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 23. 20:40

털없는 원숭이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정보를 얻으려면 저녁에 9시 뉴스를 보거나 매일 아침 배달되는 신문을 봐야했는데 그때도 전화선에 14400bps 모뎀을 연결한 PC통신이 있긴 했지만 지금과 같이 초광속으로 실시간 업데이트나 정보 교류가 가능한 인터넷망과는 차이가 컸기에 이동할땐 소형 카세트 겸용 라디오가 지금의 스마트폰 역할을 했다고 해야겠죠. 그 당시에는 MBC, KBS 등 방송국 라디오 FM, AM 주파수를 다 외웠는데 88.9하고 92.7 메가 헤르츠였던가. . MBC는 2시의 데이트 김기덕, KBS는 팝스 다이얼 김광한의 팝 뮤직이 쌍벽을 이루던 시절.

신문도 조판이 세로이면서 한자도 혼용되다가 90년대 중반으로 가면서 가로 쓰기와 한자 배제가 이루어졌고, 흑백에서 간혹 컬러 페이지가 보이기도 했는데 2~3장을 넘기면 하단에 영화 포스터들로 도배된 광고가 있었고, 그때는 대작들이 개봉되는 시기가 비교적 일정했으니 주로 연초 설연휴, 여름과 겨울방학, 추석연휴, 연말 등의 대목에 사람들이 극장가로 몰렸습니다. 영화관도 지금처럼 멀티플렉스가 아닌 극장가 골목의 여러 영화관들이 개봉 작품들을 하나씩 나누어 상영했는데 보통 3주에서 흥행하면 한 달 넘게 걸려있곤 했습니다.

그렇게 영화 광고를 보려고 신문지를 넘기다 눈에 들어온 부분이 있었는데 보통 잘 볼 수가 없던 책 광고가 하나 보였습니다. 그게 이 책인데 도서 광고치고는 크기가 제법 컸고, 제목도 좀 특이하게 다가왔었죠. `털없는 원숭이`라. . 이게 사람을 의미한다는 건 알 수 있었지만, 사람을 털없는 원숭이라고 지칭하는게 좀 왠지 색다른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읽어보니 '학계와 종교계, 그리고 일반인들 사이에 상당한 논란'을 일으킨 내용을 담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 사람을 유인원 수준으로 격하시켰다라는 충격과 분노의 반응도 나오면서 판매금지까지 당한 모양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분명히 밝히기를 '어디까지나 동물학적인 면에서 인간을 조명한 책'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이런게 문제될 시절이 아니고, 내용이 별 충격적이지도 않지만 이 책이 출간된 게 1967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땐 한 번 발칵 뒤집어질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다른 종들에 비해 최고로 진화된 `전두엽`을 가지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파충류 뇌도 여전히 한 켠에 남아있고, 지금도 짐승보다 못한 사람들이 가끔씩 일 저지르고 카메라 앞에 나와서 얼굴 드러내기 싫어 몸부림치는 세상이니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는 것도 사람이 어떤 종인지 생각해보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