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했던 현대사를 유쾌하게 지나온 어느 100세 노인 이야기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열린책들 |
천성이 느긋~하고, 정치와 종교 거기다 사상이나 이념 따위를 싫어하는 `알란 칼손`은 100살이나 먹은 노인이고, 시작부터 양로원의 창문을 넘어 탈출하는 사실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만사는 그 자체로 놔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일들은 일어나는대로, 흘러가는대로 놔둬야 하지. 왜냐하면 만사는 그 자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니까. 거의 항상 그래...
이 노인이 손대는 사건과 지나가는 자리는 무슨 마술을 부렸는지 모든 것이 엉망진창 와당탕 쿵쾅인것 같지만 또 그러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가 잘 정리되어 술술 넘어가니 그저 아니 신기할 따름이로세. 창문넘어 도망치자 마자 벌어진 사건으로 생긴 트렁크 하나 때문에 평생 제대로 사귀지 못했던 또 그럴 새도 없었던 친구(?)들이 하나 둘 엮이면서 늘어가는데 모두가 욕심이 없는건지, 순진한 건지.. 여기서 우리는 인류가 궁극적으로 가져야 할 인간성이 어떤 것인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런 관련이 없고, 동 떨어진 사람들과 사건들이 이 노인 한 명과 그의 즉흥적인 행동을 구심점으로 삼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야기가 연속적으로 창조되니 이를 하나로 잘 엮는 기발함과 삼천포로 왕창 빠져 갈데까지 막장으로 엉뚱하게 흘러가는듯 하면서도 교묘~하게 수습되는 건 어쩌면 아마 이 세상사 만사가 너무 곧이곧대로 또는 심각하게만 돌아갈 필요까지는 없다는 작가의 저변에 깔린 관점이 보여주는 메시지 아닐지.
격동의 20세기 근, 현대사 100년을 관통하는 인생을 살아온 주인공은 역사적으로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장소와 시기에 어김없이 등장하는데... 어려서부터 사환으로 일하며 니트로글리세린 폭약기술을 터득한 실력을 항상 십분 발휘하여 기상천외한 불꽃놀이를 평생에 걸쳐 몇 번 요긴하게 써먹은 그가 겪은 첫번째 역사적인 사건은 `스페인 내전`이었고, 이후 제2차 세계대전부터 본의 아니게 중요한 고비마다 그의 활약(?)이 그림자처럼 펼쳐진다. 알고보니 그가 이 세상 역사 흐름의 열쇠였어~ 이 책을 읽으면서 왜 `화염병`이 그런 명칭으로 불리는지를 알게 되었다.
비록 중남미의 내전이나 베트남 전쟁과는 인연이 없었을지라도 유럽과 미국, 중동을 거쳐 소련과 아시아를 섭렵한 것만으로도 그는 다른 사람들이 누리지 못한 엄청난 행운과 호사를 누린 풍운아였다. 특히 스탈린의 소련 다음에 6.25 한국전쟁 당시의 상황에서 아직 어렸던 김정일을 포함해 김일성 부자를 만나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비록 남한은 등장하지 않지만. 어쨌거나 김정일을 울린 것은 스탈린일까 주인공일까.. 둘 다?
그런 그에게도 휴가라는 것은 있었는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잠시 인생을 정리할 시기가 도래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거기에서도 인연은 계속된다. 거기서 만난 역시 기대할 것 없어보이는 여인은 운이 좋아서인지 그쪽 지역에서 정치적인 입지를 확보해 거칠 것 없이 승승장구 했지만 또 언제나 그렇듯이 일은 예고없이 찾아오는 법. 그러나 사실 그녀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그런 기대를 걸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으니 이 대목을 읽는 순간 바로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과 그 어떤 여인이 겹쳐보이는 건 무슨 랑데뷰 홈런이 이틀 연속으로 나올 데자뷰 우연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런 그의 인생이 행복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말년에는 안식처와 행복을 찾긴 한 것 같다. 하지만 이 끝이 없을 것만 같이 먼 산 보듯 흘러가는 네버엔딩 스토리는 막판까지 갔음에도 더 치고 나갈 기세로 끝난다. 못 말리는 영감님.. 100살이나 먹었는데 이제 좀 참으쇼. 영화는 아직 안봤지만 과연 스크린에서는 어떻게 이야기가 펼쳐질지 자못 궁금하다. 그리고, 이 작품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이번에 새로 나온 저자의 차기작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을듯하다.
이 세상의 그 무엇도 - 어쩌면 인간의 어리석음은 예외일 수 있겠지만 - 영원할 수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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