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대지 - 생 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 생 텍쥐페리 지음, 최복현 옮김/이른아침 |
라이트 형제가 비행에 성공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절 일단 뜨면 비행기요, 원시적인 형태의 구조와 재질에다 언제 툴툴거릴지 모를 불안한 엔진을 부여잡고 비가 오면 덮개 없는 조종석에서 가죽점퍼가 흥건하게 비를 맞으면서 비행기를 몰던 시절에 절대 해선 안될 철칙 1호는 구름바다가 펼쳐진 운해 위를 비행하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첨단 항법장치와 멋진 기체에 장착된 정밀부품들로 그럴리 없지만 그때만해도 일단 엔진에 이상이 생기면 땅으로 곤두박질 치기 바빴을테니 구름 밑의 지형이 어떤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 제일 위험한 모양이었다. 유럽의 알프스 산맥에 있는 높고 험한 바위산이 구름 바로 밑에 있다면 추락으로 살아날 확률이 그만큼 떨어지는 위험스러운 직업임에도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비행기 조종석에 앉아 창공을 날게 했을까. 그들 비행기 조종사들은 땅에 내려온 것을 귀환했다고 하면서도 다시 돌아간다는 표현으로 비행에 대한 향수를 표현하곤 했다.
아마 비행기라는 새로 등장한 물건과 항공기 조종사라는 새로운 분야가 생기면서 사람들이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들에 눈뜨게 되는 경이적인 체험의 신선한 충격은 대단했지 싶다. 땅에서만 보던 풍경들이 하늘 높이 올라가서 내려다 보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던가 저 멀리에 있는 풍경까지 한 눈에 들어오는 탁 트인 시원함. 그리고 왼쪽에는 멀리 펼쳐진 평원이 있고, 오른쪽을 돌아보면 끝없는 푸른 바다를 동시에 구경하는 일들은 비행기를 탄 조종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런 새롭고 가슴벅찬 경험들 중에서도 최고는 아주 맑은 날 밤 별들로 가득찬 하늘 밑을 비행하며 우주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었을까. 물론 뱃사람들도 같이 하늘을 바라보았겠지만, 하늘에 떠서 바라보는 것은 상대적으로 또다른 느낌이지 않았을까. 하늘과 좀 더 가까워진 느낌이랄까. 그렇게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며 하늘을 날다보면 모든 것을 잊고 어느 순간 은하수를 비행하며 천국을 향해 가고 있다는 착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낭만적인 상황들만 만끽할 수는 없다. 무선 주파수를 통해 들려오는 동료의 다급한 목소리와 이어지는 침묵... 3초, 10초 계속 시간만 흘러가는 그 순간, 위험한 상황에 처한 동료의 안전을 염원하며 한자리에 모인 그들은 말없는 대화를 나누며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도 모두는 동료의 무사귀환을 믿었다.
그러면서도 세월을 흐르고, 각자의 우편물 배달을 맡은 조종사들은 자기만의 항로를 열심히 비행을 하다가 어떤 때는 그 믿음이 현실로 나타나는 기적같은 순간들을 맞기도 했다. 그의 오랜 동료이자 친구 한 명은 알프스의 춥고 눈으로 덮힌 바위산에 불시착했고,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사람 사는 집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하루만 지나도 모든 것이 얼어붙는 그 오지에서 살아남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날들을 굶주리면서도 오로지 계속 걸어야한다는 일념으로 결국 살아 돌아온 동료를 만난 기쁨은 나중에 그에게 닥친 불행과 위험한 순간을 극복해 내는 밑거름이 되어주었으리라.
여느 때처럼 비행을 하다가 처음 와 보는 사막 한 가운데 불시착한 그와 동료는 물도 없는 메마른 사막에서 오로지 구조되기 만을 기다리며 사투를 벌였던 며칠 간의 기록이 얼마나 절박했고, 많은 상념들을 떠올렸으며 가졌던 바램이 비록 허상이긴 하지만 매일 그들 앞에 찾아왔는지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원제목은 `바람과 모래와 별`이다.
사람의 운명이란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알 수 없는 메커니즘으로 돌아가는 이 세상과 우리의 생에서 그가 오랜동안 비행기 조종석에 앉아 생각했던 것은 바로 인간과 인간성에 대한 깊은 고찰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도 어느 날 비행기를 몰고 하늘로 올라간 후 아직까지 귀환하지 않고 있다. 그의 동료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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