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9. 21:51

[경향신문 단독] 일본 방사성물질 유입 보고서, 국정원 외압으로 폐기


ㆍ“대외비 지시 내려왔다”

국립환경과학원이 지난해 3·11 동일본 대지진 때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면서 방사성물질이 한국으로 넘어올 수 있다는 보고서를 만들었지만 국가정보원의 외압 때문에 폐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환경부 고위 관계자는 7일 “국립환경과학원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인 지난해 3월 말 대기확산모델을 이용해 분석한 결과 미량의 방사성물질이 지상풍을 타고 한반도로 넘어올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 는 “이 보고서가 나온 뒤 국정원에서 이를 대외비로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며 “이후 보고서를 찢어 폐기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국으로 유입되는 방사성물질의 양은 인체 유해 기준의 100만분의 1 정도의 저농도였다”고 덧붙였다.

국정원이 국립환경과학원의 보고서를 막은 것은 국민들 사이에 불안감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도 원전 사고 직후부터 “한반도는 편서풍의 영향대에 있다”며 “방사성물질은 태평양 쪽으로 흘러갈 뿐 한국으로는 유입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 러나 다른 국내외 전문기관에서도 방사성물질의 직접 유입 가능성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과잉 대응’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당시 전문가들은 한반도 상공에는 편서풍이 불지만 지표 5㎞ 이내의 낮은 고도에서 부는 국지적 지상풍이 방사성물질 유입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지난해 3월28일 서울 상공에서 검출된 방사성물질 제논(Xe133)이 후쿠시마에서 캄차카반도와 북극지방을 돌아 한국으로 남하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노르웨이 기상청도 방사성물질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직접 유입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대기 분야의 한 전문가는 “농도가 강한 방사성물질은 편서풍을 타고 태평양 쪽으로 빠져나가지만 주변의 방사성물질 일부가 캄차카반도를 타고 시베리아를 거쳐 한국으로 올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는 기상청이 “편서풍 때문에 한국은 일본 방사능 공포에서 자유롭다”고 한 것과는 다른 얘기다.

조석준 기상청장은 지난해 5월17일 방사성물질 유입 논란이 잦아든 후에도 “중위도대에 불고 있는 편서풍 때문에 (일본의 방사성물질이) 국내로 유입될 우려가 없다”고 말했다. 지표상에 부는 지역풍의 영향으로 방사성물질이 유입되거나 해외 기상청 분석 자료를 인용한 방사능 위험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부인했다.

국정원의 이 같은 민감한 대응은 정부의 원전 수출 정책과 무관치 않다.

정부는 2009년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원전 4기를 수주한 것을 계기로 원전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했다. 원전 불안감 확산은 원자력 산업화를 통해 세계 3대 원전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정부의 ‘청사진’에는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환경운동연합 양이원영 국장은 “후쿠시마 사고 직후 정부는 UAE에서 열린 원전 기공식에 참석하는 등 원전의 위험성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치적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한국이 편서풍대에 위치해 방사능 안전지대라고 한 정부의 대응은 적절하지 않았다”며 “저농도 방사성물질이 유입되지만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수준이라는 식으로 얘기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국립환경과학원의) 보고서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하고 (폐기하도록) 관여한 바도 없다”고 말했다.

국립환경과학원 기후대기연구부 이석조 부장은 "후쿠시마 원전에서 날아온 방사능의 확산경로를 분석한 것은 맞지만 국정원의 압력으로 보고서를 폐기하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목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