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 5. 13:24

김하은 동화작가가 팽목항에 다녀와 쓴 글 (페북 공유 허용)

팽목항에 다녀왔습니다.

안녕하시냐는 인사를 하기 두려운 때입니다. 저는 자유계약직 감정 노동자, 동화작가입니다. 아이들과 소통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늘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 하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유심히 지켜보는 편이지요. 그리고 저는 노빠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누구든 정치와 권력을 이상한 방향으로 몰고 가는 이들을 혐오하고 감시하는 시민입니다.

세월호 사고가 일어나고 며칠 동안 충격과 공포, 분노에 사로잡혔다가 김어준 씨가 한겨레 tv에서 진행하는 ‘세월호 번외편’을 보고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왜 구조가 늦어졌는지, 그 과정에서 생각하기 싫지만 ‘돈’ 때문일 거라는 추론이 나왔습니다. 보시지 않은 분들을 위해 살짝 정리하자면 사고가 일어난 그날 오전 8시, 해양수산부 차관이 주관하는 대책회의가 열렸습니다.

그때 ‘인양 – 부산 은진사, 1개월 소요 예상’이라고 한 업체를 지정하는 일이 벌어졌고요. 이후 ‘은진사’는 회의 속기록을 받아적던 사람이 ‘언딘사’를 잘못 적은 것이라는 것을 듣게 됩니다. 문건은 한 번 더 바뀝니다. ‘언딘사’로 말입니다. ‘구조’가 아니라 ‘인양’을 먼저 이야기했고, 현재는 그 문건에서 ‘인양’과 ‘은진사’, ‘언딘사’로 썼던 두 문건 모두 사라졌습니다.

지금 현재 존재하는 문건에는 이 문장이 삭제되었고요. 어쩌면 승객들을 구할 생각보다 배를 인양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장 먼저 하게 된 시발점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과연 해수부 차관 혼자 내린 결정일까, 의문을 갖게 됩니다. 혹시 그 영상을 안 보신 분이 있다면 찾아보세요. 우리가 몰랐던 해상법에 관련된 조항들이 언급되니까요.

그래서 5월 1일 오전 11시, 경기도에서 팽목항으로 갔습니다. 진짜 멀더라고요. 차로 왕복 1000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니까요. 팽목항으로 가는 길 곳곳에 표지판이 있습니다. 사고 현장, 대책본부를 어디로 가야 하는지 친절하게 알려주었고요. 팽목항에 도착하기 전에 진도 합동분향소에 들렀습니다. 수도권에 세워진 분향소처럼 위패가 있거나, 몇 명을 위한 분향소인지는 언급되지 않고, 다만 영정이나 위패가 있어야 할 곳에 수백 송이 꽃들이 가득 있었습니다.

국화꽃을 놓고 분향을 한 다음, 바로 옆에 있는 공간으로 갔어요. 거기에 탑승객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편지들과 그 이후 사람들이 느낀 감정을 나타낸 편지들, 쪽지들, 노란 리본들이 가득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같이 간 선배와 함께 울었습니다. 큰 소리로 울기도 죄스러운 곳이었어요.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 자리에 유족이 계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드디어 팽목항에 도착했습니다. 유족과 아직 아이들을 찾지 못한 부모들, 기자들, 조문객들, 자원봉사자들, 경찰들, 참 사람들이 많더군요. 헬기가 뜨고 해양경찰청 순찰함이 운항하고 수십 개 천막이 있기 전에 팽목항은 고요한 항구였을 겁니다. 사고 현장이 어디인지는 원불표 스님이 기도를 드리는 방향을 보고 짐작했습니다. 그 바다를 한참 바라보는데 안개가 짙어 잘 보이지 않더군요. 그때도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자원봉사자들을 만났고 또 다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사고 당일, 배에서 뛰어내린 학생들이 마을에 들어섭니다. 어민들은 젖은 옷을 입은 아이들을 보고 놀라지요. 잠시 뒤 지시가 내려옵니다. 티셔츠 300개를 준비하라고 말이에요. 진도는 좁은 섬이라 그 수를 다 맞출 수 없어 인근 마을까지 연락해 그걸 구하고 빵과 우유까지 구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전화가 옵니다. 그 숫자만큼 필요 없다고, 100개면 충분할 거라고.

오후 5시, 배 안에 있던 학생과 빠져나온 아이가 전화 통화를 합니다. 그 아이는 “엄마, 빨리 구하러 와.” 하고 이야기했고 그 통화를 주민이 같이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해경은 사고 소식을 듣고 출동한 다른 바지선을 언딘이 올 테니까 가라고 합니다. 바지선 교체에 8시간이 소모됩니다. 참 더디지요?

그러는 사이, 민간 잠수사들 사이에 연락이 돕니다. 큰 해난 사고가 발생했는데 아이들이 갇혔으니 출동하자는 문자입니다. 저도 그 문자를 받았다는 분이 친구와 한 이야기를 사고 이틀째 되는 날 장보러 갔다 들었습니다. 자기도 가야겠다는 말이었어요. 민간 잠수사들이 진도로 내려갑니다. 수도권이었다면 500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말이지요. 그런데 해경이 막습니다.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는 잠수사와 언딘이 바지선을 설치할 대까지 기다리라는 해경 사이에 실강이가 벌어집니다. 며칠을 그 상태로 있던 민간 잠수사들이 화를 내고 철수합니다. 그 와중에 아이들을 애타게 기다리던 부모들이 이상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첫째, 기자들은 대책본부나 해경, 언딘측이 발표하는 바를 의문 없이 그대로 받아쓰기만 했다는 겁니다.

둘째, 아이들이 페이스북에서 살려달라고 위치를 나타냈다는 증거를 조작이라고 해경이 말합니다.

셋째, 탑승자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숫자는 계속 바뀝니다.

넷째, 민간 잠수사들이 한 말 중에서 의미심장한 표현이 있었습니다. 초기에 크레인 몇 대가 쓰러지는 배를 받치기만 했어도 그 배가 침몰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충분히 할 수 있었는데 그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직접 행동합니다. 지금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 연합뉴스 기자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는, ‘go발 뉴스’를 진행하는 이상호 기자에게 연락합니다. 아무래도 미심쩍은 부분이 많고 언론을 믿지 못하겠다, 내려오라고 말입니다. 이상호 기자가 진도로 내려와 생중계를 하기 시작합니다.

사건이 터진 첫날, 대안 TV 들이 진도로 내려왔습니다. 1인 미디어 시대이니 제가 처음 보는 1인 방송국 이름들도 참 많았는데요. 이들이 아이들이 구조되는 모습을 촬영하러 왔다가 정부가 하는 일에 분노하여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시간이 더 지나고 더 이상 생존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주검으로 돌아왔지요. 대통령이 왔다간 날도, 사과했다는 날도, 살아온 사람은 없습니다. 처음 체육관에 들렀던 대통령이 차에서 내리면서 환하게 웃는 사진도 인터넷에 있더군요.

유족들은 분노합니다. 분향소를 지키던 유족은 분향하러 온 해경청장에게 의자를 던졌습니다. 살아올 수 있는 아이들을 당신이 죽였다며 화를 냈습니다. 총리가 내려와도 사고 현장은 가지 않았고,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앉아서 사과했고, 심지어 재난을 담당할 컨트롤 타워는 총리와 안전행정부 소관이지 청와대 책임은 아니라 합니다. 수많은 국민이 죽었는데 책임질 수 없다 합니다. 사과 했는데 왜 그러냐고, 대통령이 조문할 때 옆에 있던 할머니를 섭외 및 연출한 게 아니냐고 하자 펄쩍 뜁니다.

4월 30일, ‘박사모’ 카페에 ‘주군이 위험하다’ ‘유족들은 대부분 노빠들이다’ ‘좌빨들이다’ 뭐 이런 말들이 나옵니다. 지금이 봉건시대도 아니고 ‘주군’이라뇨, 혹시 ‘주군의 태양’이라는 드라마에서 귀신 보는 태양이라는 여자친구를 둔 그 ‘주군’은 아니겠지요? 스스로가 시민임을 포기하고 ‘주군’ 아래 모인 신하와 같은 종속적인 시각으로 자신을 낮추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다시 팽목항 현장으로 돌아가자면 유족들이 이리 말합니다.

아이들이 살던 곳이라 집을 떠날 수는 없는데 직장은 옮기고 싶다고요. 동정하고 측은해 하는 건 싫다고요. 삼풍백화점 붕괴 사태 때 유족들 중 많은 분들이 이민을 갔답니다. 스스로 진실을 알려달라고 기자를 부르고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노력한 분들이 아직 거기 있습니다.

다이빙 벨이 철수할 때 해경과 큰 충돌이 있었다는 영상도 있습니다. 위치를 거짓으로 알려주고 가이드 라인을 끊고, 부딪힐 뻔 하고, 결국 잠수사를 죽이겠다 싶어 ‘실패’라고 외치게 만듭니다.

저도 이런 나라에서 사는 게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이민을 가면 덜 부끄러울까요? 이민자들은 출신국이 어딘지를 떼어낼 수 없습니다. 한 나라에 문제가 생기면 이웃들이 반응합니다. 이거 너희 나라 아니냐고, 그래서 지금 이 사태를 보는 재외국민들은 힘들 겁니다.  배에 있던 아이와 통화했던 그 아이, 살아남았지만 어른들이 친구를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 아이, 얼마나 힘들까요.

유족들은 말합니다. 미안해 하지 말라고, 자식들을 지키지 못한 죄인이라고. 그 속내는 이런 게 아닐까요. 제발 미안해만 하지 말고, 우리가 최선을 다했고 목청껏 외쳤으나 이 먼 진도에서 한 말들이 바깥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니 미치겠노라고. 지금 진도에는 정부가 없습니다. 정부가 노력을 제대로 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혹시 그 배에 해경이나 정부가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싶지 않은 비밀이 숨겨진 건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

“제발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해 주세요.”

자원봉사자가 말했습니다. 선거로 저들의 오만을 무너뜨리고, 나이 드신 분들을 만나서 설득하고, 그 상황에서도 1면 기사로 학교가 붕괴될 위험이 있는데 이건 서울시 교육청이 무상급식을 하느라 예산을 돌려썼기 때문이라고 비난하는 언론들을 혼내달라고.

“저희도 여당 야당 다 마음에 안 듭니다. 하지만 걸레보다 행주가 낫다고, 하야할 마음이 없는 대통령, 사과 따위는 모르는 대통령, 혼내야 하지 않을까요?”

한 번 경험했습니다. 그래요, 탄핵. 탄핵 조건이 뭔지 기억하시나요? 주군을 위해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귀환을 염원하는 노란 리본이 노빠들의 색이라며 유족들을 노빠라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도로에 무수히 그어진 노란 선들, 전봇대에 칠해진 노란 선들, 야생동물 주의, 노란색 신호등, 모두 노빠냐고.

이제 여러분들은 뭘 하시겠습니까.

그냥 주저앉아 울고만 계실 건가요, 아니면 촛불 집회에 나가 촛불을 들고 참석한 걸로 그치실 건가요. 아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셨다면, 조금이라도 이 사회를 바꾸시겠다고 마음 먹으셨다면 지금 움직이셔야 할 때입니다. 글로 혼을 내든 투표로 혼을 내든, 이 사회를 바꾸어 아이들을 지키지 못한 어른들이 제대로 살겠다는 의지를 보여줄 때입니다.

팽목항에서 정부는 없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여덟 개 조로 나뉘어 빨래와 식사, 청소를 하고 말동무를 하며, 시신을 닦습니다. 봉사자들 조끼도 자비로 맞췄습니다. 유류품은 함부로 관리되어 유족들에게 상처를 또 줍니다.

이것이, 제가 본 현실입니다. 이 글은 무한 공유 허락합니다.

저도 제 가족 중 한 명을 바다에서 잃었습니다. 사흘 동안 실종되었고, 그 사흘 동안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울었습니다. 그것도 힘들었는데 진도에서는 보름 동안 울고 있는 분들이 계십니다. 비극을 써도 사회보다 덜 슬프고, 희극을 써도 관료보다 덜 명랑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만난 카드 여왕을 내가 현실에서 만나는, 판타지를 눈으로 보고 있는 동화작가가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