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그 가슴뛰는 마법 - 리처드 도킨스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 -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남 옮김, 데이브 매킨 그림/김영사 |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신화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으며 이 책에서도 곧잘 그것들을 자주 인용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 신화라는 이야기 속의 헛점을 바로 짚어내며 허무맹랑하다는 취지로 딴지를 걸면서 살~짝 까기도 합니다.
그는 저명한 생물학자이지만 DNA, 생화학,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생물 종들의 진화 등 그의 전문분야 외에 원소와 화학, 지구과학, 우리 태양계 그리고, 우주 등 다방면의 광범위한 주제를 이 책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책이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그는 아주 쉽게 설명하고 있으며 거의 그림책 수준으로 삽화들이 실려 있습니다.
그는 `마법`이라는 단어를 세 가지 용법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첫 번째가 흔히 판타지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파이어 볼 같은 '초자연적인 마법'이 있고, 당연하지만 이는 이 책에서 논외입니다. 두 번째는 관객들을 모아놓고 박수를 받으려고 마술사가 펼쳐보이는 `무대 마술`, 세 번째는 저자가 책을 쓰는 주된 목적이자 이유인 `시적 마법`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세 번째 `시적 마법`이란 우리가 현실의 어느 특정 상황이나 순간에 느낄 수 있는 어떤 벅찬 환희나 감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연 속에서 말이죠. 그거야말로 저자의 말마따나 '순수한 마법'이 될 수 있지요.
꼭 어떤 말문이 막힐듯한 풍경뿐만 아니라 만석의 관중들이 모인 아크로폴리스에서 있었던 야니의 공연이 끝나고 연주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인터뷰에서 마치 마술같았다라고 술회하는 것도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아마 이런 순수한 마법의 최고봉은 바로 우주 아닐까요.
또한, 우리가 현실을 아는 방법에도 세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오감을 써서 직접 감지할 수 있고, 이게 힘든 경우 망원경이나 현미경 같은 특수한 도구들로 감각을 보강함으로써 볼 수 있죠. 이도 저도 아니면 과학자들은 간접적으로, 아마도 이렇지 않을까 하는 가설이나 모형을 만든 다음, 그 모형이 현실에서 우리가 보고 느끼는대로 부합하거나 일치하는지를 확인하거나 수정할 수 있습니다.
이런식으로 우리 인간이나 여러가지 생물종들의 진화 과정을 살펴보면 그것은 마술사가 순간적으로 "짠~!"하고 뭐가 바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거쳐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바뀐 시간의 마법이라는 표현이 가능합니다. 그 마법의 최첨단이 오늘날을 살고 있는 바로 우리를 포함한 이 행성과 그 속의 생물체들이죠.
이걸 좀 축소하여 예를 들자면 한 10년 가까이 쓴 컴퓨터를 바꿀때와 비유해볼 수 있습니다. 한 1, 2년 쓰다가 일부 부품 교체나 업그레이드 할 때는 별 문제가 없겠지만 10년을 썼다면 그 사이에 바뀐 부품이나 OS, 드라이버, 인터페이스 등으로 인해 아예 새로 사야되는 경우와 같은거겠죠. 그렇다고 컴퓨터가 마법을 부린다는건 아니고요.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 속에 마법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고, 그렇게 설명되어진 내용이 들어있는 이 책은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이 읽기에 적합한 저서입니다. 그만큼 설명이 쉽게 되어있습니다.
이 책을 보게 된게 후반부에 수록된 11장 `왜 나쁜 일이 벌어질까`와 12장 `기적이란 무엇일까`에 적힌 내용이 궁금해서였는데 과학자답게 형이상학적인 부분은 배제하고, 간결하게 언급하는 점이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맞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일이라는 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그냥 일어나는 것이고,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감정이 특히 나쁜 일에 더욱 영향을 받고 거기에 집착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자연이나 우주는 감정이 없거나 좋고, 나쁨을 따지지 않는다고 보고, 어쩌면 신도 이렇든지 아니면 감정을 알되 모든 것을 초월한 존재답게 무심하다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그냥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물이 흘러가는 걸 보듯이 해야하는지..
사람들이 기적이라고 일컫는 사건에 대해서도 저자는 `초자연적`이라는 말을 거부하는데 이는 무조건적으로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도 일단은 현재가 그렇다는 것이라 해두고, 계속 그걸 과학적으로 알아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취지를 밝힙니다.
그냥 기적 혹은 초자연적 현상이라고 결론내리고 덮어두는 것은 앞으로의 모든 토론과 조사를 막는 것이고, 자연적 설명은 영원히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라면서 지금으로써는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냥 포기하는 것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이해할 수 없으리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죠.
끝으로, 저자는 자가면역질환은 어쩌면 수많은 조상세대가 암에 대항해 진화적 전쟁을 치른 부산물일지도 모른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면역체계는 전암 세포들과의 싸움에서 대체로 이기는 편이라고 하는데 그것들이 완전히 악성으로 발전하기 전에 억제를 합니다.
면역체계가 전암세포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경계활동을 펼치다보니, 이따금 도를 넘어서 무해한 조직과 제 몸의 세포들을 공격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자가면역질환이라고 부르는 상태일 수도 있다는 것이죠. 요컨대, 자가면역질환은 진화가 암에 대항해 효과적인 무기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일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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