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6. 30. 22:35

역사저널 그날, 임진왜란 4부작

'전라도는 남김없이 모두 쳐라', '조선인은 죽인 뒤 코를 베어오라'
4년간의 강화 교섭 결렬. 조선 재침략을 결심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1차 침략 때보다 더 잔인해질 전쟁을 예고한다.

1597년, 일본군이 다시 조선을 침략해 온 '그날'
7년 전쟁 그 마지막, '정유재란'이 시작된다.

'전라도는 남김없이 모두 쳐라' … 더 잔혹해진 2차 침략!
1차 침략에서 철수한 일본은 다시 한 번 조선 재침을 단행한다. 2차 침략의 목표는 조선의 '경기, 충청, 전라, 경상'의 4도를 확보하는 것. 조선 땅에 상륙한 왜군은 병사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까지 무참하게 학살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병사 한 사람마다 죽여야 할 할당량을 지정해주고 그 증거로 코를 베어오게 한다. 일본 교토에는 당시 살해당한 조선인 2만 명의 코가 묻힌 코무덤이 남아 있다. 조선에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남긴 정유재란, 더욱 잔인해진 일본 침략의 역사를 살펴본다. 

'전라도를 장악하라' … 일본의 이순신 장군 제거 음모
1차 침략 당시 이순신 장군에 의해 보급로를 차단당했던 왜군. 하지만 전라도를 수중에 넣기 위해서는 장군이 지키고 있는 남해를 지나가야만 했다. 왜군은 바닷길을 확보하기 위해 이순신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그의 라이벌인 가토 기요마사의 정보를 일부러 조선 측에 흘린다. 일본측의 정보를 믿은 선조는 출병을 명한다. 하지만 일본의 음모를 간파한 이순신은 출병을 거부한다. 선조는 분노했고, 결국 통제사는 삭탈관직되어 백의종군하게 된다.

13 VS. 330, 기적적인 승리를 안긴 명량해전!
이순신의 뒤를 이어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 하지만 그는 칠천량에서 대패해 조선 수군의 대부분을 잃고 자신 역시 전사하고 만다.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의 자리에 오른 이순신에게 남은 건 판옥선 12척 뿐. 1597년 9월 16일, 이순신은 명량해협에서 13척의 판옥선으로 330여척의 왜 수군선과 맞선다.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必死卽生 必生卽死)" 조선의 앞날이 걸린 위기의 순간에 이뤄 낸 명량해전의 극적인 승리! 명량해전이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이순신 장군의 전략과 비결을 살펴본다.

이순신의 죽음과 노량해전
1598년 8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 후 일본은 조선에서 철수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철군은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 조선 수군이 바닷길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음력 1598년 11월 19일, 조명연합수군은 퇴로 확보를 위해 노량 해협에 집결해오는 일본 수군과 격전을 벌인다. 수세에 몰린 왜군은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이틀에 걸친 격렬한 전투 중에 조총탄 총탄 하나가 이순신의 가슴 부위를 관통한다. 전투는 조명연합군의 승리로 끝나지만, 이순신은 승리를 보지 못한 채 눈을 감는다. 노량해전으로 전쟁은 끝을 맺는다.

7년 전쟁, 임진왜란이 동아시아 삼국에 남긴 것은 무엇일까? 6월 29일(일) KBS 1TV 밤 10시 35분에 방송되는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1597년, 일본이 조선을 재침략한 '정유재란'에 대해 알아본다. 임진왜란 4부작 4편 '정유재란, 일본군 조선을 다시 침략하다'

출처 - http://www.kbs.co.kr/1tv/sisa/theday/view/preview/index.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