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 29. 18:48

재미 블로거 `효성 저격수`로 나서다

안치용씨, 검찰도 못 밝힌 '미국 고가부동산 매입' 폭로

"나오고 또 계속 나온다. 처음에는 하나가 있구나 생각했는데 여러 지역에서 계속 나오더라. 내가 밝힌 것 말고도 부동산이 더 있는 것 같다."

재미 블로거 안치용씨가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 말이다. 안씨는 요즘 효성그룹의 조현준 사장과 조현상 전무의 해외 고가 부동산 매입 의혹을 계속 폭로하면서 효성의 '저격수'로 나섰다. 안씨의 말은 얼마 전 민주당 박지원 의원이 국정감사장에서 한 말과 비슷하다.

↑ 조현준 효성 사장이 2006년 10월 구입한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있는 호화리조트 빌라 2채의 매입계약서. 두 장의 서류에 매입자는
`PELICAN POINT PROPERTIES LLC`로 조현준 사장이 2002년
별장을 매입해 소유권을 넘긴 법인과 동일한 법인이다. 안치용씨 제공

10월22일 국회 법무부 국감에서 박지원 의원은 "(효성그룹) 아들들의 해외 고급 부동산 매입, 분식회계, (효성 조석래 회장의 처제가 경영하는) 로우전자의 세금 포탈 등에 이어 새 의혹이 또 나왔다"면서 "정운찬 국무총리가 '양파총리'라던데 효성은 까도 까도 또 나오는 '양파 재벌'인가"라고 말했던 것.

효성 관련 미국법인 부동산 구입 조사

효성그룹을 둘러싼 의혹은 ▲해외법인과 유령회사 간 위장거래를 통한 비자금 조성 ▲조현준 사장과 조현상 전무의 해외 고가 부동산 매입 자금 ▲효성그룹 오너 3세의 주식 저가 인수 의혹 ▲로우전자 군사장비 납품 비리의혹 등이다. 일각에서는 효성그룹이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기업이라는 이유로 검찰이 감싸기를 하지 않느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안치용씨는 효성그룹 이전부터 한국 유력 인사들의 미국 부동산 구입 실태를 조사해 밝혀왔다. 그런데 요즘은 효성그룹 사건에 매달려 있는 형국이다. 왜 그런 것일까.

"추석 전에 검찰이 효성 수사에서 손을 뗐다는 기사를 봤다. 개인적으로 의혹이 많은 사건이었는데 검찰의 반응을 보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효성과 관련한 미국 법인이 여러개 나오더라. 그래서 그 법인을 중심으로 부동산 취득 내용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부동산을 구입한 사람들은 관련 서류가 100% 오픈돼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효성과 관련된 의혹 가운데 안씨가 폭로하고 있는 조현준 사장과 조현상 전무의 해외 고가 부동산 매입은 사실로 밝혀지고 있는 셈이다. 검찰도 밝히지 못한 해외 고가 부동산 매입 사실을 전직 기자 출신의 블로거가 해내고 있는 것이다. 안씨는 10월5일부터 10월23일 현재까지 블로그를 통해 조현준 효성 사장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에 있는 450만 달러의 주택 구입(2002년)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콘도 1채 구입(2005년) ▲샌디에이고에 있는 호화리조트 빌라 2채 구입(2006년) 사실을 폭로했다. 그리고 조석래 회장의 3남인 조현상 전무가 지난해 7월 하와이 호놀룰루에 있는 콘도를 262만 달러에 구입했다는 관련 자료도 공개했다. 2002년 당시 해외 체류자에게 허용된 해외주택 구입한도는 30만 달러였다.

조현준 사장과 조현상 전무가 미국 부동산을 취득하는 과정은 비슷한 구석이 많다. 미국 부동산을 구입한 뒤에는 배우자의 권리를 양도받게 된다. 그 후 효성아메리카의 유 모 상무에게 위임해 무상으로 부동산을 법인에 넘기는 방식을 따르고 있다. 유 상무는 법인 설립의 대행을 맡기도 했으며, 부동산의 양도 과정을 위임 받아 모든 것을 처리했다. 안씨는 "법인 설립 대행을 맡은 유 상무가 등기서류에 자신의 주소를 집이 아닌 효성아메리카 주소로 기재했다. 이는 유 상무 개인보다 효성과 관계가 있다는 개연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씨의 폭로가 이어지자 효성 측에서는 명예훼손으로 포털 다음에 신고해 안씨의 글을 블라인드 처리토록 하기도 했다. 그리고 조현준 사장이 부동산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신고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일자 효성은 "외국환거래법상 비거주자 신분에 해당돼 허가나 신고의무자가 아니다"고 해명자료를 냈다.


'부동산 취득 자금 출처 의심' 첩보

이에 대해 안씨는 "현행법을 살펴보면 미국 부동산을 사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미국 부동산을 취득하면 한국의 관할지역 세무소에 신고해야 한다. 미국 부동산을 팔면 팔았다고 신고해야 한다. 그런데 효성은 신고 의무자가 아니기 때문에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닌가"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해외 부동산을 취득할 때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외국환거래법 위반은 아니라 취득자의 신분에 따라 신고 의무가 결정된다.
안씨의 말대로 미국 부동산을 사거나 팔 때 신고를 하지 않은 것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조현준 사장과 조현상 전무의 미국 부동산 취득 과정에서 의심을 사는 것은 부동산을 사는 데 필요한 돈이 어디에서 나온 것이냐는 점이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효성에 관한 검찰 범죄첩보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보고서에는 '자금 창출 능력이 없는 조현준 등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아들 3명이 2000년부터 2006년까지 거액을 개인적 용도로 사용했다. 자금 출처가 효성 및 효성 계열사인지, 조 회장으로부터 증여받은 돈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적시돼 있다. 그만큼 조현준 사장과 조현상 전무의 부동산 취득 자금의 출처가 의심된다는 것을 검찰 범죄첩보 보고서를 통해서도 확인된 것이다. 안씨의 폭로가 효성의 아픈 부분을 건드린 셈이다.

안씨는 한국 검찰도 밝혀내지 못한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 시간과 노력, 돈을 투자하고 있다. 미국의 부동산 서류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뉠 수 있다. 각 카운티(지방행정 단위) 등기소에 비치된 서류들이다. 매매 당사자들이 등기한 서류들로 매매계약서, 융자계약서, 위임장, 저당권 설정 등이다. 그리고 각 지방정부에서 재산세 부과를 위해 각 집의 가치 등을 감정해 공개하는 보고서다. 이 재산세 관련 보고서는 해당 주정부 세무기관에 가면 그 지역의 모든 부동산을 지번별로 분류 비치해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다만 이 서류는 현재의 소유주만 알 수 있다. 즉 현재 소유주와 집의 가치, 집의 크기 변경 등은 세무국에서 작성한 평가서에 나오지만 주택의 전체 소유권 변동을 알려면 등기소를 뒤져야 하는 셈이다.

"가장 힘든 점이 미국은 카운티 등기소마다 절차와 방법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지역에 따라 30년까지 검색할 수 있고, 인터넷으로는 안되고 방문해야만 하는 곳도 있다. 그리고 등기소에서 검색할 수 있는 것은 해당 카운티의 부동산뿐이다. 이처럼 이런 자료를 찾아내려면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안치용씨가 미국 부동산 취득 관련 노하우를 얻게 된 것은 김형욱 실종 관련 문서들을 찾으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알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효율적인 검색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재벌가의 혼맥도 등을 기억한 뒤 사람 이름 위주로 찾았다. 그리고 나중에는 지번별로 모조리 뒤지기까지 했다. 그렇게 한 번 정보를 모두 모은 다음에는 한국 이름을 한데 모아서 다시 한국 등기부등본을 조회하고 혼맥도, 인물검색 등을 통해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끈기가 필요했던 작업이었다.

안씨는 한국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가 2003년 미국에 건너갔다. 그리고 한인방송국에서 6년 동안 일하다가 올해 5월 중순에 그만두고 독립탐사 보도기자로 나섰다. 남들은 안씨의 활동에 대해 걱정하지만 안씨는 "내가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다.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일을 하면서 우리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일을 하면 할수록 더욱 실감한다"고 덧붙였다.

경향신문 / 최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