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14. 02:37

전세계 인플레이션 우려 증가와 공급 부족, 그리고 미국의 구인난

(서울=연합뉴스) 김태종 기자 = 전세계 경제에 인플레이션 공포가 불어닥치고 있다. '일시적'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물가는 역대급으로 치솟으면서 인플레이션은 이제 우려를 넘어 공포로 엄습하고 있다.

겨울을 앞두고 가스 등 난방료부터 빵 등 생필품에 이르기까지 인플레이션은 이제 전 세계 가정 곳곳까지 파고들고 있다. 11일(현지시간)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2% 오르며 1990년 12월 이후 31년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5.4% 올라 2008년 8월 이후 최대폭으로 올랐는데, 10월엔 변동폭을 더 키운 것이다. CPI는 5월부터 9월까지 5개월간 5%대 상승폭을 지속하더니 10월에는 6%대를 찍었다.

10월 생산자물가지수(PPI) 역시 8.6% 올라 2010년 11월 자료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유럽의 경우 독일의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5%로 동서독 통일에 따라 물가가 급등했던 1993년 8월 이후 28년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10월 소비자물가는 4.1% 상승해 1997년 통계집계 개시 후 최고치로 뛰어올랐고, 인접한 터키의 경우 19.9% 급등했다. 영국도 브렉시트 여파 등으로 3.1% 올랐고,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경우 2% 중후반을 기록했지만 예년에 비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 9월 7.4%였던 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0월 중순 들어 7.8%까지 치솟았다.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의 10월 생산자물가지수는 13.5% 상승하며 통계 집계가 시작된 1996년 이후 25년 만에 최고 상승률을 나타냈다. 생산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지난 1월 1.0%에 그쳤지만 이후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1.5%이지만, 이는 작년 9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 막대한 유동성 · 공급망 차질 · 유가 급등 겹쳐… "인플레 지속"

이처럼 물가가 급등하는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후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전 세계가 풀었던 막대한 돈이 꼽힌다. 전례 없는 유동성으로 화폐 가치는 떨어지는 반면 상품의 가치는 오른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s·연준)를 비롯해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그동안 푼 돈을 회수하기 위해 시장에 금리인상 시그널을 보내면서도 코로나로부터 회복하는 경제에 찬물을 끼얹을까 신중한 자세를 보인다.

백신접종과 `위드 코로나` 등으로 소비가 늘어나고 있지만 이에 비해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점도 물가 상승을 부추기고 있고, 전 세계 물류대란은 공급 부족 사태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유가 등 원자재 급등도 인플레이션 요인으로 빼놓을 수 없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만 보더라도 12월물이 80달러대를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1년 전 30달러보다 200% 가까이 오른 수준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 플러스'(OPEC+)는 미국의 추가 공급 요구에도 기존의 증산 방침을 유지하기로 하면서 유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미국에서 에너지 가격이 1년 전보다 30% 상승해 물가 상승세를 주도했고, 독일도 난방유가 101.1% 오르는 등 연료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인플레이션 장기화에 대한 경고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캐피탈 이코노믹스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확대되고 있다는 증거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인플레이션이 연준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상승하리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는 말했던 연준 제롬 파월 의장도 최근 "예상보다 오래 지속될 수 있다"며 물가상승 장기화를 염려했다. 최근 연준이 발간한 보고서에서 미국 투자자들이 가장 큰 우려하는 것으로 긴축적 통화정책과 함께 인플레이션이 꼽혔다. 억만장자인 투자자 레이 달리오는 "사람들이 자산 가격이 오르면서 더 부유해졌다고 착각을 하고 있다"며 "인플레이션이 실질적인 부를 감소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11112073500009

인플레 뿐 아니라 구인난도 `일시적` 아니란 관측

현재의 경제 환경을 평가하는 현재 여건 지수는 73.2로 전달보다 4.5%포인트 떨어졌고, 향후 6개월간의 경기를 예상하는 소비자 기대는 62.8로 5.1%포인트나 급락했습니다. 이는 높은 물가가 미국인들의 소득 및 구매력을 갉아먹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됐습니다.

9월 채용공고는 1040만 건에 달해 지난 8월과 거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지난 7월의 역대 기록(1,109만 건)보다는 소폭 줄었지만, 여전히 전체 실업자 수 768만 명을 크게 웃도는 수치입니다. 산술적으로 실업자 1인당 1.4개의 취업공고가 있는 것이죠. 여전히 구인난이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월가가 놀란 것은 퇴직 건수였습니다. 9월 퇴직은 620만 건으로 전월(600만 건)보다 더 늘었고 특히 해고를 제외한 자발적 퇴직이 443만 건으로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습니다. 전월보다 16만4000건 증가했고 전년 동월에 비하면 무려 110만 명 더 많은 수치입니다. 자발적 퇴사율이 3%, 민간업체의 자발적 퇴사율은 3.4%입니다.

올해 들어 자발적으로 그만둔 사람을 모두 더하면 무려 3,450만에 달합니다. '거대한 퇴사'(The Great Resignation)라고 부를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블룸버그는 어제 "(최고 직장인) JP모간마저도 퇴사 행렬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JOLTS를 보면 면 여전히 구인난은 풀리지 않고 있고 노동 시장은 빡빡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아니 구인난은 더 심해지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지난 10월 노동참여율은 61.6%로 전달과 비슷했습니다. 이는 팬데믹 이전의 63%대보다 낮습니다. 이날 민간구직정보업체 인디드가 집계하는 채용공고는 9월 말보다 5% 이상 더 늘어났습니다.

지난 여름, '9~10월쯤 되면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으면서 구인난이 개선될 것'이란 관측이 많았습니다. 9월 초 연방정부가 주는 추가 실업급여 지급이 종료되고 학교가 개학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곳곳에선 채용 보너스를 제시하고 있고, 학력 경력 등 기본 요구사항을 낮추고 있습니다.

WSJ에 따르면 월마트는 15만 개 일자리를 채우려고 구인 작업을 벌이고 있으며, UPS도 10만 명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아마존은 15만 명을 뽑고 있는데 초임이 시간당 18달러부터 시작하며 최대 3,000달러의 채용 보너스를 지급합니다.

골드만삭스는 이날 팬데믹 이후 노동 시장을 떠난 500만 명 가운데 330만 명이 55세 이상이며, 이들 중 자연 퇴직 100만 명과 조기 퇴직 150만 명 등 250만 명은 사실상 은퇴해서 다시 고용시장에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는 지금의 구인난이 일시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또, JP모간도 이날 관련 보고서에서 "생산가능인구가 거의 지난 2년 동안 계속 감소하고 있다. 이런 공급 부족의 대부분은 트럼프 집권기에 시작해 팬데믹 기간에 계속된 이민 인구의 감소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습니다.

JP모간은 "미국 노동력 공급에 대해 비관적일 수 있는 핵심 이유는 이민 흐름이 약화하고 있고 은퇴는 빨라지고 있는 것으로 이는 잠재 국내총생산(GDP) 성장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습니다.

월가 두 은행의 분석을 종합하면 이민 감소, 조기 은퇴 등으로 인해 구인난이 쉽게 풀리기 어렵다는 겁니다. 만약 이런 분석이 맞는다면 노동력 부족으로 인해 공급망 혼란 및 임금 인상이 이어지고 인플레이션도 지속할 수 있습니다. Fed의 인내심이 바닥날 시기가 금세 다가올 수도 있지요.

아니 Fed는 지금 '최대고용'을 목표로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해 인플레이션 부작용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지금이 '최대고용'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곧바로 기준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부터 잡아야겠지요. 다만 WSJ은 "아직도 코로나 팬데믹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걸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

바이러스가 완전히 통제되고 사람들이 더이상 출퇴근을 걱정하지 않을 때까지는 구인난이 일시적일지, 지속할 것인지 알기는 어렵다"라고 밝혔습니다. 기업들은 구인난, 그리고 인플레이션으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팩트셋에 따르면 3분기 실적 발표를 마친 460개 S&P500 기업들 가운데 285개가 컨퍼런스 콜에서 "인플레이션"이라는 용어를 언급했습니다. 이는 이런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10년 이후 최대 기록(이전 기록은 2021년 2분기의 222곳)이며, 지난 5년 평균인 137개의 두 배가 넘습니다. 게다가 아직 40개 기업은 실적 발표를 하지 않았습니다.

https://www.hankyung.com/finance/article/202111136285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