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후기> 명량, 장군의 인간적인 모습과 영웅적인 면모.
이미 결말을 아는 역사적 사건이라 가슴을 조여오는 팽팽한 긴장감은 없었어도 진중한 분위기 속을 흐르는 비장미는 제대로 느껴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그 비장함을 조금 덜어내었더라면 더 좋았을법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차라리 구루지마 미치후사가 영화에서 보여진 모습보다 약간 바람을 뺐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 젊은 혈기와 급한 성질에 흥분을 잘 하면서 말이죠. ''나니..? 칙쇼~!'' 이러면서.
기록에 의하면 조선수군의 공격으로 전투가 진행중인 와중에 적의 대장선 누각이 파괴되었고, 배에서 떨어져 바닷물에 빠진 구루지마 미치후사를 발견하고, 건져올려 장군님의 명에 따라 토막 토막낸 다음 머리를 효수하여 돗대에 매어다니 그걸 본 적의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고 되어 있습니다. 오금을 저리면서 요즘 시쳇말로 `후덜더르~..` 했겠죠. 더욱이 상대가 이순신이니.
영화 `명량`의 해전이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의 전투씬과 차이점이 있다면 크게 울독목을 가로지르며 왜적의 함선이 진입하는 것을 막았던 쇠사슬은 나오지 않고, 조선총잡이에서 이준기와 함께 일본 상인으로 등장하는 오타니 료헤이가 역할을 맡은 준사라는 인물이 등장하며 장군이 입었던 갑옷을 비롯한 조선수군의 복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거기다 드라마에서 다소 저평가되었던 안위 거제현령의 활약과 멋진 활솜씨도 있습니다.
거북선이 대활약을 펼쳐 구루지마 미치유키를 지리게 했던 사천해전이 끝난 직후 벌어진 전투에서 우리 수군의 순천부사이자 나중에 충청수사가 되는 권준으로부터 화살을 맞고 죽은 그에 이어 동생인 구루지마 미치후사가 형의 복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이를 갈고 출전한 명량해전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절정을 구가하는 바 장군님께서 정탁 등의 목숨을 건 구명에 힘입어 겨우 살아나 백의종군을 하는 동안 원균은 강요에 못이겨 별 전략없이 출정한 결과 칠천량에서 자그마치 1만 이상의 군사를 잃고, 거북선을 포함한 전투선까지 거의 다 말아먹었으며 결국 자신도 죽었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적인 모습과 영웅적인 면모를 함께 갖춘 장군님에 비해 한참 모자라서 아예 출연할 기회조차 없었던 선조는 다시 몽진을 가야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엄습으로 똥꼬가 바짝바짝 타들어갔을지는 안봐서 모르는 비디오지만 무슨 할말이 있겠냐며 다시 수군을 이끌 통제사의 직책을 맡아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니 장군은 군말없이 명을 받들었고, 영화에서 그걸 군왕에 대한 의리이고, `충(忠)`이라 표현하며 그것이 백성들을 향하도록 해야한다는 말을 들으면서 가히 장군의 그릇과 됨됨이는 존경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낍니다.
임진왜란에도 미스테리 아닌 미스테리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에서 다시 통제사의 직책을 받아 무너진 수군을 재건하기 위해 군사들을 모으고 백성들을 이끌며 아전들이 미처 청야나 수습하지도 않고 도망가 텅빈 관청에 남겨진 무기와 군량들을 수거하며 걸었던 그 길을 똑같이 왜군들도 지나갔는데 그 차이가 불과 반나절도 채 안되었다는 겁니다. 자칫했으면 명량에서 일전을 치르는데 중요한 자원들을 몽땅 빼앗길뻔했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에 그저 가슴을 쓸어내릴뿐.
도저히 이길 확률 계산안됨의 승산이 없는 싸움을 앞둔 상황에서 절망과 공포를 겪는게 하등 이상할 게 없고 작품에서는 그것을 `두려움`이라고 했는데 어쩌면 그것의 다른 표현은 `절박함`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며 그 절박함이 장군으로 하여금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을 찾게 했을 겁니다.
그렇게 울돌목의 소용돌이치는 물길을 사지로 삼고, 12척 밖에 안남은 판옥선을 보수하여 명량해전을 앞두고 비록 큰 전과는 없었지만 몇 차례 소규모 전투를 치러 승리했으니 이는 군사들로 하여금 전투 경험을 쌓게 하고, 장군과 함께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효과를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수군이 완전히 전멸한 것으로 알고 있었던 왜군의 배가 넋놓고 다니다가 벽파진, 어란진에서 기습을 당해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이 왜군진영에 처음으로 전해졌을때는 그게 명나라 수군이 아니면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는 조선수군의 잔여 병력쯤으로 알고 큰 위협을 느끼지 않고 있다가 같은 일이 더 일어나자 그때부터 혹시.. 이순신...? 이라는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고, 그 우려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자기네들 머리숫자를 믿고 울돌목으로 밀고 들어온거겠죠. 어떤 의견에서는 조류의 흐름이고 뭐고, 처음부터 수십 척의 적들에게 둘러싸인채 교전을 벌였다고도 합니다. 그렇게 전투가 끝난 다음 장군은 승리가 천행이었다라고 술회했습니다.
아침에 눈은 떴으나 고문에 의한 후유증으로 망가진 몸이 움직이지 않는 기동불능에도 고뇌하는 장군의 인간적인 면모는 아무래도 시간의 제약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드라마에서 더 많이 볼 수 있었고, 영화에서 짧았지만 굵고 임팩트 있었던 후반 해전씬은 볼만했습니다.
장군은 이때부터 이미 생사를 내려놓은듯 하더군요. 더 이상 잃을게 없는 사람이 마음까지 비운다면.. 백성들이 얼마나 마음 졸이면서 지켜봤을까요. 이렇게 기적같은 승리를 거두고도 받은 거라고는 `면사첩`이 전부이니 목숨을 부지하는 것만으로 감읍하라는 거냐, 이런 썅~.
작품은 전반부와 후반부가 확연히 나누어져서 명량해전을 앞둔 시대적인 상황과 양쪽 진영의 분위기, 그리고 장군의 인간적인 면을 조명한 드라마 부분은 별 3개 정도, 후반을 장식하는 논스톱 해전씬은 별 4개 해서 총 별 3.5개 정도로 생각하는데 영화 전체를 놓고 보면 출연진과 제작진들이 모두 수고가 많았겠으나 높은 점수를 주기엔 다소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장군님은 별 5개도 부족합니다.
끝으로 명량해전을 앞두고 2번씩이나 도망친 배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전란이 끝난 이듬해 도원수 권율에게 붙잡혀 처형됩니다. 또한 얼핏 한산대첩을 소재로 한 영화도 앞으로 제작될지 모르겠는데 만약 그렇다면 `명량`보다는 좀 더 잘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해전만 놓고 보면 명량보다는 학익진으로 왜적 함선들을 둘러싸고 거북선이 돌격해주는 한산대첩이 더 박진감 넘치고, 화려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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