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승과 대승 2
`대승`이라는 말은 그 말을 사용한 사람들이 그들의 `대승됨`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상대적으로 `소승`이라는 말을 지어냄으로써 역으로 대승의 존재이유를 확립하려한데서 생겨난 말이다. 다시 말해서 "소승, 대승"의 구분 개념은 실제로 `소승`과는 무관한 개념이다. 즉, 대승에게는 소승이 존재하지만, 소승에게는 소승, 대승의 구분근거가 근원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방에 가서 그들에게 우리가 규정하는 의미맥락에서 당신은 소승이냐고 물으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자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불교사적으로 `소승`이란 주로 `부파불교`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대승이란 이 부파불교를 근원적으로 비판하고 나온 어떤 혁신적인 그룹의 운동을 규정하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소승, 대승에 대한 이해는 바로 이러한 역사적 정황에서 규정된 원래의 의미만을 정확히 맥락적으로 파악하고, 그 파악된 의미를 상황적, 유동적, 방편적으로 적용해야 할 뿐인 것이다. 우선 우리의 논의를 단축하기 위해 이러한 역사적 정황을 압축시킨 도식을 하나 제시해 보면,
소승(Hinayana) 阿羅漢(Arhat) 八正道
대승(Mahayana) 菩薩(Bodhisattva) 六波羅蜜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도식적 이해 자체가 불교의 근본 교의의 이해를 그르치게 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한다는데 있다. 옛날 싣달타라는 인간은 그의 삶 어느 시점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하는 無上正等正覺을 얻었고, 그로 인해 주변의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깨달음의 감화를 던지는 훌륭한 인물이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깨달은 자` 즉 "붓다"라고 부르고 그에게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몰려들었다. 이 몰려든 사람들이 싣달타 주변을 떠나지 않고 같이 살게됨에 따라 그들은 자연스럽게 어떤 `커뮤니티` 즉 집단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것을 `僧伽(samgha)`라고 불렀다. 아예 집을 떠나(出家) 전문적으로 승가에 상주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남자를 比丘(bhiksu), 여자를 比丘尼(bhiksuni)라고 불렀고, 그냥 가정을 유지하면서 집에서(在家) 승가에 다니는 사람들을 우바새(upasaka, 信士), 우바이(upasika, 信女)라고 불렀다. 이 출가무리와 재가무리들을 합쳐 우리가 초기 승단을 구성한 사부대중(四部大衆)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세에는 항상 이러한 집단이 발생하면 집단의식이 생겨나게 마련이고, 이 집단의식은 항상 그 짔단을 성립하게 만든 본래 정신과는 무관하게 발전해 나가는 상황은 인지상정에 속하는 것이요, 역사적으로 항상 그래왔다. 즉, 본질이 흐려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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