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역사학자 발터 샤이델(Walter Scheidel)는 <불평등의 역사>에서 불평등이 일어나는 요인부터 석기시대에서 현대의 경제적 불평등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인 변화를 충실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저서의 제목에는 `폭력, 그리고 불평등의 역사; 석기시대부터 21세기까지`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leveler는 `평등하게 만드는 것`쯤으로 풀이할 수 있는데 발터 샤이델은 그것을 `폭력`으로 분석한 것이 특이하다.
그는 석기시대 이래 불평등은 인류의 숙명같은 것이었으며, 역사적으로 잠시 불평등이 깨지고 평등과 평준화가 유지됐던 몇 차례의 시기는 폭력이 가져다줬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폭력이 단순한 주먹싸움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전쟁과 같은 강력한 충격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인류가 이룩한 문명조차 평화적인 평등화에는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의 질서를 붕괴시키고 부의 불균형이 가져오는 빈부의 불평등을 좁히기 위해서는 폭력, 즉 강력한 충격이 중요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한 폭력을 대중이 동원된 전쟁, 변혁적 혁명, 국가의 붕괴, 치명적인 전염병의 네 가지로 나누었다. 그리고 숙명적인 인류사회 불평등의 벽을 허물고 잠시라도 평등을 가져왔던 폭력들을 네 명의 기사로 표현했다.
선진국들이 참전했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선진국들의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크게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특히 미국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일어난 경제대공황이 소득과 부의 평준화에 전쟁보다 더 큰 역할을 했다. 20세기에 불평등을 줄인 것은 전쟁이라는 대혼란이었다는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에서 일어난 불셰비키 혁명은 극적으로 불평등을 감소시켰다. 1917년 혁명 이후 농장과 은행이 국유화되고 노동자 평의회가 공장을 장악하면서 이루어진 소득과 부의 재분배는 불평등을 무너뜨리는 사회주의 혁명이었다.
하지만 그로 말미암아 수십 년 동안 수백만 명이 희생됐으며, 계급투쟁을 통해 모든 인민들이 평등하게 잘살도록 한다는 사회주의 구호는 결과적으로 모든 인민들이 가난하게 평등해지는 헛된 구호가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그와 같은 급진적 혁명이 이어졌다.
서로마제국, 중국의 당나라, 가깝게는 아프리카의 소말리아 등은 국가와 문명이 붕괴됨으로써 한동안 불평등이 사라졌으며, 유럽을 휩쓴 페스트(흑사병)와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퍼뜨린 전염병들이 자연스럽게 소득격차를 줄어들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폭력적 충격들이 완화되면 다시 불평등이 확산됐다는 것이다.
발터 샤이델의 견해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결국 평등은 비명과 울음 속에서 탄생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인간들의 이상인 자유와 평화는 결코 평등을 보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얘기가 된다. 따라서 인간의 불평등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인 듯하다.
하지만 불평등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대로 방치하면 숱한 부작용을 낳고, 그것이 어느 한계에 다다르면 마침내 반란, 혁명, 전쟁 등이 일어나 자칫 국가가 무너진다. 혁명과 전쟁은 필연적으로 수많은 인간을 희생시키고,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에서 전염병이 창궐하게 된다.
그러한 충격들이 뜻하지 않게 일시적인 평등을 가져오고, 평화시대가 오면 다시 불평등이 확산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이 인간세상이다. 이러한 상황들도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지적한 불평등의 원인인 외적 환경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불평등은 자연의 법칙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보다는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인지도 모른다.
- 알아두면 잘난척하기 딱좋은 문화교양사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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