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21. 21:54

<영화 리뷰> `대호`, 호랑이와 명포수의 이심전심

히말라야는 지리산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사시사철 만년설이 덮여 있는데 반해 지리산은 굽이 굽이마다 계곡과 산천초목이 펼쳐져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리의 영산입니다. 그러면서도 역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현장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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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계절마다 빼어난 풍경을 자랑하는 지리산이지만 지금과 같은 겨울에는 또 겨울다운 면모를 보여주니 산 전체가 눈으로 덮힌 경관은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대형 스크린으로 보는 설산은 21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면서 감동도 선사합니다. 1994년 5월 5일 천왕봉에 오르면서 줄곧 눈에 담았던 그 모습 그대로였기에. 어린이 날 등반했던 지리산에 눈이 올 거라곤 전혀 생각도 못했었기에 그 절경을 보면서 감탄 또 감탄을 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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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잡으려는 호랑이는 대략 이러한 스펙. 신분은 산군, 특징은 애꾸.>

하지만, 영화는 경치나 즐기는 그런 낭만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시대적으로도 일제강점기가 배경이고,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호랑이와 이를 사냥하려는 포수대의 목숨 건 한 판이 걸려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조선 땅에 강제로 쳐기어들어온 쪽바리들은 이 신성한 영역에서마저 쪽발스러움을 내세우니 조선 호랑이의 왕을 잡아서 일본으로 가고싶다는 야무진 꿈이라는건데.. 거기에 앞장서는 소좌는 또 조선인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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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장면은 없었는데. 언제 그 자리에 가셨나?>

호랑이 한 마리 잡는데 독립군을 잡기 위해 조직한 군대까지 동원하고서도 엄청난 피해를 입은 일본군에겐 지리산이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을거고, 쪽바리들을 씹어서 해체해주는 대호의 활약을 보며 든 느낌은 통쾌하다기보다는 인간들의 어리석음에 대한 연민? 그리고, 자식 잃은 심정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똑같습니다. 짐승조차 은혜를 갚을 줄 아는데.. 영화는 생각했던 것보다 작품성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어쩌면 이런 영화를 좋아해서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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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물자가 부족하던 시절 먹고 살기 위해, 복수를 위해, 한 몫을 잡기 위해, 전리품을 얻기 위해 저마다 동상이몽을 꿈꾸며 호랑이 잡이에 나섰던 몰이꾼들과 포수들, 군인들이 한 덩어리로 모였던 인간군상들 속에서 주인공 천만덕은 홀로 지키고 싶었던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 가치를 위해 오래 전 손에서 놓았던 총을 다시 잡고, 산을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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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힌 지리산을 배경으로 빛났던 배우들의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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