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7. 5. 15:31

오늘의 영어 한마디, 임금주도 성장론

wage-led growth

. . . (2015~2016년) 해운업도 산업 차원의 구조조정보다 개별 기업별 재무구조 개선을 요구한 결과 한진해운은 해체되고 현대상선에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으로 금융지원이 지속되고 있다. 해운업은 사실상 좀비산업이 된 것이다. 지동차 산업의 위기도 사업재편에 대한 대응실패의 결과였다. 즉 2018년 초 군산에서 한국GM의 철수는 예고된 것이었다.

이처럼 대기업이 새로운 수익사업을 만들지 못하는 가운데 기존사업을 방어하기에 급급해졌고, 이는 협력업체 및 중소기업의 일감 감소로 이어졌다. 그런 이유로 산업별로는 제조업, 자영업, 건물 경비, 청소, 임대 등 사업시설유지, 관리, 임대서비스업 등에서 일자리가 줄어들고, 종사자별로는 임시직-일용직과 자영업자가 줄어들고, 연령별로는 핵심 노동력층인 40대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 산업 구조조정의 실패가 있다. 예를 들어 청년 일자리 악화 문제는 새로운 산업이 만들어지지 못하는 가운데 기존 주력 사업들은 위축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기존 주력 산업들은 기존 인력과 자동화 등으로 해소되기에, 새로운 인력 충원을 위해서는 기업이 새로운 사업 영역을 확장시켜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동차 산업에서 보듯이 기존 사업의 경쟁력은 약화되고 친환경 및 차량 공유사업 중심으로 사업 재편이 이루어지는 상항에서 가장 약한 고리에 연결된 종사자들이 타격을 입고있는 것이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제조업 리스크`라 부를 수 있다. 제조업에 과잉 의존하고 있는 우리 경제에서 `제조업 리스크`는 `시스템 리스크`다. 그리고 제조업 리스크는 또 다른 시스템 리스크들인 가계부채 리스크, 부동산 리스크, 미래(청년) 리스크 등과 상호 연관되어 있다.

제조업 문제에서 비롯한 경제의 어려움은 1990년대 초 이래 발생한 `탈공업화`에서 기원한다. 이전에 농업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의 전환을 경험했든이, 사실 탈공업화는 산업화를 경험한 모든 국가들이 겪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농업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전환했다고 해서 농업 생산량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농업 사회때보다 훨씬 적은 종사자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생산량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탈공업화의 기본 원인은 기술 진보 등에 따른 생산성 증대의 결과다. 이 경우 탈공업화에 대한 적절한 대응은 줄어든 제조업 종사자로 하여금 새로운 일자리를 갖게 해주는 것이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서비스업 경쟁력의 강화를 주장하는 이유다. 그렇지만 서비스업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산업구조의 문제를 간과한 `구호` 수준이거나 서비스업에 대한 이해부족을 담고 있다. 그뿐 아니라 사회 갈등을 유발하거나 사회 전체 후생과 비례하지 않는 점 등을 간과하고 있다.

`수출 및 부채주도 성장` 전략이 한계에 다다른 지금의 상황에서 구조적으로 취약해진 가계소득과 내수를 강화시키겠다는 정책 목표는 절대적으로 올바른 선택이다. 사실 가계소득 강화의 필요성은 가계소득 증대 3대 패키지 정책을 추진했던 박근혜 정부에서도 인정한 것이다. 또한 균형 성장의 필요성도 동반 성장을 내걸었던 이명박 정부에서 이미 인정한 것이다. 다른 출구가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많은 경제학자들은 사실 소득주도 성장론의 내용을 모른다. 공부한 적이 없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대학원 과정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시장 만능주의에 기반을 둔 주류 경제학만 훈련받는다. 한국 경제학계 만큼 경제학의 다양성이 부족한 나라가 없고, 한국만큼 주류 경제학이 지배하는 나라도 없다. 무슨 경제학에 다양성이 필요하냐고 말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바로보고 이해하는 기준은 하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즉 이들이 소득주도 성장론은 `듣보잡` 취급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공부가 그만큼 협소하기 때문이다.

소득주도 성장론은 학계에서는 임금주도 성장론(wage-led growth),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포스트 케인스학파`의 경제 이론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수요주도 성장(demand-driven growth) 정책으로 추진되듯이 현재 경제의 어려움을 수요 부족, 특히 수요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가계소비의 위축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경제는 시장 관점에서 수요와 공급으로 구분할 수 있다.

교과서 속 세계에서 시장은 균형으로 수렴하지만 현실을 보면 경제의 어려움은 `장사가 안된다`는 말에 담겨있듯이 공급에 비해 수요가 부족한 상황이 일반적이다. 전체 수요는 가계소비 지출, 기업투자 지출, 정부 지출, 국내에서 생산된 상품들에 대한 외국인들의 지출인 순수출(수출-수입)로 구성된다. 이들 수요 항목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가계소비 지출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투자가 절대적으로 수출과 연계되어 있음을 방증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서 수출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인 반면 내수는 우리의 노력에 따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고, 내수의 중심축인 가계소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가계소득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부상한 이유다. 사실 가계소득과 가계소비가 강화되어야 기업투자도 회복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일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인구 5,000만 명이 넘는 나라, 이른바 `30-50 클럽`에 가입했다. 세계 7번째라고 애기하듯이 G7에서 인구가 적은 캐나다를 제외한 주요 선진국들이 `30-50 클럽`에 가입한 국가들이다. 이들 국가는 내수 의존도가 높다는 점을 공통점으로 갖고 있다. 이는 외부 환경의 변화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경제구조를 갖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3만 달러 시대 우리 경제의 과제는 내수 강화가 될 수밖에 없고, 이를 위해서는 양극화의 해소와 괜찮은 일자리 만들기 등을 통한 가계소득의 강화가 필수적이다.

포스트 케인스학파는 수요가 기본적으로 가계소득과 기업소득에 의해 결정되기에 기업의 고용 역시 가계소득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런데 기업은 고용 수준에 이중적 모습을 드러낸다. 경제 전체적으로는 임금과 고용이 높아지면 판매가 증가하기에 기업 전체의 이윤도 증가하지만, 개별 기업의 입장에서는 임금 상승이 단기적으로 이윤을 압박하기에 임금을 최대한 억제할 동기를 갖는다.

경제가 창출한 부가가치를 노동자의 임금과 자본가의 이윤으로 분할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작동하는 이유다. 그래서 포스트 케인스학파는 개별 기업의 근시안적 사고를 벗어나 국민경제 발전에 이르려면 최저임금법, 생활임금 조례, 기업권력의 대항체로 강력한 노조를 장려하는 법안 통과 등 지속적인 국가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문제 인식에 기초해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을 4가지 정책으로 접근하고 있다. 첫째는 최저임금 인상,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 근로장려세제(EITC) 강화, 자영업자를 위한 사회보험 지원강화, 카드 수수료 및 임대료 경감, 불공정 거래 관행 개선 등을 통해 가계소득을 증대시키겠다는 것이다.

둘째는 생활 SOC, 도시 재생 뉴딜 등으로 생활환경 개선, 의료비 경감(문재인 케어), 보육료, 주거, 교육, 통신, 교통 부담 경감 등을 통해 가계의 지출 비용을 경감시키려고 한다. 셋째는 고용보험 확대,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 아동수당 도입, 기초연금 확대, 장애인 연금, 기초생활보장 확대 등 안전망 확충, 복지 강화를 추진한다. 마지막으로 공정경제로 일자리 만들기와 혁신성장을 만들어내겠다고 한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반대할 이유가 없는 이런 정책들을 보수 진영에서는 왜 반대할까?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기업소득과 부자소득 등의 감소가 수반되기 때문이다. 사회안전망 확충이나 사회복지 강화등도 하나하나 살펴보면 반대할 수 없는 정책들이다. 그러나 보니 재정에만 의존하는 재정중독 등의 사유로 공격한다. 사실 한국의 정부 지출은 GDP 대비 서유럽 일부 국가들의 50% 수준과 비교할 때 1/3에도 미치지 않는 15% 수준에 불과하다.

보수 진영은 기본적으로 안전망 확충이나 복지강화 등을 반대한다. 재정 지출 증가는 결국 세금 증대를 수반할 수밖에 없고, 세금은 누진세 구조인데다 소득이 많을수록 세금 납부는 증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상급식이 논쟁되던 시절 보수 진영이 모든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무상급식(보편적 의무급식)을 반대하고 고소득층 자녀를 제외한 선별적 무상급식을 주장하면서 제사한 논리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같은 부자들 자녀에게까지 왜 공짜 점심을 주느냐'였다.

이러한 주장에 일부 국민들이 현혹된 이유는 사회보험과 공공부조의 성격 차이를 모르는데서 비롯한다. 국민연금, 국민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업재해보험 등 사회보험은 혜택을 받는 당사자가 기본적으로 일정 부담을 지는 반면 국민기초생활보장, 아동수당 등 공공부조는 세금으로 충당한다. 세금은 고소득층이나 부자 등이 많이 내기에 부자 자녀는 공짜 점심을 먹는 것이 아니라 `비싼 점심`을 먹는 것이다. 본인이 부자가 아니면서 부자 자녀가 공짜 점심을 먹는 것을 반대했던 사람들은 공공부조와 세금 구조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쟁책들은 왜 이렇게 혼란을 야기할까? 예를 들어 `노동존중 사회`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에게 노동계가 낙제점을 주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최저임금 인상효과가 희석되고 있고, 근로시간 단축 정책이 탄로근로제 확대로 장시간 연장근로와 실질임금 감소가 우려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도 불구하고 고용, 분배악화 그리고 가계소득의 위기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재인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에 따른 혼란은 보수 진영에 반격의 빌미를 제공하면서 소득주도 성장 정책들의 지속적 추진을 어렵게까지 하고 있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한국 경제의 체질변화 없이는 저성장 기조나 심지어 성장 중단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과거의 성장 패러다임이 수명을 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명이 소진된 과거의 패러다임이 지속되면서 한국 경제에도 적폐가 존재한다. 이는 장시간 저임금 근로자에 의존하는 저부가가치 사업장의 존재로 표현할 수 있다. 2017년 대통령 선거때 유력 후보 5인이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을 2020년 혹은 2022년으로 제시할 정도로 최저임금의 빠른 인상에 대해 우리 사회의 공감대는 형성되었다.

전 산업의 노동자들을 시간당 임금 기준으로 1위부터 최하위까지 나열했을때 중간이 중위 임금자의 2/3에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 근로자의 비중이 거의 4명 중 1명인 광범위한 저임금 계층의 존재는 구조화된 격차 사회의 단면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OECD 국가들 중 멕시코 다음으로 최장 근로시간을 가진 나라로 과로에 따른 건강 위협과 삶의 질 저하 등을 수반하는 사회 문제가 지속되면서 근로시간 단축도 박근혜 정부때 이미 여야간 합의가 이루어진 부분이다.

최저임금 인상률 결정은 한국의 산업구조와 관련이 있다. 앞서 지적했듯이 제조업과 재벌 중심의 한국 경제는 1990년대 초부터 산업 체계의 다양화 밈 산업구조의 업그레이드 등 산업 혁신 없이 탈공업화만 진행되는 가운데 정부의 퇴장과 시장의 강화로 재벌중심 경제체제는 더 공고화되었다. 그 결과 대기업과 중소기업 종사자간 임금격차, 임금 근로자와 자영업자 간 1인당 소득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격차 등 격차사회가 구조화되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안전관련 직무를 비정규직이 떠맡고 있는 배경이다. 즉 우리사회는 철저히 비정규직에 의지해 살고있는 반면 2018년 말 김용균 노동자의 희생에서 보듯이 정작 이들 비정규직들에게 안전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비정규직의 안전없이 우리 사회의 안전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사회 구성원 전체의 생명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이것들이 바로 `탈공업화 함정`에 빠진 한국 경제의 적폐들이다. 여기서 `탈공업화의 함정`이란 제조업 종사자가 줄여드는 탈공업화 이후 일자리와 소득에서 제조업의 공백을 채울 준비가 안된 상황, 즉 산업 생태계의 재구성이나 새로운 경제 질서로의 이행 실패나 지연에서 발생하는 사회 경제적 탈구(dislocations) 현상 및 그에 따른 경제 역동성의 쇠퇴, 심지어 반동 현상의 창궐 등을 의미한다.

한국 경제의 적폐는 한마디로 대규모 장시간-저임금 노동자와 그에 연명하는 저부가가치 사업장의 존재인 것이다. 한국 경제의 시대 과제인 재벌개혁(공정경제)과 산업혁신(혁신성장)이 분리될 수 없는 과제인 이유다. 저임금 해소와 근로시간 단축이 문재인 정부에서 핵심정책 이슈로 제기된 배경이기도 하다. 이처럼 최저임금 인상률이 저부가가치 사업장의 생산성을 초과한다면 저부가가치 사업장은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 저부가가치 사업장 종사자의 퇴로가 필요한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저부가가치 사업장 종사자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재배치하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빠른 최저임금의 인상은 산업 구조조정이나 산업 생태계의 재구성과 함께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저임금 인상만 진행되고 산업 구조조정이나 산업 생태계의 재구성 등 혁신성장은 추진이 소홀했거나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최저임금이 문재인 정부에 대한 공격거리가 되었다. 소득주도 성장정책들을 성공적으로 추진했던 다른 국가들과 달리 불리한 산업 환경으로 인해 보수 진영으로부터 쉽게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게 경제다 - 최배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