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4. 28. 18:54

코로나 시대와 사회경제개혁

이 책을 읽어보면 시급히 해야할 개혁과 이 나라의 진정한 궁극의 적폐세력은 검찰이나 언론보다도 `모피아`임을 알 수 있습니다. IMF부터 2008년 제2의 외환위기, 2011년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 론스타 외환은행 먹튀 논란, 2010~2012년 금융위기, 2013년 동양증권 사태, 최근 DLF 파생상품 대규모 손실 사태에 라임 사태와 옵티머스 사태까지. . 관련 영화로는 `블랙머니` 추천. 그리고 민주주의의 적은 엘리트 의식에 쩌든 괴물 카르텔인 관료주의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지속되면서 생명을 보전하는 일도 먹고사는 일도 고통스럽기만 하다. 시간이 지나면 포스트코로나의 시간이 오리라 기대한 때도 있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백신이 보급되면 상황이 나아질 수 있겠지만 우리가 코로나19 또는 그 온갖 변종과 함께 동거하며 살아가야 한다(위드 코로나)는 사실은 분명하다. 코로나19의 재난은 위험한 감염병을 급속도로 전파해 보건위기를 초래할뿐더러 경제침체와 일자리 및 삶의 불안, 불평등 심화를 함께 몰고 왔다.

모든 나라가 방역과 경제회복, 불평등의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 앞에 정신이 없다. 연결하고 연대해야 함께 살아갈 수 있음에도 감염병은 우리에게 거리두기를 강제하고, 그 거리를 필수노동자들의 대면 위험노동(배달, 돌봄, 의료, 청소, 물류 등)이 이어주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코로나 위기와 고통조차 약과일 수 있으며 상상을 넘는 더 거대한 재앙이 전지구적 기후위기로 닥쳐올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기후위기 팬데믹의 예고편이라 할 만하지만, 기후위기에는 코로나 위기와 달리 돌이킬 수 없는 임계점(티핑 포인트)이 있다. 파국적 기후재앙의 조짐은 감염병의 위기와 함께 이미 우리 삶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코로나19도 기후변화가 낳은 팬데믹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다.

그런데도 지구생태계의 이 본원적 진실을 몰각한 채 자연을 `저렴한 것`으로 전유한 현대 인간 그리고 자본의 도구적 지배와 탐욕적 개발의 결과 야생동물 서식지가 교란, 파괴되고 인간과 접촉이 빈번해진 것이 기후위기 및 감염병 창궐의 원인이 되었다. `저렴함`은 물론 저비용을 포함한다. 하지만 그 이상이다.

지배체제의 재생산체제에 폭력적으로 포섭됨으로써 결코 수치로 셈해질 수 없는 소중한 존재의 자율성, 상생적 생명성이 박탈되고 부정된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두 위기의 원인이 동근원적이라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으며 `에코데믹(ecodemic)`이라는 말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기후위기 관련 지표는 1950년대 이후 가파르게 상승해 `거대한 가속`기에 들어갔다.

이 시기 속 이른바 `자본주의 황금기`는 화석연료 기반 위에 성장엔진을 굴려온 자본주의 산업문명사에서 보기 드문 고성장, 불평등 완화, 대량 소비의 시기이기도 했다. 자본주의 황금기 이산화탄소 배출의 주된 부분이 선진국의 화석연료체제에서 나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하지만 고성장과 대량 소비, 불평등 완화 경향도 이미 과거지사다.

1980년대 초 이래 규제 완화, 공공부문 축소 및 감세, 노동시장의 유연화 및 불안정노동화(노동의 `저렴화`)가 가속화되었고, 투기거품(부동산, 금융)의 축적을 밀고 간 신자유주의적 무책임 자본주의 체제 30년에 이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친 후 세계사회는 심각한 불평등, 특히 부의 불평등과 저성장이 맞물려 돌아가는 뉴노멀의 악순환에 빠졌다.

예상과 달리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끈질기게 신자유주의는 사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편으로 약화된 부분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 새롭게 변신, 부활했다. 첫째, 거대기업과 금융자본의 힘이 다시 강화됐다. 이들과 공생하는 정부가 위기 해법으로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공공서비스 조달을 외주화하며 공공지출을 지속적으로 삭감하는 조치(공공의료지출 삭감 포함)를 취했다.

둘째, 대자본과 자산 부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양적 완화 조치로 막대한 과잉유동성이 풀려나갔다. 하지만 실물경제 침체도, 높은 실업율과 불안정노동 문제도 극복되지 못한채 다시 주식, 부동산 등 자산시장의 거품이 쌓여갔다. 셋째, 부동산, 금융, 자연자원, 지재권, 데이터 사유화, 민영화 등에서 막대한 지대(불로소득)가 창출, 전유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지대추구 자본주의(rentier capitalism)가 자산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넷째, 노동시장이 새롭게 변신했다. 디지털 전환에 기반해 비정형 플랫폼 노동이 대거 확산되었다. 플랫폼 자본주의가 지대를 전유하면서 사용자의 책임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다섯째, 이 같이 불평등하고 불공정하며 불안한 사회경제는 미국이 전형적으로 보여주듯이 정당의 무책임과 맞물리면서 우익 포퓰리즘 출현의 온상이 되었다.

이처럼 오늘의 위기 시대는 그 이전 신자유주의에 감염된 사회경제적 체질을 기저질환으로 물려받았고 이 적폐로 인해 위기 대응력도 약화되었다. 따라서 코로나와 기후위기는 앞선 시기의 기저질환이 중첩된 복합위기의 성격을 갖고 있다.

그 중층 위기 속에서 취약계층과 취약 지역사회가 가장 심각하게 타격받고 배제되는 가운데, `K자형`으로 전개되는 재난 불평등 및 양극화 그리고 자산시장 거품축적이 사회 전체의 대응력과 회복력을 크게 저하시키는 형국이다.

부단한 성장을 지상명령으로 여기며 굴러온 시스템, 무엇보다 지구촌 북반구 및 고성장 중진국권에서 생태적 한계 및 사회적 한계를 모두 무시한 채 달려온 지본주의 및 산업주의 발전양식이 오늘의 유례없는 감염병의 위기와 기후위기, 불평등의 위기를 초래했다.

역설적으로 이 사회생태적 이중 위기, 소수를 살찌우기 위해 다수가 불안하고 위태로운 삶을 강요받고 희생당하는 체제로 인해 더 이상 성장 자체가 지속 불가능하게 된 상황이 오늘 우리가 내몰린 발전양식의 궁지 또는 `성장 딜레마`이다.

지배체제의 재생산 비용을 자연에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떠넘기고 `저렴한 것`으로 만들면서 생태적 지속가능성, 사회적 정의 그리고 경제성장 간의 균형을 무시해온 대가, 총체적 불균형 발전의 업보가 실로 엄청나다. 이제 코로나 위기와 기후위기의 극복없이는 성장은 물론 복지 증진도 어렵다.

공멸하지 않으려면 기존의 경로의존적 관성을 벗어나 전례없이 새로운 `생태적 성찰성`과 성찰적 시민정치가 요구되고 있다. 이제 인류는 코로나 팬데믹뿐만 아니라 기후위기의 극복 없이는 파멸할 수도 있는 위태로운 인류세시대로 진입했다.

하지만 지배적 권력, 제도, 가치규범이 재상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생태적 전환 자체가 갈등에 차있을뿐더러(생태적 분배갈등), 기후위기와 사회적 불평등, 환경불평등과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맞물리며 상호 강화되는 악순환에 주목해야 한다. 생태적 전환 자체가 쟁투적이거니와 그것이 달성된다 해도 심각한 사회경제적 불평등 위기가 극복되지는 않는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생태적 전환이 전인류적 과제로, 현세대는 물론 미래세대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절박한 과제로 떠올랐음에도 사회경제적 불평등 위기의 극복없이, 구성원의 삶의 기본적 필요 충족없이 생태적 전환에 대한 폭넓은 사회적 합의가, 집단행동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이 대목에서 인간과 자연 간의 불화문제란 결국 인간과 인간 간의 불화, 이 불화를 재생산하는 부정의하고 불평등한 사회시스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명제가 힘을 얻는다. 인간-자연-인간, 인간-자원-인간의 삼각관계와 그 지배 및 착취관계에 주목하는 사회생태적 진보주의에서 자연의 저렴화에 따른 기후위기는 노동자, 여성 등 사회적 약자의 저렴화에 따른 불평등위기와 동전의 양면처럼 꽉 맞물려 있다.

이 통합적, 성찰적 전환정치의 견지에 설때 다면적 불평등 위기의 극복없이는, 정의로운 사회로의 전환문제를 풀지않고는 기후위기의 극복은 없다. 거꾸로 기후위기, 생태위기의 극복없이는 불평등 위기의 극복도, 정의로운 사회도 기약할 수가 없다. 사회적 전환과 생태적 전환은 통합적으로 접근되어야 하며 사회적 정의와 기후정의는 같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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