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9. 21:32

니플헤임, 무스펠헤임, 헬헤임 정리

북유럽 신화에는 누군가에 의해 창조되지 않고 태초부터 있었던 공간으로 니플헤임(Niflheim)과 무스펠헤임(Muspelheim)이 있으며, 여기에 죽은 사람들이 가는 저승인 헬헤임이 더해진다. 니플헤임은 세상의 북쪽 끝에 있는 공간인데 언제나 비가 내리고 폭풍이 휘몰아치며 두꺼운 얼음과 눈과 서리가 가득 찬 추운 곳이다. 이곳의 차가운 얼음이 무스펠헤임에서 날아온 불꽃의 열기에 녹아서 세계 최초의 생명체이자 모든 서리 거인과 산악 거인들의 시조인 이미르가 태어났다.

니플헤임과 대칭되는 세상의 남쪽 끝에 있는 무스펠헤임은 온통 불로 가득 찬 뜨거운 공간이어서 외부에서 온 생명체는 살아갈 수가 없었다. 무스펠헤임에는 수르트와 그의 아내 신마라로 대표되는, 온몸이 불로 이루어진 불의 거인들만이 살아갔다. 북유럽 신화에서 불의 거인들은 단 한 번, 신들과 거인들이 싸워 세계가 멸망하는 최후의 전쟁인 라그나뢰크 때 등장하지만 그들의 존재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왜냐하면 수르트는 라그나뢰크에서 무스펠헤임에 사는 불의 거인들을 이끌고 거인들의 군대에 합류하여 신들에 맞서 싸우기 때문이다. 수르트는 불의 칼을 휘둘러 하늘과 땅에 불을 질러서 세상을 불바다로 만들어 멸망시키는 역할도 맡고 있다.

헬헤임(Hellheim)은 니플헤임에 있는 공간이데, 가끔 니플헤임과 동일시되지만 사실은 별개의 곳이라고 봐야 적합하다. 헬헤임은 본래 거인이자 속임수의 신인 로키가 여자 거인 앙그르보다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 헬이 최고신 오딘에 의해 추방되어 살아가는 지역이다.

북유럽 신화에서 헬은 죽은 자들이 가는 공간인 저승을 다스리는 여신으로 여겨졌으며, 그녀가 사는 헬헤임은 저승으로 간주되었다. 오늘날 영어에서 지옥을 뜻하는 단어인 헬(Hell)도 바로 북유럽 신화의 여신 헬에서 유래했다. 헬헤임에서 파멸로 떨어지는 구렁텅이인 가파른 바위 계곡 너머에 헬의 개인 저택 엘류드니르(Eljudnir)가 있다.

그 뜻은 `죽은 사람들의 집`이다. 말 그대로 엘류드니르는 생명이 다해 저승으로 오는 죽은 자들이 헬과 함께 지내는 곳이다. 엘류드니르에서 헬을 시중드는 하인과 하녀는 각각 강글라티(Ganglati)와 강글로트(Ganglot)라고 하는데, 그들의 행동은 매우 느려서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헬이 음식을 담는 그릇은 굶주림이고 그녀가 음식을 자르는 칼은 흉년이며, 그녀가 가는 곳은 질병의 침대, 그리고 침대를 가리는 커튼은 음침한 불운이었다.

북유럽 신화의 세계에서는 용감히 싸우다 죽은 사람들만이 천국인 발할라에 갈 수 있으며, 병이나 늙어서 편하게 죽은 사람들은 모두 헬이 다스리는 헬헤임으로 간다. 다만 헬헤임에는 기독교의 지옥처럼 불에 타거나 하는 극심한 고통은 전혀 없다. 그렇다고 헬헤임이 켈트족 신화의 낙원인 `티르 나 노그`나 `아발론`처럼 즐거운 곳은 결코 아니다. 썩어가는 시체로 가득 찬 어둡고 음침한 공간이다.

그러면 북유럽 신화에서 기독교의 지옥과 비슷한, 고통으로 가득 찬 사후 세계가 전혀 없느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헬헤임에는 쇠로 만들어진 높은 대문이 세워진 나스트론드(Nastrond)라는 공간이 있는데, 이곳에는 거짓말을 하거나 유부녀와 간음하거나 사람을 죽인 범죄자들이 죽어서 간다. 이들은 날개달린 거 대한 용 니드호그(Nidhogg)와 늑대들에 의해서 잡아먹히거나 몸이 찢어지는 고통을 받는다.

북유럽 신화에서는 신도 인간처럼 죽기 때문에, 죽은 신은 저승인 헬헤임으로 간다. 대표적인 예로 최고신 오딘의 아들이자 빛의 신인 발데르는 로키의 꼬드김에 넘어간 호드의 손에 죽자, 헬이 있는 헬헤임으로 갔다. 물론 발데르는 다른 죽은 자들과는 달리, 높은 의자에 깨끗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좋은 대우를 받았다.

니플헤임과 헬헤임은 살아있는 생명체의 공간인 이승으로부터 9일 밤동안 빠른 말을 타고 달려야하는 깊고 어두운 골짜기로 둘러싸여 있다. 또한 이승에서 헬헤임으로 가려면 스볼(Svol), 군트라(Gunnthra), 표름(Fjorm), 핌불툴(Fimbulthul), 슬리드(Slidr), 흐리드(Hrid), 슬리그(Sylgr), 일그(Ylgr), 비드(Vid), 레입트(Leiptr), 굘(Gjoll) 같은 11개의 강을 건너야 한다. 그리고 황금으로 가느다랗게 이어진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다리는 모드구드(Modgud)라는 창백한 모습의 처녀가 지키고 있다.

다리를 건너려면 모드구드한테 자신의 이름과 집안의 내력을 말해야 한다. 헬헤임은 가룸(Garm)이라는 사나운 개 한 마리가 지키는데, 아마 그리스 신화의 케르베로스처럼 죽은 자들이 저승에서 이승으로 탈출하는 것을 막는 듯하다. 라그나뢰크가 오면, 저승에 사는 자들이 거인들의 군대에 합류하여 신들과 싸우다가 소멸한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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