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30. 19:37

포르토벨로(Portobello)의 마녀

포르토벨로의 마녀 - 6점
파울로 코엘료 지음, 임두빈 옮김/문학동네

과거 중세시대 마녀 사냥으로 희생된 여인들의 숫자는 바티칸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게 60만 명이다. 그런데 어디에는 60만이 아니라 600만에 달한다는 말도 있다. 또 하나 2차 세계대전에서 히틀러에게 희생된 유대인들의 숫자가 600만 명이라지만 실제로는 60만 명이 안된다는 얘기도 있다. 누구도 정확한 숫자를 제시할 수 없겠지만, 지나간 과거의 역사는 누군가의 입맛에 따라 쓰여지기도 한다는 걸 감안할때 무조건 그대로 믿을 수만은 없는 점이 있고 한 번쯤은 의심을 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세기를 넘어 나중으로 갈수록 거의 유럽 곳곳에서 해가 떠 있는 하루 종일 살이 타는 냄새와 연기가 그치지 않는 세월이 지속되었다고 하니 그 희생자들의 수를 헤아리기 보다 그 맺힌 한을 헤아리는게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그래놓고 이제와서 그 옛날에 억울하게 마녀로 몰려 희생된 영혼들에 사면을 내리는 조치를 취한다느니 뭐니 한다면 그건 아직도 사면 운운할 자격이나 건덕지가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세상에서 제일 웃긴 간짜장들이다. 지들이 뭐라고, 따지고 보면 잘난것 하나 없을 뭣도 아닌 것들이.

집시의 피를 이어받고 버려졌지만 '어머니'의 이끄심으로 중동의 어느 중산층 가정에 입양된 아이 '셰릴 칼린'. 어릴때부터 양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성당을 다니고 세례도 받은 그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친구들이 있었고, 살고 있던 레바논과 베이루트가 피로 물드는 것을 미리 보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때부터 마치 저주받은 땅처럼 아름답기만 하던 삶의 터전은 지옥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그녀와 가족들은 영국으로 사는 곳을 옮기게 된다. 이후 그녀는 커가면서 자신의 앞에 놓인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두려워하기 보단 아무런 거리낌없이 한 발 한 발 삶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디며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과 만나게 되고 여기에는 운명적인 것도 포함된다.

소설의 구성은 매우 독특해서 주인공은 있으되 모든 것을 주인공의 눈으로 보거나 그녀의 행동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그녀와 인연을 맺었던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회상하는 속에서 이야기가 엮여져 나간다. 이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지겨운 독서가 될 수도 있겠지만, 파울로 코엘료의 사상과 코드가 맞는지 이 책을 읽으며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많이 건질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갈구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 이것을 영혼의 허기라고 말하고 싶지만 작품에서는 '공백'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다. 주인공인 아테나(셰린 칼릴의 예명) 역시 그 공백이라는 것을 찾아 인생이라는 여정을 걷고 있지만 흔히 보통 사람들이 따르는 모양이나 사회적인 통념과는 다소 다른 방식이다. 혼자서 그것도 여인의 몸으로 그렇게 하기에 적잖은 두려움과 어려움이 따를 테지만 그녀는 운명 속으로 거침없이 걸어 들어간다.

그러나 세상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까. 사회적 통념의 단단한 속박에 얽매인 사람들 특히 기독교 교리를 굳건히 내세우는 사람들에게 아테나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언행은 용납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녀의 말에 잘못된 점이 없고, 행동이 과격하거나 누구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니요, 그저 자유롭게 사람들과 교류하며 그들이 스스로를 깨우치는 것을 도와주려고 했을 뿐인데. 적개심과 무지몽매함으로 대립하기를 그치지 않는 사람들의 배후야말로 어둠의 힘이며 이들은 대중에 군림하여 그들의 의도를 강요하니 그녀가 지향하는 바와 비교하여 어떤 것이 진정 죄를 짓고 있는 것인가.

어느 날 십계를 던져주며 갑자기 나타난 야훼로부터 비롯된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진 종교가 인류 역사 100만년은 둘째치고라도 10,000년 이상을 묵은 현 인류와 함께 내려온 각종 전통적인 신앙을 한마디로 폄훼하는 것은 겨우 20살 남짓된 젊은이가 이미 한 세월을 건너 나름 인생의 지혜를 가지고, 초탈한 생활을 하고 있는 노인에게 망구 생각없는 늙은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격이다. 하여간 따지고 보면 잘난 것 없을 것들이 기고만장 해가지고서. 요새 이런 놈들이 많지요. 바로 우리나라에도, 이웃 열도에도. 그리고, 생각에 우리나라 교회에는 예수님이 안 계신거 같다. 그분의 말씀과는 영 딴판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