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4. 11. 09:59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일

상해 임시정부에 이어 항주 임시정부. 윤봉길 의사의 의거 여파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급히 상해에서 항주로 옮겨간다. 임시정부가 항주에서 머문 시기는 1932년 5월부터 1935년 11월까지. 이 시기는 밀정의 눈길을 피해다니는 것도 버거웠고, 지도자 따로, 청사 따로인 시기이기도 했다.

위성에서 본 항주(항저우) 임시정부 건물 위치.

항주 첫 임시정부 청사는 당시

군영반점으로 불리다가 현재는

현지인 전용 호텔이 되었음.

두 번째 청사는 중국 국민당의 도움으로

마련했으며 서호에 인접한 호변촌 23호.

중국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이 세 곳에 있는데, 상해, 중경, 그리고 이곳 항주입니다. 유일하게 항주 청사만 국가급 유물로 지정돼 있다고 합니다. 중국 항주 정부는 2002년부터 건물을 보수, 정리해 2007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구지 기념관’으로 정식 개관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함께 대한민국 정당들도 항주로 이전을 하였는데 한국독립당은 김구 선생 등 임시정부 요원들이 만든 임시정부의 기초세력이자 여당과 같은 역할을 했던 조직. 항주에서의 한국독립당의 흔적은 `사흥방`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

한국독립당 사무실, 사흥방 40호.

항주에서만 세 차례 청사를 옮겨다녔다. 1934년 11월 국무회의 결정을 통해 마지막으로 청사를 옮긴 곳이 바로 아래 오복리 2가 2호. 당시에 임정 요인과 가족들은 항주 시내 곳곳에 머물거나, 다른 지역에서 오가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일본 밀정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런 와중에 김구 선생은 1933년 5월 장개석(장제스)과의 회담을 통해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약속받았고 그해 11월 임시의정원에서 민족문제의 해결은 오직 군사행동에 있을 뿐이라고 선언, 중장기적으로 장교 양성과 군사교육 강화, 무기 및 군비 확충을 준비했습니다.

1934년에는 외교대표부 성격을 띤 `외무부 행서`를 국내외 요충지역에 설치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력을 강화하고 재무부 포고를 통해 미주 한인사회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독려하는 등 나름의 독립운동을 진행해 나간다. 상해에서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선포하고 중경에서 `광복군`을 만들고 해방이 되기까지 항주 임시정부는 그 매개체이자 연결고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