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7. 23:14

이건 무슨 경우? 체육회 대규모 환영식 위해... 메달 딴 선수만 “귀국 미뤄라”


입상 못한 선수는 ‘런던 체류’ 희망에도 예산 이유 귀국 조처
박태환, 귀국 막자 “도망쳐서라도 한국 가겠다”

정부가 대규모 환영대회 참가를 위해 런던올림픽 메달리스트들에 대해 대회 마칠때까지 귀국를 못하도록 막아 물의를 빚고 있다.

6일(현지시각) 런던올림픽에 참가하고 있는 선수단의 한 관계자는 “런던올림픽 출전 선수단의 성적이 기대 이상으로 좋아 선수단이 귀국하는대로 대규모 환영식을 거행하기로 방침을 정했다”며 “이에 따라 이미 경기가 끝났지만 메달을 딴 선수들은 대회가 마칠때까지 귀국을 미뤘다가 본진이 귀국할 때 같이 들어가게 하라는 지시를 대한체육회로부터 받았다”고 밝혔다.

정부는 방송 3사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환영식을 여의도 <한국방송>(KBS)에서 하기로 결정하고, 14일 선수단이 귀국하는대로 인천공항에서는 간단한 입국 환영식을 가진뒤 여의도로 이동해 환영행사와 해단식을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정부 방침에 대해 선수들은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모든 경기 일정을 끝낸 박태환(23·SK텔레콤)은 “이미 7일자 귀국 비행기편을 예약해 놓았다. 무조건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런던 현지에서 박태환을 응원했던 그의 부모님은 이미 5일 귀국한 상태. 에스케이텔레콤 전담팀 또한 7일 귀국예정이다. 런던올림픽만을 목표로 270여일 동안 힘든 훈련 일정을 소화해온 박태환은 심신이 지칠대로 지쳐 한국행만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체육회는 그의 귀국 일정을 미뤄줄 것을 재차 요구하고 있고, 박태환은 “여기에서는 도저히 못 견디겠다. 도망이라도 쳐서 무조건 한국으로 가겠다”는 강한 의사표현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경기를 마친 다른 종목의 메달을 딴 선수들도 귀국을 못하고 있다. 입상하지 못한 동료들은 모두 귀국했지만 유도의 금메달리스트 김재범(한국마사회), 송대남(남양주시청), 동메달리스트 조준호(한국마사회) 등도 런던에 아직 있다. 펜싱의 경우도 메달을 딴 선수 모두 런던에 있다. 일부 메달리스트들은 경기중에 입은 부상 치료를 위해 조기 귀국을 요청했지만 거부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로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경기일정이 끝나도 런던에 남아 있겠다고 한 선수들의 요청도 예산을 이유로 거부된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단의 다른 관계자는 “메달을 딴 선수들이 일찍 귀국해 상업적 광고나 나가거나 방송에 출현해 자칫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정한 아마추어 규정을 위반해 메달을 박탈 당할 우려가 있어 귀국을 미루고 있다”면서 “이는 오래된 관례”라고 말했다.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때도 서울시청까지 카퍼레이드를 벌이고 대규모 환영행사를 무리하게 진행, 당시 촛불시위 분위기에 맞불을 놓기 위해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한 선수단 관계자는 “메달 딴 선수나 메달을 못 딴 선수나 모두에게 귀국 일정을 강제하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다”며 “먼저 귀국했다가 환영식에 얼마든지 참석할 수 있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겨레 런던 / 이길우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