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6. 30. 15:37

슬픔이 주는 기쁨

슬픔이 주는 기쁨 - 6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청미래


원래 이 책 제목은 `동물원에 가기`였다가 지금은 `슬픔이 주는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여기에는 `알랭 드 보통`이 쓴 수필 9개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수록되어 있고, 동물원에 가기나 슬픔이주는 기쁨이라는 것은 이들 단편의 소제목들입니다.

맨 첫 단편인 `슬픔이 주는 기쁨`은 고독을 선사하는 삭막하고 쓸쓸함이 짙게 베어있는 외딴 장소에서 저자는 왠지 모를 위안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어떤 느낌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기에 어느 정도 공감은 가는 내용이었고,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타고 이륙하는 것을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빠른 상승의 변형으로 인한 결정적 변화에 투영시키며 저자는 높은 하늘에서 보는 새로운 시점을 느낍니다.


각자 마음에 드는 단락이 다르겠지만 `일과 행복`이라는 단편이 제일 눈에 띄었는데 여기서는 사람들이 원래 노동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떠했었는지와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는 동안 그러한 인식이 또 어떻게 변했는지 그리고, 오늘날 능력주의와 세속적 성공으로 대변되지만 그것이 곧 행복과 비교했을때 과연 부자들이 말하는 겉으로 포장된 수식어들과 일치할까..

그러한 오늘날임에도 노동자들은 여전히 권리신장을 위해 투쟁하는 현실이고, 경영진들에게 진정한 목적은 이제 인간이 아니라 돈이 되어버렸다. 최소한의 투자와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 극대화만을 바라는게 합리적인 지상과제이겠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가 빠졌다. 바로 노동자들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고 감정이 있다는 것. 이건 수치로 산출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불가피하게 존재한다. 경기가 좋을 때는 이런 것들이 원활하게 공존이 잘 되다가도 양단간 선택의 시점이 오면 감정은 여지없이 기계 앞에 무너진다. 아직도 여전히 노동자들의 삶이 불안한 이유이다.


성인 남자가 혼자 동물원에 가는 게 이상할까? 선뜻 대답이 쉽지 않아서 생각을 좀 해봐야겠네요. 마지막 단편 `희극`의 내용도 좋았는데 19세기 프랑스 왕을 푸아르(poire, 배)에 비유해 조롱한 그림을 그린 화가가 결국 철창 신세를 지게 됩니다. 그때 했었던 항변이 "정부는 배 모양으로 생긴 모든 것을 체포해야 한다. 배나무 수천 그루의 열매를 모두 투옥해야 마땅하다."였습니다.

유머는 힘없는 민중이 오만하고 독선적이면서 양식을 벗어난 모든 위선적인 것들을 비판하는 수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말이죠. 이것은 또 사람들에게 즐거움도 주면서 은근히 어떤 교훈까지 선사합니다. 특히 만화나 그림은 구구절절 말을 늘어놓을 필요없이 간단하고 명료하게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런 교묘한 공감의 수단은 무엇보다 소임을 잊고 특권을 남용하는 높은 지위의 무리들에게 유용합니다.

인간의 불행의 유일한 원인은 자신의 방에 고요히 머무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 파스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