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8. 4. 17:43

영화로 본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원작의 방대한 내용을 상영시간의 제약이 있는 영화로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더라도 너무 많은 책의 내용들이 뭉텅이로 생략되어 축소 각색이 되다보니 20세기의 역사에 빠질 수 없는 핵심적인 사건들과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나와야 될 법한 등장인물들을 스크린을 통해 만나볼 기회는 없게 되었다. 꽤 많은 단역들을 섭외해야 하는 골치아픈 일은 덜었겠군.. 

영화 초반에 나오는 여우와의 한판 대결은 책에서는 거의 후반부에 나오는 내용인데 순서야 어찌되었든 별 상관없지만 그게 주인공 양반이 양로원으로 강제 입소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마저도 오래지 않아 1층 창문을 넘어 바로 도망치지만. 그렇게 시작되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하나씩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 글자로 읽으면서 느꼈던 인상의 싱크로율을 비교하지 않을 수는 또 없는 일이다.

하지만 대체로 실망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던게 일단 먼저 주인공 알란 칼손은 좀 더 땅딸하고 익살스럽게 생겼으면 좋았을 뻔했고, 처음으로 의기투합을 하게된 율리우스는 첫 인상이 약간 비우호적이고, 성마른 사람이 적합했으며 핫도그 노점에서 만난 베니의 머리는 포니 테일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잠시 머무는 호수 옆에 사는 `이쁜 언니`는 말 그대로 보다 예뻤어야 했고, 그런 얼굴로 욕도 많이 했어야 어울렸다. ''와~, 시발!'' 이러면서..

악당들이야 무식하고, 성질 급한 모습이면 대체로 OK이기에 그냥 넘어가도 수사를 전담한 형사반장은 외모적으로 바바리 코트를 입고 약간 지적인 모습과 중후함을 풍기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 그외 출세지향적이자 생색을 내고 싶어하며 자기 잘난 맛에 길들여진 지방검사는 거의 존재감이 희미했다.

주인공과 함께 엮여 무작정 정처없이 떠나는 무리들에게 또 하나의 임시적인 안식처가 되는 베니의 형과 집은 아예 나오지도 않는다. 그래도 모든 걸 통틀어 가장 싱크로율이 생각했던 것과 일치하는 건 바로... 코끼리였다. 그리고, 알란이 잠시 호숫가에서 코끼리와 함께 망중한을 보내는 장면은 너무 아름다웠다. 이런게 책으로는 할 수 없고,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인 잊지 못할 장면이다.

우연찮게 생긴 트렁크 하나로 인해 사람들과 함께 여행 아닌 여행을 하는 동안 짬짬이 회상하는 과거는 스페인 내전과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인 맨해튼 프로젝트, 그리고 스탈린과의 좋을뻔 했었던 짧은 만남과 바로 이어진 수용소 생활, 세월이 흘러 냉전 막바지의 이중첩자 노릇까지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 중간에 있었던 모택동이 이끄는 공산당과 싸우기 위해 중국에 갔다가 오히려 어쩌다 모택동의 아내를 구해주게 되고, 개고생 끝에 히말라야 산맥을 도보로 넘고나니 바로 이란 국경 수비대에 붙잡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처칠의 목숨을 놓고 희안하게 다른 사람의 남아 있는 커피잔에다 담배를 비벼끄는 습관을 가진 이란 비밀경찰 대장을 엿먹이는 사건이 있다.

그러다 나중에 스탈린에게 밉보여 들어간 수용소를 탈출하는 과정은 영화보다 더 복잡하고 드라마틱한데, 그 후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에다 모택동까지 실제로 만나는 장면, 그리고 발리에서 유유자적하며 보낸 장장 15년의 세월이 모두 빠진 이유로 이건 영화보다는 반드시 책으로 읽어야 할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유감인 것은 책을 통틀어 유일하게 나오는 음악이자 그의 업적에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오페라 `Nessun Dorma`는 영화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각했던 현대사를 유쾌하게 지나온 어느 100세 노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