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9. 27. 16:12

<영화 리뷰> 광해, 왕이 된 남자

나는 왕이로소이다 광해군 버전으로 이순신 장군께서 목숨과 바꿔 나라를 지켜주셨던 임진왜란이라는 난리통이 끝난지 얼마되지 않은 시대의 무거울 수밖에 없는 분위기 속에서 "따라해 보거라.. 게 아무도 없느냐~"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광해군 8년, 역사에서 사라진 15일 간의 공백을 메워주는 영화 한 편으로 세상에 나왔다. 왜란의 북새통 속에서 세자의 신분으로 몸소 군사들을 모으고, 이끌며 전란에 참전했던 광해군은 왕이 된 이후 실리외교를 견지하며 조선의 병폐를 개혁하고자 했으나 발판이 될 수 있었던 북인들이 도태되고, 자리마저 폐위되는 비운을 겪었다.

7년 간의 전란을 겪은 후 왜와 명은 정권이 바뀌었고 명은 그 국운마저 거의 막판에 다다른 반면 금이 새로운 대륙의 강자로 급부상하던 변혁의 시기 국제적인 정세를 파악하고, 외교와 개혁을 통한 국권과 왕권강화를 염두에 두었으나 사대주의에 찌들고 기득권 보전에 눈이 먼 반대파의 득세와 점점 다가오는 신변의 위협은 그를 점차 폭군으로 몰아가는 양상을 띄었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광해군과 똑같이 닮은 사람을 찾아 왕의 역할을 맡기기에 이른다. 나는 왕이로소이다와 다른 점은 세자가 아니라 왕이 뒤바뀌었다는 것과 분위기가 한층 더 무겁다는 점이고, 백성들의 아픔과 정치의 혐오스러움을 조명한다는 부분은 비슷한 점이다.

무치와 냉혈적인 면모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왕이라는 자리와 정치구조에서 백성들을 굽어보려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 또 다른 왕의 모습은 모든 왕이 바라는 이상과 그렇지 못한 현실의 대비를 극명하게 표현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1인 2역으로 왕의 두 가지 모습을 보인 광해군의 그 대조적인 모습에서 관객들은 웃음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난 후에도 아쉬운 여운으로 남는 게 중전이 웃는 걸 한번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고 이건 이 나라의 정치에 웃을 일이 없었다는 자조적인 반증이 아닐지.

쟁쟁한 배우들의 연기력은 가히 일품이고, 조연들 하나 하나 모두 명품연기라 하기에 손색이 없다. 광해군의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을 훌륭히 소화해낸 주연배우 이병헌의 무게와 중전역의 한효주, 허균역의 류승룡이라는 배우들의 존재감 그리고 조연임에도 항상 특이하고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 김인권의 열연으로 영화는 지루할 틈 없이 시종일관 몰입을 유지한다.

아직 안 보셨다면 추석 연휴에 볼 영화로 추천합니다. 가족들과 함께 볼 수 있습니다만, 보실 때 음식 드시는 건 별로 권하지 않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