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가시 평론인줄 알았는데...
숙주의 뇌 조종하는 기생충, ‘연가시’ 말고도 더 존재한다.
영화 <연가시> 가 개봉 4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스파이더맨> 보다 스크린 수가 적음에도 2배 이상의 관객을 모으고 있는데, 이런 추세라면 손익분기점인 240만명을 넘어 역대급 순위를 기록하는 것도 가능해 보인다. 내가 보기에 <연가시> 의 성공 요인은 기생충이 배우들의 대사에서만 나올 뿐 화면에 거의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소복 입고 머리 긴 귀신이 30초 간격으로 화면에 나오는 한국 공포영화처럼 꿈틀거리는 연가시가 시도때도 없이 화면을 메웠다면 관객들이 영화를 즐기지 못했으리라. 제작진도 비슷한 말을 한다.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부분도 많이 배제했고요. 사람 몸속에서 연가시가 뚫고 나오는 장면도 원래는 피가 나오는데 관객들에게 너무 자극적일 것 같아서 생각을 바꿨어요."
영화가 흥행한 영향으로 올여름 물놀이를 가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물론 영화 속의 연가시는 변종이며, 정상 연가시에는 사람이 감염되지 않는다. 연가시의 인체 감염례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귀뚜라미를 삼켰다가 15분 후 연가시를 뱉어낸 세 살짜리 아이의 예에서 보듯 연가시 성충에 감염된 곤충을 우연히 먹어서 걸리는 것이며, 그나마도 인체에서 오래 머물지 못한다. 물놀이 도중 연가시 유충이 들어갔다 해도 그게 사람 몸에서 성충으로 자랄 가능성은 아직 없다.
연가시가 더 공포스러운 이유는 그게 숙주의 뇌를 조종하기 때문이다. 연가시는 어른으로 자란 뒤 물속에서만 짝짓기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곤충을 물에 뛰어들어 죽게 만든다. 숙주를 자살에 이르게 하는 연가시의 특성은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최근 알려진 바에 따르면 연가시는 곤충의 신경전달 물질과 비슷한 단백질을 만들어 분비함으로써 목적을 성취한단다.
기생충을 하등한 동물로만 알았던 사람들에겐 충격일 수 있지만, 기생충 중엔 이런 식으로 숙주를 조종하는 게 여럿 알려져 있다. 고양이한테 가기 위해 쥐가 고양이를 덜 무서워하게 만드는 기생충도 있고, 소한테 가려고 개미로 하여금 풀잎에 올라가 하루 종일 있게 만드는 놈, 새가 종숙주라 물고기가 깊은 물 대신 수면 주위를 헤엄치게 만드는 놈 등 자기보다 수천배 더 큰 숙주를 조종하는 기생충의 능력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최근에는 자살을 시도한 사람이나 차 사고를 낸 사람들이 톡소포자충이란 기생충에 감염되어 있다는 게 알려짐으로써 사람도 기생충의 조종을 받는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그러니,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사람에게 감염되는 변종 연가시가 생긴다면 그것이 영화에서처럼 사람을 강물로 뛰어들게 만드는 것도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니다.
우리가 변종 연가시의 출현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인데, 변종 연가시가 벌써 나타난 건 아닌지 의심될 때가 가끔 있다. 예컨대 어떤 도시의 시장이 홍수를 막는 데 써야 할 돈을 다른 데 씀으로써 그 도시가 물난리가 나도록 유도했다면, 이건 연가시가 물로 가기 위해 그 시장을 조종한 게 아니겠는가? 또 어떤 높은 분이 전국의 강을 연결하는 대운하를 만들자고 주장한다면, 그게 좌절되자 멀쩡히 살아있는 강을 살리자고 목소리를 높인다면, 혹시 연가시 때문에 이렇게 물에 집착하는 게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 또한 연가시에 감염되면 갑자기 식욕이 증가하는데, 자기 돈 가지고는 부족해서 법인카드로 2000만원에 달하는 식대를 긁어댄 모 방송사 사장의 행태도 연가시 감염 말고는 설명이 곤란하다.
영화에서는 윈다졸만이 연가시 특효약이었다. 하지만 그건 영화적 설정일 뿐, 대부분의 기생충은 구충제에 잘 들으며, 변종 연가시라 해서 다를 건 없다. 또 영화에서처럼 연가시가 빠져나간다고 사람이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올여름, 그분들에게 구충제를 드리자. 원래의 냉철한 판단력을 찾을 수 있도록. 그리고 법인카드를 그만 긁으시도록.
경향신문 / 서민 (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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