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27. 11:50

백의종군 행로

'나는 정유년 4월 초하룻날 서울 의금부에서 풀려났다. 내가 받은 문초의 내용은 무의미했다. 위관들의 심문은 결국 아무것도 묻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헛것을 쫓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언어가 가엾었다. 그들은 헛것을 정밀하게 짜 맞추어 충(忠)과 의(義)의 구조물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들은 바다의 사실에 입각해 있지 않았다. 형틀에 묶여서 나는 허깨비를 마주 대하고 있었다. 내 몸을 으깨는 헛것들의 매는 뼈가 깨어지듯이 아프고 깊었다. 나는 헛것의 무내용함과 눈앞에 절벽을 몰아세우는 매의 고통사이에서 여러 번 실신했다.

나는 출옥 직후 남대문 밖 여염에 머물렀다. 내가 중죄인이었으므로 그들은 직접 나타나지 않았다. 종들은 다만 얼굴을 보이고 돌아갔다. 이 세상에 위로란 본래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나는 장독으로 쑤시는 허리를 시골 아전들의 행랑방 구들에 지져가며 남쪽으로 내려와 한달 만에 순천 권율 도원수부에 당도했다.

내 백의종군(白衣從軍)의 시작이었다.'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 중에서>

 

[임진왜란 47] 백의종군과 모친상

이순신 장군도 많이 울었다. 백의종군 행로 '나는 정유년 4월 초하룻날 서울 의금부에서 풀려났다. 내가 받은 문초의 내용은 무의미했다. 위관들의 심문은 결국 아무것도 묻고 있지 않았다.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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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이순신길, 조선수군 재건로와 명량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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