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5. 19:05

오늘의 영어 한마디, 소득이 보장되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What would you do if your income were taken care of?”

부자에게도 기본소득을 줘야 할까

부자에게 기본소득을 주는 것에 대해서도 반론이 만만치 않다. 돈이 넘쳐나는 부자에게 왜 기본소득을 줘야 할까. 영국이나 호주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모토를 만들었던 대표적인 복지국가였다.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워낙 강했던 이들 국가는 주로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복지 시책을 펼쳤다. 그 결과 정권이 바뀌고 신자유주의가 등장하면서 오히려 가장 복지 수혜 수준이 낮은 자유주의 복지국가로 전환(몰락)하게 되었다.

이른바 '재분배의 역설 paradox of redistribution'이다. 가난한 사람만 돕는 복지정책을 펼치는 국가는 중산층과 고소득층의 조세 저항에 부딪히면서 오히려 더 적은 복지 혜택을 제공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에게 복지 혜택을 충분히 제공하기 위해서는 세금을 내는 중산층과 고소득층에게도 혜택을 줌으로써 복지 확대에 대한 지지를 얻어야 한다.

강남훈 교수는 선별소득과 기본소득(비례세)의 비교를 통해 중산층이 복지 수혜자가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했다. 세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첫 번째 사람은 시장소득이 0원(1계층)인 실업자다. 두 번째 사람은 200만 원(2계층), 세 번째 사람은 800만 원(3계층)의 소득이 있다. 경제 전체로는 1,000만 원의 소득이 발생한 것이다. 선별소득은 1계층에게 30만 원의 보조금을 주고, 2계층과 3계층에게는 보조금을 주지 않는 정책이다.

필요한 보조금 30만 원을 주기 위해서 1,000만 원의 총소득에 3%의 세금을 매겨보자. 그러면 2계층은 200만 원의 3%인 6만 원의 세금을 내고, 3계층은 800만 원의 3%인 24만 원의 세금을 낸다. 이렇게 해서 30만 원의 보조금 정책을 펼칠 수 있다. 이때 순수혜라는 것을 계산해야 한다. 1계층은 보조금으로 30만 원을 받고 세금은 하나도 안내기 때문에 순수혜가 `+30만 원`이다. 2계층은 보조금을 못받는 대신에 세금 6만 원을 내니까 순수혜가 `-6만 원`이다. 3계층도 마찬가지로 계산하면 순수혜가 `-24만 원`이다.

이번에는 기본소득(비례세)을 살펴보자. 시장소득은 앞선 조건과 동일하다. 기본소득은 1계층뿐만 아니라 2계층과 3계층, 즉 중산층과 부자 모두에게 30만 원을 보조해주는 정책이다. 필요한 보조금(90만 원)이 3배이기 때문에 시금도 3배 많이 필요하다. 90만 원의 세금을 걷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9%의 세율로 공평하게 과세해보자. 그러면 2계층은 18만 원, 3계층은 72만 원의 세금을 내게 된다.

무엇보다 선별소득과 비교했을때 순수혜가 달라진다, 2계층(중산층)의 순수혜는 `-6만 원`에서 `+12만 원`이 되고, 3계층(고소득층)은 `-24만 원`에서 `-42만 원`이 된다. 기본소득(비례세)으로 하면 중산층이 순부담자였다가 순수혜자로 바뀌게 되고, 고소득층은 2배 가까이 오른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 따라서 '부자에게 왜 기본소득을 주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 부자에게 더 많이 부담시키기 위해서다. 두 번째, 중산층을 순부담자가 아닌 순수혜자로 만들기 위해서다. 중산층이 순수혜자가 되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중산층의 상당수가 비정규직과 불안정 노동자로 전락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며 중산층에게 세금을 더 내라고 설득하는게 과연 가능할까? 중산층까지 순수혜자로 만들 수 있는 기본소득이 갈수록 타당성을 얻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조건없는 기본소득은 공정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이 존재론적인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세상이 가능할 수 있다.'

무엇보다 애초 기본소득은 일자리 정책이 아니다. 따라서 고용유발 효과의 유무는 기본소득을 도입하는데 필수적인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기본소득의 가치는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핀란드의 최종 보고서에 따르면, 기본소득 수령인들은 대조군보다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더 나아진 삶을 경험했다. 삶에 대한 만족도 더 크고, 정신적 압박이나 우울증, 슬픔, 외로움도 덜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기억, 학습, 집중력 등의 인지기능도 더 좋았다. 게다가 기본소득 수령인들은 대조군보다 자신의 소득과 경제적인 `웰빙`에 대해 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신용과 신뢰도 역시 기본소득 수령인들 사이에서 더 강했다. 실험군은 대조군보다 타인과 사회기관들을 신뢰한다는 응답을 더 많이 했다. 그들은 또한 자신의 미래 가능성에 대해서도 더 높이 신뢰했다.

기본소득 수령인들은 대조군보다 관료주의를 더 적게 경험했다. 이번 실험에서는 기본소득 수령인 일부에게 사회에 참여하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자원활동이나 비공식 돌봄활동을 안내했다. 많은 인터뷰 대상자들이 기본소득을 통해 삶의 자율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핀란드 정책 입안자들 사이에서도 기본소득을 주면 근로의욕이 줄어 일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와 반대가 많았다.

하지만 실험 결과를 보면, 실업수당을 받기 위해 엄격한 조건을 내세운 경우보다 구직활동이 크게 줄지 않았다. 조건없이 돈을 주면 사람들이 무책임해질 것이라는 기본소득 반대론자들의 주장이 틀렸음을 증명한 셈이다. 더 나아가 기본소득은 고용을 늘리는 것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기본소득은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 모든 사람이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진정한 의미의 자유는 모든 사람이 삶의 물질적 기반을 보장받음으로써 경제적 공포로부터 해방될 때 누릴수 있다. 따라서 고용 효과를 주된 목표로 삼았던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은 기본소득의 본질적인 의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제한적 실험이었다. 처음부터 실험 대상을 실업자만으로 한정했다는 점에서 과연 온전한 `기본소득` 실험인가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핀란드의 실험은 노동과 삶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자동화와 기술의 발전으로 고용 노동이 사라지고 있는 사회에서 삶의 의미를 고용 노동에서 찾으려는 것은 실효성도 없고 타당하지도 않다. 매우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 결과에서 확인한 것은 기본스득이 사람들에게 일정한 물질적 기반을 제공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적 관계 또한 긍정적이고 의미있는 것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 이재명과 기본소득 중에서

 

이재명과 기본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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