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적 효율성 중심의 신자유주의가 바이러스 앞에 약점을 드러내다
바이러스 하나로 전 세계가 긴장하고 경제 위기로까지 번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에는 주로 금융이 꼬인다든가 유가가 올라간다든가 하는 식으로 한 부분에 충격이 와서 위기로 번졌는데, 이번에는 생산마저 힘든 분야가 나왔습니다. 지난주에 사우스다코타에 있는 육가공 공장에 코로나19가 퍼져 문을 닫는 바람에 미국 전역에 돼지고기 공급이 차질을 빚었어요. 관광이나 스포츠, 극장처럼 사람들이 모여야 운영되는 곳도 어려워지고, 의류나 음식을 가공하는 노동집약적산업도 취약해졌죠.
게다가 지난 3, 40년 동안 세계화를 하다 보니 전 세계가 공급망으로 얽혔어요. 코로나19로 중국 경제가 마비됐을 때 한국과 독일에 있는 자동차 공장들은 영업을 못했잖아요. 중국에서 부품이 오지 않으니까요. 경제 시스템이 안전이나 유연성보다는 효율성, 특히 단기적인 효율성 중심으로 짜여졌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 약점이 노출된 거예요. 비행기나 전기 공급망, 유조선처럼 한 번의 사고가 큰 재앙으로 번지는 부문은 그에 대한 대비책이 많아요.
백업이 두세 개씩 있고, 어느 한 부분이 잘못되면 격리시켜 나머지 부분을 살리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지금의 경제 시스템은 그런 장치가 없습니다. 중국 시골에 있는 공장에서 시작해서 일고여덟 단계를 거쳐 모든 공정이 순조롭게 흘러가야 가능한 경제를 만들어놓았습니다. 더 취약할 수밖에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사회의 모순을 따라 확산된다
단가를 낮추기 위해 기계화로 가지 않을까요? 아니면 반자동화를 통해 숙련 기술직 비율을 낮춰 노동 단가를 절감하고 비정규직을 늘리는 방향으로 갈 것 같은데요.
기계화는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예를 들어 골프공은 대량생산하지만 야구공은 여전히 사람 손으로 만듭니다. 기계를 만들지 못하면 기계화가 안 되죠. 또 저임금 국가의 노동력이 워낙 싸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기계를 쓸 인센티브가 생기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공장을 철수하고 싶어도 그것을 막는 구조가 있듯 기계화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나마 예측할 수 있는 건 이번에 드러난 신자유주의의 치명적인 약점이 더 노골화될 수 있다는 겁니다. 신자유주의는 효율성을 높이려고 모든 위험부담을 약자에게 지웁니다. 긱 이코노미라고 부르지만 실상은 노동자인 사람들을 법적으로 자영공급자로 만들어서 권리를 빼앗아요.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들은 병가를 쓸 수 없습니다. 아파도 일하도록 감염병에 취햑하게 내몰았고, 그 속에서 병이 확산되도록 방치했어요.
지금이 전시와 같다고 한다면, 버틸 자산이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후방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중산층에게는 저녁이 있는 삶이 찾아왔고요.
전쟁으로 치면 전방과 후방이 섞여있는 거죠. 복지가 안 된 나라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밖에 나가야 돈을 벌어요. 병에 걸려서 죽을지 안 죽을지는 몰라도, 일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는 사실은 확실하죠. 전방이에요. 영세자영업자들도 거의 대면 서비스 업종에 있습니다. 이분들은 자본가가 아니에요. 자본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회 안전망이 없기 때문에 치킨집 사장님이 된 경우란 말이죠. 그런데 손님이 못 오니 문을 닫으면 망하고 열어도 불안하고, 딜레마입니다. 이분들을 어떻게 보호할지 생각해야 해요.
진짜 위기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대규모 실업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미국에서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일자리는 버리는 카드였습니다. 한국의 경우도 1998년 외환 위기 속에서 대량 해고가 벌어졌고요. 특히 외환 위기 당시 노사가 함께 위기를 타계했지만 이후 상시적인 구조 조정 시대가 열렸습니다. 위기에서 벗어나는 해법은 늘 해고여야 하나요?
신자유주의적 해법이지요. 최소한 2차 세계대전부터 1970년대까지 많은 나라의 주요 정책 목표는 완전고용이었습니다. 대공황 시절에 겪은 실업 트라우마 때문에 국민들이 고용 안정을 원했고, 국가가 이를 따랐습니다. 신자유주의가 등장하면서 고용 안정과 노동권이 다 약화됐어요. 미국은 지난 3월 이후 6주 동안 신규 실업급여 신청자만 3,000만 명입니다. 이도 유럽에 비하면 과소평가된 숫자예요. 미국은 신청자격 요건이 까다롭거든요.
설사 3,000만 명이 전부라고 해도, 미국 노동인구가 1억 6,500만 명이니 18퍼센트에 해당하는데, 코로나19 이전에 실업률은 4퍼센트였어요. 보수적으로 잡아서 한 주에 300만 명씩만 더 나와도 한 달 후에는 실업률이 30퍼센트에 육박할 겁니다. 대공황 수준이죠. 경제적으로 봐도 돈만 쥐어주는 것보다 고용을 유지하고 월급을 정부가 보전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효율적입니다.
실업은 사회적 비용이 더 크지요.
그럼요, 심리적인 타격을 어마어마하게 받습니다. 실업기간이 길어지면 갖고있던 기술마저 노후돼 재취업하기도 힘들고요. 기업에서는 새 사람 데려다 훈련하려면 그 비용도 엄청나요. 예전에는 재교육 기간이 짧았죠. 봉제공장 문 닫아도 4~5주 재교육을 받으면 전자공장에서 일할 수 있었어요.
지금처럼 기술이 고도화된 시대에, 이를테면 철강이나 조선에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를 보고 반도체로 옮기라고 하면 그게 쉽나요? 게다가 일자리 자체도 현격히 줄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상태가 2년은 갈텐데, 어떤 방식으로 풀겠다는건지 이해가 안 가요. 지금 당장은 돈을 준다고 하지만 그 실직 뒷수습을 어떻게 할 거예요?
더욱 자살을 권하는 구조가 될 것 같습니다.
미국은 빈곤층 가운데 5만 명이 매년 오피오이드 Opioid(마약성 진통제) 중독으로 죽습니다. 지금처럼 실업자가 늘고 먹고살기 힘들어지면 좌절해서 약먹고 술 마시고 아프거나 죽는 분이 더 생길 겁니다. 한국도 세계에서 자살률 1위잖아요. 1990년대 중반까지는 OECD 평균 이하였어요.
사회학자들은 자살이 급증하는 이유를 단순하게 도식화할 수는 없지만 사회적 가치가 급변할 때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가치가 추락했을 때 자살을 선택하는 경향성이 있죠. 집단 해고와 같이 존재감이 무너지는 일들과 연결된다고 봅니다.
저는 한국에서 자살이 급증한 이유를 IMF 체제하에서 고용안정성이 줄고 고용 불안이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봐요. 점점 개인주의 경향을 띠는 사회구조 속에서 복지 제도는 그에 발맞춰 발전하지 않았고, 대가족제도에서 돌봄이 이뤄져오던 방식도 해제되어 생긴 사회현상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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