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8. 5. 23:19

기이하고, 묘한 이야기들 `요재지이` - 포송령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의 3대 기서에 더해 청나라 시대에 포송령이라는 사람이 지은 요재지이는 홍루몽, 금병매 등과 함께 8대 기서에 들어갑니다. 귀신과 여우, 온갖 괴이한 이야기로 꾸려진 대륙의 X 파일이자 수퍼내추럴 한 내용은 500여 편에 이르고, 6편까지 출간된 두꺼운 책이지만 모두가 서로 관련이 없는 단편들이라 따로 떼어 읽을 수 있는 형식입니다.

귀신이나 괴이함을 배격하는 유교 문화권에서 벼슬길이 막힌 암울한 현실을 뒤로 하고, 한 사람의 생애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듣거나 수집한 기묘한 이야기들을 모아 엮었으니 이는 우리가 살면서 TV 드라마나 영화 또는 구전으로 언제 어디선가 한번 쯤 들어본 내용들의 원형을 담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죠.

몇 해 전 무더운 8월의 여름 밤을 4권으로 이루어진 `시귀`를 읽으면서 지냈는데 확실히 여름 밤에 선풍기 켜놓고 이런 종류의 책들을 읽으면서 상상을 하면 나름 등골이 서늘해질 수도 있습니다. 에어컨을 틀었다면 효과는 배가됩니다. 책에 대한 설명은 아래 사진에 더 잘 나와 있으니 생략하고..

1권 중에는 80년대 그 유명했던 장국영, 왕조현이 주연한 귀신과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천녀유혼`의 섭소천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귀신은 기본이고, 도술과 신선, 저승이야기에 무엇보다 제일 많이 나오는 게 여우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역시 시대적인 조류를 뛰어넘는 로맨스는 뒷짐지고, 마른 기침하는 유학 사대부들을 엿먹이는 통쾌한 장치임과 동시에 당시 사회의 부조리와 부패의 역겨움을 기이한 이야기와 그 속에 등장하는 여러 요괴에 빗대 풍자하여 거울처럼 드러내 고발하며 뭇 사람들에게 교훈을 남기고 있습니다.

다음은 책 본편의 뒷편 해제 부분인 `포송령과 <요재지이>`의 일부분 발췌입니다.

역사적인 격동기에 재난과 더불어 살면서 새로운 사회 사상을 시대적 조류로 받아들인, 그리고 개인적으로 불우한 생애를 보내야 했던 작가 포송령은 남다른 사상과 창작의식을 지니게 된다. 포송령의 '고독과 울분', '광기와 치기'는 그 당시 사회가 사대부에게 요구하던 태도와는 다른, 진보적인 사조의 자기 구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포송령은 그의 `요재지이`를 `고분지서(孤憤之書)`라고 불렀다. 그의 '고분'은 현실로 인해 일어난 것이었지만, 한편으론 현실을 향해 발해진 것이었다. 포송령은 그의 시나 글에서 당시 사회를 정의가 창달되지 않는 횡포한 세계라고 통박했다. 그의 붓끝 아래에서는 백성을 괴롭히는 관리가 백정으로 묘사되었고, 호랑이처럼 위세를 떨치는 아전이나 서리들이 사나운 짐승으로, 지방의 토호나 재산가들은 귀신이나 여우, 쥐.새.끼 등으로 묘사되곤 하였다.

포송령이 한창 활동하던 시기의 산동 지방은 여러 차례나 흉년이 드는 어려운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는 자신의 시문에서 유민들이 도로에 가득하고 굶어 죽은 시체들이 길을 가로막는 비참한 광경들을 자주 언급했다. 그러면서 또한 비분강개하여 포악한 정치는 하늘이 내린 재앙보다 더 무섭다는 것을 경고했고, 흉년에 백성들이 굶어 죽은 것은 모두 청나라 왕실의 정치적 부패 때문이라고 설파했다.

왕조시대의 다른 독서인과 마찬가지로 포송령도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하여 현실을 변화시켜 보겠다는 욕망을 가졌다. 그가 지녔던 정치적 이상은 유가 사상의 범주를 뛰어넘지는 않았으나, 고대의 '인정(仁政)'을 이상화시킴으로써 당신의 폭정을 빗대어 공격하는 민주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포송령의 시대에는 과거를 통해 벼슬을 해야만 천하의 제도라는 야망을 달성할 수 있었다.

명청 시대에 관리를 선발하던 과거는 바로 입신양명의 지름길이었다. 포송령은 박학다식했고 재기가 넘쳐 팔고문이란 복잡한 형식이 요구하는 속박에 얽매일 성격이 아니었지만, 추ㄹ세를 위해 부득불 과거에 응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열아홉 살에 처음 동자시에 응했을 때는 당대의 거유 시윤장의 찬사를 받으며 일등으로 뽑힌 그였지만 이후로 다시는 그와 같은 지기를 만날 수가 없었다. 시험장의 시관들은 대부분 눈뜬 장님이나 다를 바 없는 무식꾼이거나 뇌물에 매수된 탐관들이었던 것이다.

시험에 계속 실패하면서 포송령은 세상의 온갖 쓴맛을 다 맛보았고, 쉰한 살이 되어서야 벼슬을 하겠다는 생각을 단념하면서 더 이상 시험을 치지 않게 되었다. 국외자의 위치에 서게 되어서야 포송령은 비로소 과거가 자기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는 길이 아님을 인식했다. 만년에 제남을 유람하면서 냉정한 눈으로 성의 과거 시험을 관찰한 포송령은 자신의 생각을 더욱 굳힐 수 있었고, 이런 생각은 그의 문장과 시에 두루 나타나고 있다.

선비가 일신의 영달을 위해 의기를 죽이고 아부하면서 능욕을 감수한다면 민심을 바꾸고 사람들을 구제하는 국가의 동량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었다. 과거를 통해 달성하려던 포송령의 이상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는 벼슬길이 무망하게 되자 스스로도 이겨내기 어려운 울분에 휩싸였지만, 한편 때를 만나지 못한 자신을 인식했고 또 유자라는 신분이 자신을 망쳤다는 것에 대해 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암울한 현실에 막혀 이상이 깨어지자 포송령은 자신의 인생 목표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세상을 살았지만 이상을 내던지는 짓은 하지 않았고 그저 굳건히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살며 세상에 아부하는 자들을 경멸했다. 그는 세속과 동떨어져 사는 것이 자신의 천진함을 보존하는 길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스스로 자기는 '소광'하고 '광치'하다고 일컬었고, 또 그렇게 보이도록 행동했다.

그는 이러한 광태가 화를 불러온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지만 성격적으로 고칠 수 없다고 버팅기곤 하였다. 이런 성격은 포송령에게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되어 늙어서까지 운이 펴지지 않는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런 기질이 있었기에 그는 기쁨과 슬픔을 모두 잊고 때론 흥겨워하면서 세속의 굴레를 벗어버린채 부지런히 자신의 정신적 자유를 추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요재지이` 안에 구현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