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18. 13:37

제이슨 본(Bourne) 씨리즈 3종 세트. 아이덴티티 - 수프리머시 - 얼티메이텀

수천만 달러짜리 프로그램으로 훈련된 스파이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장편 대작 씨리즈로 `겟 스마트`(Get Smart)와는 관점이 완전히 다른 냉혹한 스파이 세계의 현실을 토대로 한 작품이다. 수천만 달러를 쓰면 사람이 저렇게 되는 것인가. 어떤 훈련을 어떻게 얼만큼 받았길래 기억을 상실한 상태에서도 무의식 중에 직관적인 상황대처가 가능할까.

`아이덴티티`에서는 기억 상실증을 시작으로 엄청난 액수의 현찰과 여러 개의 다른 나라 여권을 가지고,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알아내는 과정이 시작되는데 그 속에서 본성이 착한 캐릭터가 겪는 일들은 험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상황들에 대한 훈련을 많이 받았을테니 뭐, 훈련받은 대로 하라구.

같이 일하면서도 꿍꿍이 속이 달라 서로를 믿을 수 없고, 언제든지 적으로 돌변할 수 있는 정보전쟁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일단 무조건 머리가 좋고 봐야겠다. 그 다음엔 시시각각 급변하는 상황에 대처하는 순발력과 계속해서 계획의 세밀한 수정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자꾸 확인해서 빈틈이 없게 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머리가 돌겠다, 돌겠어. 차리리 총쏘고 터뜨리고, 떨어지고 하는게 몸은 좀 고되지만 마음은 편하겠어...

비밀이 많아야 하고, 또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지문을 다 딱으려면 부지런해야 하며 은밀한 성향에 혼자 움직이면서도 신속 정확해야 하니 정말 스파이도 아무나 할게 못 되는군. 까딱 잘못하다간 노상에서 비명횡사하는 것도 다반사니. 어쨌든 우리의 주인공은 이와 같이 숨막히는 상황에서도 생판 처음보는 여자와 동행하는 우여곡절을 겪는다. 그리고, 상대를 끌어들이는 유인책으로부터 역으로 상대를 추적하는 활약을 펼치는데...

단기적인 기억은 찾았으나 어디까지가 잃어버린 기억인지... 2편 `슈프리머시`에서는 보다 좀 더 먼 과거의 기억을 찾는 이야기다. 전편을 끝으로 그냥 편히 살게 내버려두면 될 것을 뒤가 구린 인간들은 증거가 깔끔하게 없어져야만 마음을 놓는가. 그냥 덮어놔도 될 법한데. 하긴 그러면 후속편이 나올 이유가 없겠지.

이번 편에서는 역시 기억이 가물가물한 과거에 본인이 수행했던 임무의 진실을 알아가면서 벌어지는 또 한편의 험한 일들에 대한 이야기다. 본인 입장에선 자신이 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가져온 파장이 어떤 것인지를 찾는 것이지만 음모의 배후에 있는 사람 입장에선 통제되지 않는 수천만 달러짜리 인간 병기의 폭주로 똥줄이 타는 것이겠지. 그래서 죽이려고 하는 것이고.

설사 자신이 저지른 지난 날의 행위를 알았다 하더라도 이미 결과가 정해지고 돌이킬 수 없음에도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 행동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특히 고의든 아니든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은 적지 않은 용기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의 삶을 똑바르게 살도록 해주는 나침반의 역할을 하게 된다.

제이슨의 잃어버린 기억은 1편 초반의 사고 때문만은 아닌 것이었다. 궁극적인 결론을 내리는 3편 `얼티메이텀(Ultimatum)`에서는 `트레드스톤`의 업그레이드 버전 `블랙브라이어`를 둘러싸고, 과거를 밝혀내는 속도감 최고의 액션들이 벌어진다.

갈수록 더 험해지는 일들을 헤쳐나가는 주인공은 임기응변에도 능하다. 역시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속에서는 순발력이 있어야 해. 점점 근접해 오는 모든 장애물들 앞에서 초를 다투는 그의 사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떡해서든지 되게 하라'이고, 이 속도전은 영화에 몰입을 유도하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완벽하게 허를 찌르는 두뇌 플레이 또한 훌륭하다. 이 모든 것이 3년 동안의 시간동안 자신을 알고자 절박하게 몸부림 친 기억을 잃어버린 한 스파이가 이루어낸 인생역정의 결과물이다.

이 씨리즈의 4번째 이야기가 제작된다고 해서 무슨 얘기가 나올 것인가 하고 봤더니 `본 레거시(Legacy)`에는 맷 데이먼이 안 나오네. 시간상으로는 얼티메이텀과 동일한 선상에서 시작하므로 이전 작품들을 접하지 않은 상태에서 본다면 이야기 흐름이 이해가 잘 안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