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6. 1. 16:03

"4대강 반대는 정치가 아닌 신앙 행위" 천주교 시국미사

31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주최 '오만과 독선의 이명박 정권 회개를 위한 전국사제수도자 시국미사'가 열리고 있다. ⓒ 권우성


시국미사 참석자들이 '강물아 미안해 우리가 지켜줄께' '4대강 사업 멈춰' 등이 적힌 손피켓을 흔들고 있다. ⓒ 권우성


"오늘은 복되신 동정마리아 엘리사벳 방문 축일(성모 마리아가 가브리엘 대천사로부터 수태고지를 받은 후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간 날)입니다. 가슴속에 연약한 아기를 잉태한 두 어머니가 서로 만난 바로 그날입니다. 여러분, 태중에 귀여운 아기를 잉태한 어머니의 심정으로 기도합시다. '하느님 우리 아기 살려 주세요', '하느님 우리 강 좀 살려 주세요'라고 기도합시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아래 사제단)은 31일 오후 3시 전국에서 상경한 신부와 수녀, 신도 등 1000여 명과 함께 서울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오만과 독선의 이명박 정권, 회개를 위한 전국사제수도자 시국미사'를 열었다.

이날 시국미사는 사제단 전종훈 신부의 집전으로 진행됐다. 전 신부는 현 시국을 "상식과 원칙이 무참히 짓밟히는 야만의 시대"로 규정하면서 "이 오만하고 독선적인 권력은 4대강 사업으로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고 뭇 생명을 죽이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그 삽질의 속도를 위해 국민의 생명까지도 안중에 없는 전쟁의 분위기로 몰아넣고 윽박지르고 협박하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전 신부는 임진왜란 당시 서산대사의 일화를 예로 들면서 "당시 서산대사는 이판(理判)은 가부좌를 풀고, 사판(事判)은 붓과 호미를 던지고 총궐기하여 도탄에 빠진 국가와 백성을 구하라고 외쳤다"며 "오늘의 이판사판은 바로 이 절박함과 결연함의 마지막 선택"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교회는 무엇인가? 사제는 누구인가? 수도자는 누구인가? 신앙과 양심에 따라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며 반문하고 "오만하고 독선적인 이명박 정권이 회개하여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기를 간절히 기도하자"고 역설했다.

문규현 신부 "이 대통령, 녹색사업 구세주인양 행동"


문규현 신부가 '4대강 사업 멈춰'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 권우성


이날 미사 강론을 한 문규현 신부는 "우리는 하느님의 선물인 자연을 보호하고 이 나라를 자멸에서 구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자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며 "이것은 정치가 아니라 신앙 행위이며 종교인다운 헌신"이라고 말했다.

문 신부는 또 "이명박 대통령은 마치 자신이 창조주인양, 녹색사업의 구세주인양 행동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이 대통령이 흥행에 성공한 청계천을 보면 4대강의 미래가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는 "콘크리트 인공 하천인 청계천은 녹조 문제가 심각해서 해마다 관리비용으로만 80억 원씩 들어간다"고 덧붙였다. 이어 문 신부는 "4대강 사업은 자연을 향한 인간의 무지막지한 테러이고 전쟁"이라며 "(정부가)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순식간에 4대강을 난도질해 황폐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사제단은 "평화와 전쟁을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시민의 몫"이라며 천안함 사태로 야기된 남북 간의 위기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사제단은 '이명박 정부의 회개를 촉구하는 시국선언문'에서 "(천안함 침몰의) 책임을 북쪽에 돌리는 주장을 그대로 인정하더라도 대통령은 이 엄청난 과오에 대해서 머리를 조아리고 용서를 구해야 했으며, 지휘관들은 상응하는 처벌을 달게 받아야 옳았다"며 "적반하장으로 대통령은 국민의 안보불감증을 꾸짖었고, 이른바 '조중동'은 민주정부 십년의 화해정책을 멸시하면서 전쟁불사를 외쳤다"고 지적했다.

사제단은 또 "(정부가) 의혹투성이의 증거물 하나를 들고 와서 일촉즉발의 위기를 조성한 이유는 분명하다"며 "겨레 전체의 생사를 쥐고 도박을 서슴치 않는 모습에서 우리는 4대강 사업에 참여하는 자본권력의 이해가 얼마나 엄청날지 가늠해 본다"고 우려했다.

4시 40분경 미사를 마친 사제들과 신자들은 명동성당 밖으로 행진하려 했지만 경찰의 봉쇄로 20분간 대치하다 5시쯤 자진해산했다. 한편 이날 보수단체 회원 20여 명이 시국미사가 열리는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천주교 사제들이 4대강을 악용하고 있어 전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면서 "종교인들은 막가파식 불법 선거 개입을 하고 있다"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4대강 사업 멈춰'가 적힌 손피켓을 든 사제단이 시국미사가 열리는 명동성당 들머리에 마련된 연단으로 입장하고 있다. ⓒ 권우성


31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주최 '오만과 독선의 이명박 정권 회개를 위한 전국사제수도자 시국미사'가 열리고 있다. ⓒ 권우성


시국미사에 참석한 수녀들이 '4대강 사업 멈춰'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함성을 외치고 있다. ⓒ 권우성


시국미사가 열리는 동안 보수단체 회원들이 성당앞으로 몰려와서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시국미사에 참석한 사제단과 신도들이 행진을 시작하고 있다. ⓒ 권우성


시국미사에 참석한 사제단과 신도들이 행진을 시작하자 경찰이 폴리스라인을 설치해 저지하고 있다. ⓒ 권우성

오마이뉴스 / 김도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