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 8. 14:39

[시론] 박근혜 퇴진 운동의 진로 - 한양대 국문학과 이도흠 교수

20만명이 모인 광장은 혁명 전야와 같다. 시민, 노동자, 청년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퇴진의 구호 아래 하나로 뭉쳤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직전에 열린 쌍용자동차 집회에서 선거부정과 사기공약을 근거로 당선 무효를 선언하는 연설을 한 이후 줄곧 집회 발언이나 글을 통해 여러 이유로 그의 퇴진을 주장하였던 필자로서는 여러 감회와 기억들이 뒤엉켰다. 여기에 모인 이들은 이 정권에서 배제되고 수탈당한 자들로서 가슴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으리라.

모든 힘은 연기(緣起)적이라, 분필이라 할지라도 버티는 힘보다 약한 힘으로 누르면 부러지지 않는다. 우리의 대응에 따라 좋은 나라가 도래할 수도, 현상이 유지될 수도, 반동 정권이 들어설 수도 있다. 분노한 다음날이 중요함은 자명하다. 이제 운동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1차 목표는 퇴진과 구속이다. 대통령의 퇴진 사유는 차고도 넘친다. 그는 헌법과 여러 법을 위반한 범법자이자 세월호, 백남기 농민 살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드 배치 강행, 위안부 할머니 밀실야합, 개성공단 폐쇄, 예술인의 블랙리스트 작성, 노동 배제와 탄압, 언론과 인터넷 통제의 근본 책임자이자 민주주의를 형해화하고 이 땅을 ‘헬조선’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그가 있는 한 국정혼란과 위기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2차 목표는 기득권층의 교체와 개혁이다. 설혹 대통령이 퇴진한다 하더라도 얼굴의 교체일 뿐이다. 부와 권력을 독점한 채 온갖 부패와 부조리와 권력남용으로 선량한 국민들을 죽음이나 생존위기로 몰고 민주주의를 사문화한 자본-정권-사법부-보수언론-종교지도자-어용지식인 및 전문가집단으로 이루어진 카르텔, 이에 권력을 부여한 온갖 제도와 시스템을 해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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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과 진보진영은 여소야대의 국회, 여권의 정당성과 헤게모니 상실, 저항의 분위기를 활용하여 검찰개혁, 정치개혁, 재벌개혁, 언론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시민들은 검찰청, 국회, 삼성 본사, ‘조·중·동’ 앞으로 가서 성찰과 개혁을 요구해야 한다.

3차 목표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생태복지국가로서 민주공화국의 건설이다. 박근혜 게이트가 도화선이 되었지만,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의 심층에는 세월호 참사, 개성공단 폐쇄, 독재, 노동개악, 신자유주의의 모순에 대한 분노가 자리하고 있다. 그동안 국민들은 뼈가 닳도록 일해도 1000만이 비정규직에 머물고 수시로 해고당하고 상위 10%에게 부의 절반을 넘겨주지 않았는가.

이제 근본적으로 양적 발전보다 삶의 질, 국내총생산(GDP)보다 행복지수, 경쟁보다 협력, 개발보다 공존, 사유보다 공유, 특정인이 아니라 국민 모두를 위한 정부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으로 전환해야 한다. 대의민주제에 참여민주제와 숙의민주제를 결합하여 국민이 진정으로 권력을 갖는 민주공화국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이루어지려면 동력을 유지하고 뿌리를 뻗치도록 하면서도 이를 모아서 집중하는 것이 관건이다. 광우병 때도, 세월호 때도 대중의 분노는 석달을 넘기지 못한 채 거리에서 마음으로 숨어버렸다. 대중들은 이 정권과 기득권층이 어떤 기만책을 쓰고 이에 보수야당이 타협하더라도 현혹되지 말아야 하고, 운동의 지도부는 대중들의 다양한 분노를 모으고 지향성을 갖도록 인도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곳곳에 광장을 만들어 이를 공공영역으로 바꾸고 여기서 공론을 형성하면서 시민이 스스로 조직하고 주체가 되자. 그 자리에서 “성찰하지 못한 과거는 우리의 미래”라는 마음으로 독재 9년을 반성하고, “현재는 미래의 앞당긴 실천”이라는 상상과 의지로 지금 여기에서 우리의 코뮌, 우리의 대한민국을 건설하자. 그럴 때만 지금의 분노는 나와 이 나라를 치유할 것이고, 우리의 꿈은 현실이 된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69208.html#csidx25b1d10d554af84915ec3511583cc7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