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7. 15:29

오늘의 독일어 한마디, 비더마이어 시대

Biedermeier – zeit

19세기 전반 오스트리아 평민들의 살림살이를 재현한 `비더마이어 시대` 전시관은 독일어 사용권 밖의 사람들에게는 다소 난해하지만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비더마이어`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 문학 작품에 나오는 가상의 인물이고 `비더마이어 시대`는 독일어권에서만 통하는 개념이다.

나폴레옹이 완전히 몰락한 1815년부터 혁명의 파도가 대륙을 다시 휩쓴 1848년까지 `비더마이어 시대`의 성격은 `군주정의 부활`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그 중심이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 빈이었다. 나폴레옹의 패퇴와 함께 민주주의 혁명이 막을 내리고 전제군주정이 부활하자 독일과 오스트리아 민중은 극심한 정치적 좌절감에 빠졌다.

혁명의 기대에 부풀었던 신흥 중산계급은 정치에 대한 관심을 끊고, 소박한 일상의 즐거움을 찾는데 몰두함으로써 `시대의 우울`을 잊으려 했다. 20세기 문화연구자들은 그런 시기를 `비더마이어 시대`라고 했다. `비더(bieder)`는 우직하다는 뜻인데 조롱하는 느낌이 살짝 얹혀있다. 비더마이어라는 인물은 여러 독일 작가들의 다양한 문학 작품을 통해 만들어졌다.

직업은 시골학교 교사이고 성격은 우직한데 생활태도는 성실 근면하고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 가족의 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그는 소박한 가구를 갖춘 작은 집에 살면서 텃밭을 가꾼다. 일상의 작은 일에 정성을 기울이며 조용하게 사는, 요즘 말로 하자면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소시민이다.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현실의 장벽에 봉착하면 선택지가 둘 있다.

그 사회를 탈출하거나 시선을 내면으로 돌리는 것이다. 나폴레옹의 몰락은 군주정의 부활로 이어졌고 유럽 사회는 진보의 희망이 사라진 시기를 맞았다. 봉건적 신분제도와 낡은 특권이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던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민중은 현실을 외면하고 사소하지만 확실한 일상사의 즐거움을 맛보면서 그 시대를 견뎠다.

비더마이어 시대 전시실의 실내장식, 가구, 공예품, 그림을 보면서 그것을 만든 이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았다. 영원한 것은 없고 그 모든 것은 지나간다. 반동(反動)의 시간도 예외가 아니다. 좌절감이 옅어지고,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분노가 쌓이고, 대중의 이성이 눈뜨고, 보통 사람들의 마음에 용기가 번지면, 어느날 갑자기 역사의 물결이 밀려와 진보의 모든 배를 한꺼번에 띄워올린다.

그런 때가 오기까지 작고 확실한 즐거움에 몸을 맡기고 삶을 이어가는 것이 무슨 잘못이겠는가. 비더마이어 시대 전시실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퇴행과 압제의 어둠속에도 빛이 완전히 꺼지는 법은 없다. 그렇게 믿으며 삶을 이어가면 새로운 시대를 볼 수 있다.' 내가 거기서 본 것은 좌절과 도피가 아니었다. 질긴 희망과 포기하지 않는 기다림이었다.

- 유럽 도시 기행 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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