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3. 2. 16:01

촘스키, 정복은 계속된다.

정복은 계속된다 - 8점
노암 촘스키 지음, 오애리 옮김/이후

책을 읽는 내내 의기소침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독서를 하면서 이렇게 분위기 다운된 상태에서 글을 읽었던 적이 있었을까.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을 마주한다는 것이 아마 이런 것인가... 이미 알고 있었던 내용도 있지만 그건 일부일 뿐, 몰랐던 내용들이 대부분이었고 아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새롭게 알게된 사실 앞에 그저 `멘탈 붕괴`라는 말밖엔 달리 떠오르는 말이 없다.

우리나라 `국빵부`에 의해 불온서적으로 등극한 촘스키의 <정복은 계속된다>. 이 책을 읽으면 공식 빨갱이로 지정되는거야? 그러고보니 책 표지도 빨갛네. 책의 뒷면에는 해골이 그려진 미제국주의 국기도 있고.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불온서적으로 선정된 이유는 아마도 책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확실한 `반미주의자`가 되도록 만들어준다거나 우리가 참전했던 베트남 전쟁의 실상에 대해 너무나도 사실적이며 진실한 내용이 담겨있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전에 한 번 유투브 동영상에서 미국의 어떤 행사 와중에 미국 국가가 울려퍼지며 올라가던 성조기가 어느 순간 팔랑~거리며 땅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관중들 땅이 꺼지는 한숨을 내쉬던데 어찌나 통쾌하던지. 동영상 촬영하는 사람도 크게 웃더군.

책의 내용은 일단 그다지 재미있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데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판단의 집중력도 요구하기에 읽기가 쉽지는 않은 편이다. 이런 점에서 번역하는 사람도 어려움이 많았겠다. 책에서 촘스키는 운을 띄울때 일단 미국을 비롯한 서구 유럽의 `선.진.국`들이 그간 이룬 성취(?)와 업적(?)에 찬사(?)를 보내 읽는 사람을 순간 어리둥절하게 만들지만 언어학자답게 곧바로 본문 전체를 통과하는 특유의 반어법을 동원해 신랄한 비판과 사실에 입각한 예증을 들어 미국과 서구 유럽 국가들의 추악한 모습을 까발리는 반전을 보여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강대국으로 등극한 미국은 냉전을 겪으면서 소련이라는 적대국을 너무나도 잘 활용하여 `존재하지 않는 적`을 기가막히게 잘 만들어내는 훌륭한 공작으로 앞마당 격인 쿠바, 멕시코, 그리고 아이티 등의 중미를 비롯 남미 최대의 자원부국인 브라질을 어떻게 기만적으로 침략하여 착취하고 경제적으로 파탄시켰는지를 제대로 알 수 있다. 이는 파나마, 도미니카, 베네수엘라, 엘살바도르, 아르헨티나, 칠레 등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리하여 과거 아메리카 대륙에 살았던 인디언들이 입은 참혹한 피해에 못지 않은 엄청난 빨대꼽기가 수 십년 동안 자행되어 왔다.

이러한 형태의 정복은 비단 라틴아메리카 뿐만 아니라 무슨 일이 있어도 석유의 패권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중동과 너무나도 미개하여 스스로는 발전할 수 없기에 유일하게 문명인들인 백인들이 나서서 개화시켜 주어야할 대상인 아프리카 대륙인들을 넘어 아시아까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오늘날까지도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 잠재성을 가지고 있었던 인도의 면화사업이 어떻게 붕괴되었는지, 중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아편을 반입하면서 신의 이름으로 행한 선의에 죄를 물을 수 없다는 어처구니 없는 논리, 식민지로 삼았던 필리핀과 인도차이나를 먹기 위해 캄보디아와 베트남에 저질렀던 미국의 전쟁범죄에 대한 양키들의 오만한 사고 방식은 읽는 사람에게 상상초월의 울트라 일렉트릭 쇼크를 선사할 것이다.

미국이 베푼 이같은 선의(?)로 생긴 결과는 모든 나라에서 하나같이 실업률 증가, 임금 감소와 근로조건 악화, 복지예산 감소, 부자감세, 부익부 빈익빈의 빈부격차 확대, 빈곤율 증가와 빈민층 급증, 사회안전망의 취약과 열악해진 교육환경, 대규모 민영화라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런 배경에는 어디에서나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흐르고 있다. 그럼에도 더욱 부자가 된 기득권 세력들은 `경제기적`과 `놀라운 경제성장`이라는 수식어로 `자유무역`을 찬양하면서 미국식 경제구조에 환호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시절의 미국에서도 이런 신자유주의의 놀라운 결과가 자국민들에게도 해악을 끼쳤다는 사실에서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

민중의 저항과 노동운동, 그리고 민주주의는 반드시 분쇄되어야 할 미국의 적이며 양키들이 제일 싫어하면서도 무서워하는 진리는 바로 `민족주의`다. 부시가 말한 '악의 축'이라고 명명된 이란과 북한 등의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나라라는 것이다. 이런 나라들은 미국을 위협할지 모르며 따라서 언제라도 미국을 공격할 수 있기에 세력이 강해지기 전 어떤 수를 써서라도 무너뜨려야할 적이라는 논리 앞에 미국은 오로지 전 세계에서 `내가 제일 잘나가`는 나라가 된다.

저자는 미국이 진주만 폭격에 대한 속죄를 거부하는 일본의 잘못된 역사의식은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정작 진주만을 하와이 주민들로부터 무력으로 빼앗고 베트남에서 민간인을 학살했던 자신들의 만행에 대해서는 '발뺌'의 차원을 넘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이중적 역사의식을 갖고 있다고 비판한다. 저자의 말을 그대로 빌리면 "도덕이란 총구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지난 5백여 년 동안 서구 강대국들은 스스로 보호무역주의를 철저히 유지하면서도 약소국에 대해서는 자유무역에 의한 시장 개방을 집요하게 강요해 왔으며,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에서 구조조정을 겪었던 국가들은 거의 예외없이 극심한 빈부격차에 신음하고 있고, 인권 및 민주주의 역시 강대국 기득권층의 허울 좋은 수사에 불과하다는 것이 촘스키의 주장이다. 다른 국가들도 그렇지만 미국이 하와이를 정복하는 과정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을텐데 그저 놀랍고 또 놀라울 뿐이다.

"미국 정책의 최우선순위는 바로 이윤과 권력이다. 그럴듯한 겉모습 수준을 넘어서 진정한 민주주의는 극복돼야 할 위협일 뿐이다. 인권도 선전을 위한 수단으로만 가치를 지니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마르코스, 사담 후세인, 피노체트, 노리에가 등 무수한 독재자들은 미국 기득권층과의 `오랜 동반자적 관계를 넘어 친구`였으며, 미국은 이들 독재자들을 용도 폐기한 이후에도 내부의 진정한 민주 세력을 견제 내지 탄압했다는 것이다. 촘스키의 이 같은 주장이 단순히 과격한 `반미주의`에 그치지 않고 강한 설득력을 갖는 것은 바로 철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한 사실에 그 근거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착취대상이자 미국에 대한 봉사지역에 불과한 제3세계에서 참다못한 민중들이 들고 일어나 민주정부를 수립하면 언제나 쿠데타가 빈번하게 일어난 배후에는 드러나지 않은 미국의 협잡과 공작이 있었다. 그렇기에 중남미 국가들에서 왜 그렇게 군부가 쿠데타를 자주 일으키며 독재정권이 득세를 했는지, 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서는 화폐붕괴와 경제위기가 그렇게 자주 일어났었는지 그동안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궁금증을 촘스키가 한 방에 정리를 너무 잘해줘서 매우 고마웠다. 우리도 잘 알고있는 동티모르를 상대로 자행된 대학살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저질렀지만 그 뒤에서 조용히 암묵적으로 지지하며 무기를 대준 것은 미국이라는. 이것이 인권과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민주주의 국가 미국의 모습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냉전 체제의 붕괴로 더 이상 공산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게 된 서구 기득권층의 정복과 착취가 더욱 노골적으로 계속되고 있다고 고발한다. 서구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신자유주의와 자유무역에 기반한 경제 기적론에 대한 저자의 강한비판의 요점은 소위 `경제 기적`이라고 일컬어지는 외국 투자가들과 기득권층만의 배불리기로 요약된다. 여기에 빈곤의 악화도 경제 기적이 이룩한 결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런 기적을 이룩한 사회는 미국식 성공담, 자유시장 원리의 승리로 포장되어 널리 퍼지고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인해 국민 대다수는 빈곤에 처해있고, 내수시장과 생산력은 이미 붕괴되어 생존 투쟁의 장으로 변해버렸다. 이 와중에서 소수 특권을 누리는 기득권층만 이익을 챙기고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에 열광하고 있다. 촘스키의 이 같은 지적이 남의 일로만 여겨지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 역시 지금 한창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는 세월의 한 가운데를 지나가고 있는 와중이기 때문이다.

경제성장.. 좋죠. 경제는 계속 성장해야 됩니다. 그래야 나라가 발전하니까요. 누가 경제성장 하지 말자고 합니까? 다만, 고층빌딩이 들어서면 주위에 그늘이 들듯이, 경제가 성장하게 될수록 그늘이 지는 곳이 생기게 되는 것이 자연스런 이치입니다. 그러니까 경제성장과 발전의 과실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주위를 둘러보고 조금이라도 나누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도 당연한 겁니다. 원래 우리 민족은 그런 사람들이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사악한 허여멀건 양키 돼지들의 습성을 고~대로 물려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성.장.`이라는 게 과연 어떤걸까요. 누구를 위한 성장일까요. 국민전체의 성장? 천만에요. 그들의 성장,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들만의 성장`이라는데 모든 문제의 출발점과 갈등의 시작이 있는 겁니다. 그렇게 성장을 한다고 해도 그 결과는 지금처럼 부자만 더 부자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 격차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벌어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의 거시지표만 내세우며 경제발전, 국격상승이라면서 살기 좋아졌다는 개뻥 헛소리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사회구조와 모습을 `내부 식민지`라고 합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시퀘스터 때문에 예산 삭감으로 시끄럽습니다. 오바마는 세금을 늘리는 부자증세를, 공화당은 부자감세 유지와 복지예산 감소를 주장하며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데 그 긴~~ 세월동안 다른 나라들을 침략하고 착취하며 온갖 협잡을 해온 결과 미국이 이런 재정절벽과 경제위기에 봉착한 거라니 너무 허망할 뿐입니다. 게다가 세계 제일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극히 일부의 테러 위협에 벌~벌~ 떨고 있다니. 그러니 불안해서 자꾸 여기저기서 총이나 쏘나?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