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7. 11. 23:57

퍼시픽 림(Pacific Rim), 육중한 메카닉에서 나오는 묵직하면서도 처절한 액션

`카이쥬`는 일본말로 '거대한 괴수'라는 뜻이고, `예거`는 독일어로 '헌터, 사냥꾼'이라는 의미이다. 영화가 시작하는 첫 장면에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다. `맨 오브 스틸`의 경우에서처럼 어릴 때 마음 속 깊이 새겨진 수퍼맨과 같이 아득한 기억의 저편에 일요일 오전이나 아침마다 만화영화를 방영해주던 시절, 짱가, 그레이트 마징가부터 그랜다이저, 은하철도 999, 천년여왕 등으로 이어지는 장편 씨리즈들과 달리 아주 특이하게 만화가 아닌 그렇다고 실사라고 하기도 뭣한 미니어처가 등장하는 작품이 있었다.

제목은 완전 기억나지 않고, 하여튼 어디서 퍼시픽 림처럼 공룡같은 괴수가 등장을 해서 한창 신나게 다 때리 뽀수고 있으면 또 어디선가 앞부분이 뾰족한 쐐기 모양의 장갑차가 쏜살같이 달려와 서로 주고받는 대결을 벌이더니 위기상황을 만들어야 TV 앞에서 보는 어린이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할 수 있으므로 일단 한 판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두 번째로 이번엔 양쪽에 톱니바퀴가 달린 날개를 단 황동색의 비행체가 날아와 아군을 도와준다. 신나는 음악과 함께...

하지만 크기가 엄청난 괴수를 상대하기엔 다소 역부족이었고 결국 괴수의 정신을 상그럽게 해서 화만 돋구어 더욱 발광시켜 방방 뛰게 만든다. 그러다가 무식하게 힘만 쎈 괴수를 어리둥절케 하는 전략을 선보이니 그것은 퍼시픽 림에 나오는 것과 비슷하고 괴수와 동등한 덩치의 로봇이었다. 그제서야 한 번 제대로 붙어볼 수 있는 싸움판이 벌어지는데 어린 마음에도 거기서 처절함이 보였다. 퍼시픽 림처럼...

그때 나온 덩치 큰 괴수들은 모양새가 대략 이랬다. 색깔은 이렇지 않았고 아마 고무 재질 때문인 것 같은데 이름을 파랭이, 반달이로 지어주었다. 그나저나 혹시나 해서 찾아봤더니 이게 아직까지 있다니... “크하하핫~ 가소롭구나, 멍청한 인간들 다~ 밟아버리겠쓰. 우린 빌딩 후리기 전문이야!!”

그렇담 예거로 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골라보니.. 이런 게 있는데...

“잘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이러면 체급이 안 맞잖아.

“넹~, 그러시다면 둘이 동시에 덤비십시요.”

플라즈마 포가 불을 뿜기 직전 일단 내빼고 보는 파랭이.

나니아 연대기 두 번째 에피소드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첫 번째 에피소드는 향후 개봉 예정인 `마법사의 조카`) 이 영화로 나왔을 때 그 홍보 포스터를 보며 느꼈던 아련한 기억의 감정을 이 퍼시픽 림이 다시 한 번 떠올려 주었기에 이 영화를 보러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예전의 작품에서 괴수와 붙어 생사의 사투를 벌였던 로봇은 처음에 출동한 장갑차와 두 번째 출동한 비행체의 합체로 만들어지는데 이때 굉장히 중요한 것이 두 조종사의 정신적 결합이었고, 이는 퍼시픽 림에서도 `드리프트`라는 용어로 대두된다. 또한 `집시 데인저(Gipsy Danger)`의 두 파일럿과 동일하게 남, 녀로 이루어졌다는 것도 묘한 공통점이다.

건담이나 에반게리온 씨리즈에서는 한 명의 파일럿이 로봇의 가슴에 들어가 조종하는 반면 로보트 태권 V나 이 퍼시퍽 림에서는 두 명이 머리에 탑승하여 조종을 하게 되는데 정신적인 집중과 결합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메카닉과 삼위일체를 이루는 형식에 남-남 커플말고 남-녀 커플도 어떤 면에서는 유대감이 더 좋을 수도 있겠다는 관점에서 괜찮게 여겨진다. 러시아 예거 체르노 알파도 남녀 커플이지만 보통 다른 예거들은 형제, 부자 지간이고, 특이하게 중국의 暴風赤紅(크림슨 타이푼, Crimson Typoon)은 오른팔이 2개라서 그런지 세 쌍둥이가 조종한다. 아래는 판매에 들어가는 집시 데인저 피규어 제품.

길감독이 보여준 그 옛날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실사로 이처럼 구현한 기술과 노력은 아주 놀랍다. 영화에서 괴수와 예거가 펼치는 액션에서는 육중함과 묵직함이 느껴지는데 메카닉에는 이게 더 어울린다. 너무 크고 현실적이지 않다는 의견도 봤는데 그렇게 따지면 만화영화나 애니메이션, 그리고 순식간에 변하는 경쾌한 속도감을 보여주는 트랜스포머도 말이 안되기는 마찬가지지. 거기서 프라임을 비롯한 다른 로봇들은 브리치에서 포털을 타고 출몰하는 괴수들처럼 외계에서 온 존재들이지만 여기서 예거들은 각 나라들이 만든 인류의 산물들이다.

그리고, 이런 로봇 이야기는 스토리도 별반 특이할 거 없이 대체로 뻔하다. 어디선가 괴수가 등장해서 다 때려 부수고 있다. 우리편 로봇이 출동한다. 그래서 둘이 쎄리 붙는 UFC 한 판이 벌어진다. 여기서 U는 얼티밋이 아니고, 유니버살~. 그래서 결과는? 우리가 이겼다. 또, 다음엔 졌다. 그러다가 막판엔 이긴다. 마지막에 지면 지구종말이니까. 그래서 ''끝내... 이.기.리.라~~!''로 마무리 되는 이야기임은 다 알고 보는거다.

그리고, 이건 망구 내 생각이지만 전체적으로 흐름이 좋았던 내용 중에서 보다 진화하고 영리하며 더 커진 괴수들이 아주 치밀한 작전을 펼치며 쌍으로 홍콩을 덮쳤을 때 EMP 공격으로 손상을 입어 움직이지 못하는 스트라이커를 도와주러 집시 데인저가 긴급 출동하는 장면이 있고, 그 사이에서 일종의 이야기적인 틈새가 보였다.

그 공백을 별로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체르노 알파와 크림슨 타이푼을 대신하여 만약에 대한민국에서 만든 태극마크를 단 코리안 예거가 나타나 시가지를 난장판으로 만들며 활개치던 나머지 괴수 한 마리를 상대하는 것으로 처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길감독 센스가 쪼메 아쉽네. ㅋ~ 그랬다면 집시 데인저와 합작으로 괴수를 아작내는 연합 플레이가 인상적이었을텐데. 그러면 한국 예거 로봇을 조종하는 2명의 배우는 누구로 캐스팅하면 좋을까.

아무튼 이 영화는 생각에 당연히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적어도 조건부 흥행(?)은 가능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곧 방학을 맞은 학생들과 아이들 그리고 이들을 동반한 가족 단위부터 10대 청소년 시절 로봇 애니메이션을 즐겼다든지 또는 나이가 많더라도 어릴 때의 로봇 만화영화를 보던 추억을 마음에 간직한 사람들에겐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영화 보고 나오는데 할인권을 줘서 영화 또 보러 가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