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 순국일입니다.
지난 주 1박 2일은 아주 뜻깊은 방송이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우리나라와 민족에게 긴박하고도 엄혹했던 시절.
의거를 시행하기 전 뜻을 함께했던 동지들과 찍었던 사진.
당시 준비를 위해 머물렀던 김성백의 집.
위는 현재 모습, 아래는 107년전 당시의 아침.
안 의사께서 남기고 간 친필.
디데이
현재의 하얼빈 역 모습.
이등박문 격살 사건 발생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역사적인 장소.
표시로 남아있는 안중근 의사가 서 계셨던 바로 그 자리.
동지들의 1차 의거의 실패를 대비한 플랜 B였던 안 의사는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언제 올지 모르는 기차를 기다렸고, 더군다나 이등박문의
얼굴도 몰랐다하니 그 2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상념들이 지나갔을까요.
기차가 들어오는 플랫폼.
울려퍼진 세 발의 총성. 정확한 명중으로 이토 현장에서 즉사.
목표물의 얼굴을 몰랐기 때문에 만약을 대비, 옆에 있던 다른
일행들까지 추가로 세 발 더 명중시킨 끝마무리.
마침 이 광경이 러시아 사진사가 찍은 영상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는데
일본에서 엄청난 금액을 주고 회수해간 뒤 히로부미가 뒤지는 장면만
삭제하고, 안 의사가 러시아 헌병에 체포되어 가는 모습만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놈들의 습성상 그 부분을 폐기하지는 않았을거고, 아마 어딘가
깊숙히 보관을 하고는 있을테지요.
중국인들이 만든 안중근 의사 기념관
당시 재판 사진. 사람들의 관심이 워낙 뜨거워 좁은 1층 대신에
2층 넓은 장소로 옮겼는대도 방청석이 꽉 차고, 뒤에 선 참관인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일본 제국주의와 이등박문의 죄상을 낱낱이 고하다.
이런 이등박문을 `오늘의 인물`로 버젓이 소개했던
네이뇬들. 잊지 않겠다.
여순(뤼순) 감옥
안중근 의사가 머물렀던 독방.
내부 모습.
안 의사가 마지막 나날들을 모내며 글을 쓰셨던 장소.
사형장.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순국.
어머니 전상서.
그가 정말 염원했던 것은 나라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는데 유해가 끝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현재 아파트 인근의 야산 어딘가에 묻혀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한탄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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