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 14. 23:25

反MB, 反한나라 정서 진원지 추적하니 `30대 여성`


수도권 신도시에 사는 직장인 윤서현씨(31)는 진보정당 당원이다. 2008년 촛불집회 때 당원이 됐다. 이념보다는 ‘취향’이 작용했다. “정치 이야기를 취미처럼 공유할 수 있는 집단”을 원했다. 지난해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통합 이후에는 통합진보당으로 소속을 옮겼다. 그가 보기에 민주당은 보수정당이다. 그럼에도 윤씨는 1월 9일부터 14일까지 진행된 민주통합당 지도부 경선 모바일 투표에 참여했다.

이유는 명료하다. ‘참여’가 핵심이다. “의사 표현을 분명히 하고 싶었다. 참여하지 않으면 비판할 수도 없지 않나. 제대로 참여하고 제대로 비판하고 싶었다.” 진보정당 당원이면서 ‘보수정당’인 민주통합당 경선 투표에 참여한 30대 여성 윤서현씨의 한 표는 올해 총선과 대선에서는 어디로 향할까. 한나라당은 아니다. 윤씨만이 아니라 30대 여성 표의 상당수가 그럴 조짐을 보인다. 30대는 그 어느 연령대와 비교해도 ‘반MB’ ‘반한나라당’ 성향이 강하다. 그 중에서도 30대 여성의 반감은 도드라지는 데가 있다.

지표가 있다. 동아일보가 지난해 12월 26~28일 리서치앤리서치(R&R)에 의뢰해 조사한 2012년 신년 여론조사 결과(95% 신뢰수준에서 표본오차 ±3.1%포인트)를 보자.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와 유선전화를 혼용해 조사했다. 조사에서 30대는 이명박 국정수행에 대해 전 연령대에서 가장 낮은 평가를 했다. 30대의 46.2%가 ‘매우 잘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체로 잘못하고 있다’를 합하면 부정적인 평가가 73.1%에 달한다. 30대 여성은 38.5%가 ‘매우 잘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체로 잘못하고 있다’를 합하면 66.7%다. 올해 투표의 향방을 결정지을 2040(20~40대) 유권자들 중 이명박에 대해 가장 부정적이다. 20대 여성은 33.6%가, 40대 여성은 32.5%가 ‘매우 잘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국 지방선거가 치러진 지난 2010년 6월 2일 서울 성동구의 한 투표소에서 한 여성 유권자가 기표한 용지를 투표함에 넣고 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30대 여성들의 표는 어디로 갈까. / 강윤중 기자

반MB·반한나라당 정서 강해

정권 말기에 흔히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일까. 그렇지 않다. 30대의 ‘반MB’ ‘반한나라당’ 성향은 2008년 이후 일관되고 지속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반등하던 무렵에도 그랬다.

2008 년 한나라당 지지율은 한때 20%대까지 추락했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6월 등돌린 민심을 잡기 위해 집권 2기 구상으로 ‘친서민 중도실용’을 내걸었다. 여당은 효과를 봤다고 자평했다. 2009년 9월 14일, 당시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소장 진수희 의원은 당 최고위원회에서 “당의 친서민정책 호응이 여론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근거도 제시했다. 여의도연구소 조사에서 여당 지지율이 37.2%를 기록했다.

조사 한 달 전과 비교해 7.2%포인트 상승한 수치였다. 민주당과는 13.5%포인트 격차를 보였다. 서울에서는 40.1%(한나라당) 대 20.9%(민주당)로 두 배나 앞섰다. 그러나 30대 여성의 한나라당 지지율은 25%에 그쳤다. 30대 여성의 한나라당 지지율은 민주당 지지율보다 오히려 3%포인트 더 낮았다.

대통도 예외는 아니다. 비슷한 시기인 2009년 9월 한길리서치 정례조사에서 이명박의 국정운영은 53.8%에 이르는 높은 지지를 받았다. 불과 1년 전인 2008년 10%대까지 추락했던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반전이다. 그럼에도 30대 여성은 37.9%만이 지지한다고 응답해 40대 여성(30.6%)과 함께 낮은 지지율을 보였다.

이보다 더 원색적인 평가도 있다.

여의도연구소는 4·27 재·보선을 두 달 앞둔 지난해 2월, 30대 여성만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했다. 30대 여성 1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이 집중조사에서 응답자의 80%가 “한나라당이 싫다”고 답했다. “경제 살린다고 해서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찍었더니 오히려 팍팍해졌다” “가진 사람들 편만 드는 부자당 아니냐” “입만 열면 거짓말 아니냐” 같은 반응이 쏟아져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5월 28일 조선일보는 한나라당이 이 결과를 보고 충격에 빠졌다고 전했다. “연구소 측은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참고만 했다. 남경필, 정두언, 정태근 의원 등 소장파가 자료 공개를 요구했으나 연구소 측은 공개를 미룬 채 끙끙 앓고 있다.”

30대 여성은 왜 이렇게 여권을 싫어하는 것일까.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EAI)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은 30대를 ‘안티 한나라당 세대’로 규정했다. 정 부소장은 지난해 5월 ‘안티 한나라당 세대, 30대의 정치행태 분석’이란 논문에서 40대인 386세대나 20대보다 반한나라당 표심이 강하게 나타나는 이유를 “계층적 불만, 정치적 불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요약했다.

지난해 2월 동아시아연구원·한국리서치 여론조사를 보면, 30대의 62.7%가 자신이 ‘하위계층’이라고 평가했다.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계층상승 전망에서도 전 연령대에서 가장 암울했다. 30대의 79.7%가 계층상승 기회가 열려 있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답했다. 청년실업 문제를 앓고 있는 20대(65.4%)보다 높았다.

“정부가 전체 국민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비율도 30대가 76.1%로 가장 높았다.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도 포함된 조사지만, 현재의 삶과 정부에 대한 30대의 평가가 얼마나 신랄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삶의 위기에 대한 30대의 반응이 민감하게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여성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이 주목받은 것은 2008년 촛불집회부터다. 특히 육아·미용·성형·패션 등 여성에 특화된 관심사를 중심으로 2040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82쿡’ ‘소울드레서’ ‘쌍화차코코아’(쌍코) ‘화장발’은 남성들이 주도해온 이념 및 지역 중심 정치와는 결이 다른 ‘생활정치’의 진원지로 각별한 조명을 받았다. 이들은 촛불집회 이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2009년 연말 소울드레서는 카페 차원에서 화장품 협찬 판매를 통해 마련한 수익금을 용산참사 유가족에게 전달했다.

82쿡, 유모차부대, 레몬테라스, 진실을 알리는 시민 회원들은 2009년 언론법 반대 광고비 모금을 위한 바자를 열었다. 흔히 ‘여성 삼국 카페’로 알려져 있는 소울드레서, 쌍코, 화장발 회원들은 2009년 연말에는 저소득층 돕기 바자를, 2010년 8월에는 4대강 사업 저지 기금 마련 바자를 여는 등 오프라인으로까지 활동범위를 넓혔다.

여성 삼국 카페(쌍코, 화장발, 소울드레서), 진실을 알리는 시민들의 모임, 촛불 나누기 등 촛불 시민단체들이 주최한 ‘바보들 사랑을 담그다’ 김장행사에 참가한 여성회원들이 지난 2009년 6일 서울 안국동 조계사에서 김치를 담그고 있다. 이 행사는 복지예산을 삭감해 4대강 사업을 하려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마련됐다. 이날 담근 김치는 차상위 계층과 장애인 시설에 전달됐다. /남호진 기자

삶의 위기에 대한 반응 민감

30대의 비판의식은 문화상품 소비에서도 나타난다. 광주인화학교 장애학생 성폭력 문제를 다뤄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소설 <도가니>에 대한 인터넷 서점 예스24 집계를 보면, 출간일부터 지난해 10월 11일까지 이 책 구매자의 35.9%가 30대(여성 25.8%, 남성 10.2%)였다. ‘나꼼수 열풍’을 타고 베스트셀러에 오른 <닥치고 정치>는 같은 기간 구매자의 절반이 넘는 53.7%가 30대(여성 19.8%, 남성 33.9%)였다.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만으로 30대 여성의 정치의식을 다 가늠할 수는 없다. 눈에 드러나게 활동하는 이들은 전체에 비하면 소수일 수밖에 없다. 윤서현씨가 자주 가는 온라인 커뮤니티는 디비디프라임, 듀나게시판, 레몬테라스다. 모두 촛불집회 당시 집회 참여 및 신문광고 게재 등 적극적 행보를 보인 커뮤니티들이다.

그러나 민주통합당 모바일 경선에 투표할 정도로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실천하고 있는 윤씨의 커뮤니티 ‘활동’은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을 살펴보는 정도가 전부다. 출범 때부터 온갖 비리의혹이 불거졌던 현 정권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직장 초년생인 지금은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부동산 부양 정책 등 내게 여러 가지 불리한 정책들이 집행되고 있다는 게” 좀 더 직접적인 불만으로 다가온다.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다 2007년부터 전업주부가 된 정영신씨(39·가명)가 자주 찾는 온라인 커뮤니티는 여행 커뮤니티다.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여행지 정보를 찾기 위해서다. 정씨는 2008년 촛불집회에 한 번, 지난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집회에 한 번 참석했다. 대학 4학년 때 단과대 부학생장을 지낸 그는 또래들에 비해 진보성향이 강한 편이다. 과천에서 이웃들과 함께 공동육아를 하고 있고 초등학교 5학년인 그의 아이는 인근 대안학교에 다닌다.

하지만 그가 대통이나 여당에 반대하는 이유는 ‘이념적으로 진보’이기 때문은 아니다. ‘엄마’와 ‘주부’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하게 작용한다. “대학 시절에는 내가 느껴서라기보다는 당위적 차원의 반대가 많았다. 지금의 나는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는 차원에서 (여당에) 반대한다. 상대가 이명박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엄마라서다.” 당면한 고민은 물가다. 그는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자부하지만 “물가가 너무 뛰어서 너무 힘들다. 내가 이 정도면 다른 집은 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전업주부 최효진씨(37·가명)는 촛불집회 때 유모차를 끌고 서울 광화문에 나간 적이 있다. 당시 엄마들은 대부분 30대 초반이었다. 그는 ‘X세대’ ‘신세대’ 등의 말이 자신의 세대를 규정짓는 열쇳말로 통용되던 90년대 초반에 대학에 들어갔다. 경제적으로는 호황기, 정치적으로는 문민정부 출범 이후의 민주화 시기, 문화적으로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유례없는 문화적 폭발의 시기에 대학생활을 한 그에게 정치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촌스러운 것’으로 여겨졌다. 정치인 노무현에게도 관심이 없었다. 이명박 정권은 그런 그를 투표하게 만들었다. 아이가 생기면서부터다.

지난해 12월 23일 오후 제주도 제주시청 상징조형물 앞에서 열린 ‘한·미 FTA 폐기, 한나라당 심판’ 촛불집회에서 여성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념보다 엄마로서의 정체성 강해

최씨에게는 ‘환경’과 ‘육아’ 문제가 정권에 반대하는 원인이 됐다. “아이가 생기면서 비단 정치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먹거리와 관련된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30대 엄마들이 보기엔 정부 정책이 환경에 적대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 20대 남성 직장인이라면 무상급식을 반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선별적 급식이 내 아이가 다닐 학교에서 차별이 당연시되는 분위기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내가 원하는 건 단순 복지가 아니라 덜 경쟁적이고 더 부드러운 사회다. 그런 사회를 가장 많이 바라는 게 30대 엄마들이 아닐까.”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30대 여성들은 세대적으로 전 세대에 비해 학력 수준이 높은 편이고, 연령적으로도 직장·자녀·보육 등의 문제에 직면하는 층이다. 반면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는 미비한 수준이어서 그 불만이 현 집권세력을 향할 수밖에 없다”며 “집권세력이 교체되더라도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집권세력에 대한 불만이 또다시 표출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이 만드는 시사주간지 주간경향 / 정원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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