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회를 나락으로 빠뜨리는 '12가지 콤플렉스'
한국 사회와 그 적들 12가지
지나치게 타인을 의식하는 과시적인 행위들이 초래한 명품 열풍. 물건에 대한 집착이 지나쳐 내면의 참 자기는 잃어버리고 남들이 관찰하는 대상으로서만 존재한다면 허무한 인생일 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전전긍긍하다가 세월 다 보내기 때문이다. 사진은 서울 압구정동의 한 명품 매장. <한겨레> 자료사진
물질 · 교육 · 집단 · 고독 등 열쇳말로 사회 진보 막는 뒤틀린 심리 분석
부동산광풍 · 명품병 · 호화 결혼등 급성장의 그림자 ‘강박증’ 읽어내
“영 · 수 강조하는 입시교육이 아닌 약자에 대한 배려 · 용기 있는 양심
소속감 가르치는 참된 교육 시급”
카를 구스타프 융의 분석심리학을 전공한 이나미 서울대 외래겸임교수·한국 융연구소 교수의 <한국사회와 그 적들>은 지은이가 밝힌 대로 그 제목을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따왔다. 칼 포퍼에게 열린 사회의 적들은 폐쇄적인 전체주의였다. 이나미 교수가 이 책에서 지목한 한국사회의 적들은 한국인들에게 특히 강한 12가지 콤플렉스(complex)다. 이 교수는 이 콤플렉스들이 한국사회가 좀 더 “창조적이고 열린 사회”로 진화하는 걸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지은이가 한국사회에 절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뉴욕 등 외국에서 장기체류한 경험이 있는 그는 한국의 괄목할 만한 경제·문화 성장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고 “선진국은 재미없는 천국이고, 한국은 재미난 지옥이라고 말할 만큼 사람들끼리 비비며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드라마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밤 늦게까지 이렇게 비교적 안전한 상태로 불을 밝힌 상점과 술집을 돌아다니며 놀 수 있는 나라가 전 세계에 몇이나 되겠는가.”
하지만 그는 최근, 특히 2007년 이후 ‘재미’와 ‘지옥’의 균형이 깨지면서 지옥쪽으로 무게 중심이 급격히 기울고 있는 우리 사회를 방치할 경우 조만간 해체와 붕괴로 향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된 것 같다. 지은이는 이를 급성장에 따른 그림자로 표현하면서,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이 남과 비교하며 만들어 가는 병적인 질투심” “기왕이면 앞서가야 한다, 남보다 뒤처지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증”이라고 했다.
사교육 열풍, 부동산 광풍, 조기 유학, 명품병, 호화 결혼식, 과다 혼수 등 한편으로는 성장의 동력일 수도 있지만 지나치면 심각한 고질병으로 변하는 이런 현상들의 뿌리가 바로 질투심, 샘내기 강박증이라는 것이다. 그로 인한 상호 비난과 격심한 경쟁은 전 국민을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예컨대 그가 든 다음과 같은 외국 사례에 비춰보면, 명품에 열광하는 우리 사회의 허장성세는 실로 병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몇 배 잘 사는 선진국에 가면 오래된 기성복을 입고 털털거리는 중고차를 타고 다니는 훌륭한 이가 많다. 명품이나 명차에 열광하는 것은 소수의 철없는 상류층 애들 또는 마약상·폭력배·콜걸들뿐이다.” 이런 지적도 했다. “현재 우리 사회는 백인처럼 성형 수술을 하고, 키 크기 위해 당뇨나 내분비 이상 등을 유발할 수 있는 성장 호르몬까지 처방 없이 맞는 기현상이 만연해 있다.
이것은 그만큼 한국 사회가 동양인으로서의 열등감과 부정적인 자아 정체감, 그리고 낮은 자존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요즘 국회 청문회장에서 거듭 확인할 수 있듯이, 우리 사회는 “증거가 명백한데도 늘어놓는 뻔뻔한 거짓말과 그로 인해 오염된 사건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도대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다.
“사회의 주류가 대체로 거짓말쟁이라면, 바르게 사는 이들이 소외감과 가치관의 혼란을 겪을 것이다. 결국 이런 사회는 현재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붕괴의 길로 들어선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율과 ‘힐링’ 열풍이 암시하듯 증세는 이미 심각하다.
도대체 한국인들, 왜 이러나?
여기에는 여러 정치·경제·사회적 원인들이 작용하겠지만, <한국사회와 그 적들>에서 지은이는 한국인의 심리, 특히 한국인을 괴롭히는 콤플렉스를 들여다 봄으로써 한국인들 불행의 원인을 찾아내고 그 심리적인 처방전을 제시한다. 분석심리학에서 말하는 콤플렉스는 보통 사람들이 얘기하는 열등감과는 다른 개념이란다. “콤플렉스는 무엇이 모자라거나 넘치는 외적 조건보다 더 깊숙하게,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을 휘두른다. 과거의 아픈 기억, 현재의 해결되지 않은 상황, 미래에 대한 걱정, 마음과 몸의 불편한 조건들과 연결되기도 한다.”
이 교수가 이 책에서 분류·정리한 12가지 콤플렉스는 물질, 허식, 교육, 집단, 불신, 세대, 분노, 폭력, 고독, 가족, 중독, 약한 자아와 관련된 뒤틀린 심리다. 책은 이 ‘한국사회의 적들’ 하나하나마다 각각 몇개씩 배치한 길지 않은 에세이·칼럼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한국사회와 그 적들
이나미 지음/추수밭·1만5000원
각 글들을 관통하는 이나미 교수의 분석과 진단·처방은 융 심리학이 지향하는 궁극적 목적, 곧 “내면의 참 자기를 찾는 ‘개성화(individuation)’”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 개성화란 “주변 상황이나 집단적인 흐름 또는 대세에 동조하기보다는 참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관심을 갖고, 자기 내부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가치대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 무의식을 들여다 봐야 한다. ‘남들처럼’ 또는 ‘남들보다’가 상징하는 타인과의 비교·경쟁, 타인에 대한 질투, 샘 강박증에 함몰되는 ‘유치한 아동심리’ 상태에서 벗어나 자신이 설정한 내면의 가치관에 책임을 지는 ‘어른’이 되라는 것이다.
이나미 교수가 보기에 한국인들 다수의 심리상태는 아직도 아동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아동기 탈출은 혼자서는 되지 않는다. 개성화는 주변에 대한 “‘관심’, 하이데거식으로 말하면 ‘마음 씀’, 레비나스식으로 말하면 ‘타자에 대한 배려’”에서 시작되며 그 성과를 주변과 나누면서 더불어 수행해야 한다. 그것은 산에 가서 굴을 파고 혼자 벽을 바라보는 도사의 기이한 수행 같은 것이 아니다. 평범한 우리 일상 하나하나를 개성화 작업 수행과정으로 만들 수 있다.
“무엇보다도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따뜻한 배려, 정의롭지 못한 일은 거부할 수 있는 양심, 국가와 사회에 대한 소속감을 키워주는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 국사, 철학, 노동윤리, 운동을 통한 팀워크, 동아리 활동에서의 리더십 대신 영어·수학 타령만 한다면, 진짜 인재는 오히려 사장돼 버린다. 한국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머리만 좋은 영재보다는 큰 틀에서 사회와 역사를 이해하는 가슴 따뜻한 일꾼이 더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를 모조리 외부탓으로 돌리지 마라. 잘 놀고, ‘남들처럼’의 덫에서 벗어나라. 외로움과 친해져라. 진정한 자기를 찾을 수 있는 기회인 실패와 추락과 고독을 축복으로 여겨라. 패배가 또 다른 의미의 성취라는 것, 진정한 멘토는 유명인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숨어 있는 소박하고 견실한 일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깨달아라.
과잉보호와 불만으로 자라나 의욕도 별로 없는 한국인들보다 젊고 똑똑한 외국인을 받아들이도록 이민정책을 바꿔라.싱글턴(독신생활자) 증가라는 필연적 추세를 가족 이기주의 극복 기회로 삼아라. 진리는 평이한 듯 보이지만, 언제나 실천하기가 어렵다. 요컨대, 이젠 한국인들이 진짜 어른이 돼야 지금 한계를 돌파할 수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한겨레 / 한승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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