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 20. 20:33

엔트로피를 보는 다른 측면의 시각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가 쓴 Finding Flow(흐름 발견하기)는 `몰입`에 관한 책으로 번역본 제목은 `몰입의 즐거움`이다. 몰입에 대해서는 이전에 한 번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정작 이 책에서는 몰입 자체보다는 이와 관련된 부수적 주제들에 대하여 더 많이 논하고 있다. 암튼 한 번 읽어서 참고해볼만한 책이다.

여기서 한 가지 눈길이 가는 대목으로는 `엔트로피`에 대한 저자의 생각으로 이를 한번 언급해 보자면 우리 우주에서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열역학에도 나오는 이 엔트로피는 `무질서도`를 말한다. 이 무질서가 증가하는 쪽으로 작용하는 힘, 곧 엔트로피의 원리다. 이 원리를  미하이 교수는 악의 원리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 사람의 영혼이나 공동체를 어지럽히는 이 힘을 악이라고 볼때 이것은 대체로 가장 손쉬운 길을 택하고 저급한 수준의 논리를 좇아 움직인다. 의식을 가진 인간이 본능에 따라서만 행동하는 것, 또는 협력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사회적 존재가 타산적으로만 움직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논리의 성립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이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엔트로피와 악에 저항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모든 체계는 엔트로피와 악으로 되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이것이 심해지면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를 수 있다. 여기에 맞서는 것이 우리가 `선`이라고 부르는 또 하나의 상반되는 힘이다. 이는 미래, 공동의 선, 타인의 입장을 배려하는 행위를 뜻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선은 타성을 창조적으로 극복하는 힘이요, 인간의 의식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쉽게 예를 들어보자면, 생활 공간을 그대로 놔두면 먼지가 쌓이고, 어질러지기 때문에 청소와 정돈을 해야한다는 맥락이다. 여기서 생각을 좀 더 발전시켜 보면 개인이 그냥 한없이 밑바닥으로 떨어질 수도 있지만 반대로 신성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확장적인 논리도 성립한다.

새로운 조직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건 항상 어려운 일이고 더 많은 노력과 에너지의 투입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내는 능력을 또 `덕`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엔트로피가 지배하도록 놓아두는 쪽이 훨씬 편한데 왜 우리는 굳이 선이나 혹은 덕을 추구해야 하는 것일까? 게다가 영생이 보장되는 것도 아닌데 왜 굳이 진화의 길을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작가는 우리의 영생이라는 단어를 좀 더 거시적인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는 행동은 오래도록 울려퍼지면서 앞으로 펼쳐질 미래상에 영향을 미친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개인 의식이 죽고 난 뒤 어딘가에 보존되든 아니면 깡그리 사라지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나라는 존재가 전체 현실을 구성하는 씨줄과 날줄의 일부분으로서 영원히 남으리란 것이다. 우리가 생명의 미래에 더 많은 정력을 투자할수록 우리는 그 생명의 일부분으로 확고히 자리잡을 수 있게 된다. 거대한 진화의 틀 속에서 자신을 파악하는 사람의 의식은 작은 개울이 거대한 강물로 합류하듯이 우주와 하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