이러스의 자취가 발견됐다.

5,000만 명이라는 숫자는 당시 세계 인구의 약 3%이자 1차 세계대전 전사자 수의 6배에 달하는 수치로 독감이 세계대전에서 소름끼치는 절정 역할을 한 셈이다. 과학자들은 시베리아의 빙하 속에 천연두와 선 페스트균은 물론 얼음 속에 갇히지 않았더라면 인류 역사의 일부가 됐을 다른 수많은 질병 역시 갇혀있다고 추측한다.

질병 역사의 축소판이 북극의 태양 아래 곤죽처럼 놓여있는 것이다. 물론 얼어붙은 미생물 중 대다수는 해동 과정을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소생에 성공한 사례는 일반적으로 연구실에서 환경을 세심하게 조절한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2016년, 영구동토층이 후퇴하면서 75년여 전에 탄저병으로 사망했던 순록 사체가 노출되는 일이 발생했다.

결과적으로 소년 하나가 사망했고, 스무 명이 탄저균에 감염됐으며 2,000마리 이상의 순록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전염병 학자들이 먼 옛날의 질병이 깨어나는 것보다 더 염려하는 상황은 지구온난화 때문에 현존하는 질병이 장소를 옮기고 관계망을 바꾸며 심지어 진화를 거듭하는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지리적인 영향이 나타난다.

현대에 들어서기 전에는 마을을 이루어 사는 인간의 특성이 전염병의 방어벽 역할을 했다. 전염병이 하나의 마을 혹은 왕국을 쓸어버리거나 극단적으로는 하나의 대륙을 황폐화할 수는 있었지만 대부분은 발병한 환자들 너머 멀리까지 이동할 수는 없었다. 흑사병이 유럽 인구의 60%를 죽였다고는 하지만 만약 진정한 의미의 흑사병이 지구촌에 창궐했다면 그 영향이 얼마나 무시무시했을지 생각하보라.

물론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지구촌 속에서 급속한 속도로 뒤엉켜 살아가고 있음에도 생태계는 대부분 안정된 편이며 그 덕분에 우리는 특정한 질병이 주로 어떤 환경에서 퍼지고 또 퍼지지 않는지 잘 알고 있다. 모험 관광을 떠나기 전에 감염원에 대비해 수십 가지의 백신과 예방 약물을 접종하거나 뉴욕 사람이 런던으로 여행을 갈때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는 그처럼 안정된 생태 환경을 뒤죽박죽으로 만든다. 전염병이 경계를 넘나든다는 뜻이다.

- 2050 거주불능 지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