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4. 5. 18:22

김경준, BBK 사건 마침내 입 열었다.


BBK 주가조작사건의 판도라 상자는 결국 열릴 것인가. 현재 천안교도소에 수감 중인 김경준씨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23일 유원일 전 의원과 면회에서 김씨는 지난해 2월 스위스 계좌에 예치해둔 돈 140억원을 ㈜다스에 송금한 것과 관련, "이전 계약사항이 이행되는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BBK 사건과 관련해 현재 무엇보다도 해명되지 않고 있는 이슈는 왜 지난해 2월 "김경준씨가 스위스 계좌에서 다스에 140억원을 전송했는가"라는 의문이다. 당시 미국에서 진행된 소송에서 다스가 패했고, 반대로 소액주주들로 구성된 옵셔널벤쳐스는 김씨에게 승소했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김씨의 스위스 계좌 돈은 옵셔널벤쳐스로 갔어야 하며 소송에서 이긴 김씨는 다스에 돈을 지급할 이유가 없었다.

유 전 의원은 "김씨가 '이전 계약사항이 이행되는 것'이라고 말한 후 더 이상의 언급은 없었다"고 전했다. 김씨의 언급이 사실이라면 지금까지 재판이나 특검 수사에서 밝혀지지 않은 또다른 이면계약의 존재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지난 2007년 11월, 조사를 마치고 구치소로 이송되던 김경준씨가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140 억원 송금과 관련, 다스의 한 실무자는 "미국에서 진행되는 소송에 관한 한, 다스의 실무자라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정보는 전혀 없다"며 "회계나 재무와 관련해서는 잡혀 있는 것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경영진 외에 임원급 직원이라고 하더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밝혔다.

한편 그런 이면계약이 존재했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사건 수사가 마무리된 이후 에리카 김이 한국으로 돌아와 조사받은 전후 시점(지난해 2~3월)일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유 전 의원은 "아직도 김경준씨는 BBK 사건과 관련, 자신이 어떤 발언을 했을 때 피해를 받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며 "세간에서 보듯 김씨가 (MB와 이면계약을 통해) 호의호식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현재 그가 처한 상황을 보더라도 명약관화한 일이 아니냐"고 덧붙였다.

유 전 의원이 영등포구치소 시절부터 김경준씨를 면회하면서 김씨와 김씨 가족을 연결하는 등의 역할을 해온 것은 < 주간경향 > 이 김경준씨가 유 전 의원에게 보낸 편지들을 공개하면서 처음으로 알려졌다. 유 전 의원은 "그동안 면회에서 BBK 사건과 관련해 언급하는 것은 꺼려왔다. 하지만 이날 김씨는 이와 관련한 여러 이야기를 꺼냈다"고 밝혔다.

유 전 의원 "김경준 호의호식하지 않는다"

면회 당일 일부 언론이 보도한 것과 같이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당시 한나라당 인사 여럿이 미국에서 구금 중인 자신을 찾아와 회유했다"는 김씨의 발언도 '여러 이야기' 중 하나다. 2007년 대선 당시 여·야 의원의 김경준씨 접촉과 관련된 '설'은 많았지만 이것이 김경준씨의 입으로 확인된 것 역시 처음이다.

김씨는 유 전 의원에게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친박과 친이계 인사들이 차례로 찾아와 귀국을 종용하거나 귀국을 늦출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친박계 인사들은 김씨를 만나 "한국에 들어와서 BBK가 MB 것이라는 사실만 밝히면 게임은 끝난다"고 설득했다고 유 전 의원은 전했다.
김씨는 이들이 돌아간 뒤에는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현재 구속 중)이 찾아와 반대로 "선거가 끝날 때까지 입국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고 유 전 의원은 전했다. 김씨는 이날 유 전 의원과 면담에서 현역 여성 국회의원은 구체적 실명을, 법조 출신인 또다른 친박계 전 의원은 성만 기억해낸 것으로 알려졌다.

23일 천안교도소에서 김경준씨를 면회한 유원일 전 의원 |김석구 기자

유 전 의원은 2월 24일 < 주간경향 > 과 통화에서 이 현역 여성 의원이 현재 정치권에서 거론되고 있는 ㄹ의원인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 "그 의원은 아니다"라며 "김씨가 실명을 거론했지만 국회 현역 동료가 곤경에 처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밝히지 않았다.

유 전 의원의 면회는 2월 22일 유 전 의원에게 전달된 한 통의 편지 때문에 이뤄진 것이다. 편지의 작성자는 김경준씨였다. 총 4페이지인 김씨의 편지 내용은 일상적인 안부와 교도소 내 생활을 담고 있는 이전의 편지와는 사뭇 달랐다. 편지의 서두부터 'BBK 사건'을 거론하고 있었다.

"저의 'BBK 사건'에 대해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님께 서신이나 만남을 하고 싶은데, 도와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한 대표님이 저의 사건과 같은 검사에게서 수사를 받으셨기에, 저의 사정에 대해 좀 이해를 하여주시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합니다."

한 대표의 이른바 '9억7000만원 뇌물수수 의혹' 2차 수사를 지휘했던 검사가 바로 과거 BBK 사건을 맡았던 당시 중앙지검 특수1부장 김기동 부장검사(현 수원지검 성남지청 차장)다. 김씨는 최근 < 주간경향 > 의 김씨 편지 보도도 언급했다.

"2012.2.7. 일자 < 주간경향 > 의 의원님 인터뷰, 저의 서신 내용 등에 대한 기사를 읽어봤습니다. 저의 억울함과 현재 저의 힘든 상황들에 대해 언급하신 의원님 인터뷰 내용에 대해 감사합니다. 저도 저의 상황을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MB와 무슨 비밀협의를 하여 호의호식하고 있다는 대부분 언론보도들과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사실에 너무나 답답합니다."

김경준, < 주간경향 > '편지' 기사 읽었다

김씨가 이 편지를 쓸 당시는 김씨 난방 문제 등을 거론한 후속기사를 아직 읽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이 편지에서 재차 "실제 거실이 너무 춥고, 혈압·콜레스테롤 등 질환으로 병동으로 이동하는 쪽으로 의견이 가다 이 기사가 나온 후 이동이 완전히 무산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편지는 < 주간경향 > 의 첫 보도에서 인용한 수형 기간과 관련한 법무부와 검찰 주장을 반박하며 "법무부, 검찰의 잘못된 주장들에 대하여 반박하고 싶다. < 주간경향 > 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마무리를 하고 있다.

< 주간경향 > 의 지난 보도 이후 교도소의 통제는 엄격해진 것으로 보인다. 김씨의 지인인 이모씨 역시 그동안 정기적으로 김씨를 면회해왔다. 유 전 의원의 면회에는 이씨도 동행했다. 하지만 교도소 측은 특별면회라는 이유로 이씨의 면회를 거부했다.

김씨의 면담 요청과 관련해 민주통합당 관계자는 "민감한 문제이며 폭발성이 큰 사안이기 때문에 김씨 생각이나 의도가 무엇인지 면밀히 검토한 다음 한 대표가 입장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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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 정용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