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믹 게임(the Cosmic Game)`. 인간 의식의 심층에 감추어진 존재의 비밀
코스믹 게임 - 스타니슬라프 그로프 지음, 김우종 옮김/정신세계사 |
우리가 사는 세상을 포함하여 우주의 본질에 가장 근접한 관점과 설명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상대성 이론에서 빛의 속도에 도달하게 되면 시간은 멈추고 뒷쪽 배경이 앞에 보이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구분이 안되는 그러니까 이 세계가 어쩌면 허상일 수도 있다는 것과 양자이론에서 비롯된 현대 입자 물리학에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물체 내부는 대부분이 텅 비어있는 상태임이 밝혀졌다.
또, 저명한 물리학자의 설명에 의하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음악은 악기의 현이 울리는 진동이고, 그것이 소리를 내는 동안은 비할 바 없이 아름답지만 연주가 끝나고 나면 소리는 사라지고, 악기의 현만이 남는다는 것이 있다. 여기서 악기의 현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입자들이고, 연주는 이들 입자들의 조합과 진동이 빚어내는 온갖 물질들이다. 결국 언젠가는 연주가 끝나기 마련이고, 남는 것은 허무하지만 오로지 에너지 입자들 뿐이다.
언제부턴가 리얼리티를 표방하며 실제와 흡사한 경험을 주제로 한 TV 프로그램들이 많아졌다. 그 안에서는 그것이 현실이지만 밖에서 보면 하나의 가상현실이다. 이것은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걸 확대하면 세상의 본질 차원에서 볼때 우리가 사는 이 모든 것 역시 그러한 하나의 가상현실일 수 있다. 그래서 인생이 한바탕 꿈이라든가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말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단지 차이점은 시각, 청각, 촉각, 미각 등이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진다는 것..
세상의 본질에는 최고 수준의 어떤 의식이 있고, 이 모든 세상을 창조하고자 하는 욕구가 이 의식으로 하여금 모든 하위 수준의 창조를 실현시켰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찮은 존재들이 아니라 이 지고의 의식과 일맥상통하는 입장이고, 창조의식으로부터 내려온 방향을 역행해 반대로 상향을 지향하는 상호 보완관계에 있다는 설명은 매우 심오한 무언가를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은 대단히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이며 영적인 통찰들을 제시한다. 수십 세기 동안 베단타 철학, 대승불교와 상좌부 불교, 도교, 수피즘, 영지주의(그노시스), 그리스도교 신비주의, 카발라, 그 외 정교한 많은 체계들은 영적인 철학과 신비 전통 속에서 비일상적 의식체험과 그로 인해 드러난 존재의 차원들을 묘사해왔다. 연구 결과는 의식이 두뇌의 산물이 아니라 존재의 제1원리이며, 현상계의 창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시사한다.
이러한 변성의식과 초개아 심리학에 평생을 바쳐온 저자는 다양한 형태의 참가자들과 수없이 시행한 실험 세션에서 `일체지향적` 의식상태를 경험한 결과를 토대로 서양 의학자들이 그저 일종의 정신병으로 치부하는 이 모든 현상을 치밀한 논리와 반증으로 설명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판단은 독자의 몫일 것이나 나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직관적으로 와닿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현대 과학이 제시한 증거들이 뒷받침을 하고 있고, 무엇보다 그 옛날의 선현들과 뛰어난 수행자들이 남긴 말씀들과도 맥을 같이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의 설명을 읽다보면 이전에 읽었던 `티베트 사자의 서`의 내용이 떠오르며 새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저자 역시 이 책을 예로들며 실험 세션 결과들과 비교하여 원형적 존재들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여기에 따르면 우리가 악이라고 부르며 인식하고 경험하는 어두운 측면이 존재하는 이유와 그 외에도 살아가면서 겪는 신체적, 정신적, 감정적 고통들이나 여러가지 곤란함이 바로 이 땅에서 사는 존재의 본질임을 깨달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힌두` 전통에서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분리된 개체들이 윤회한다는 믿음을 널리 설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브라흐만(Brahman)`이라는 단 하나의 존재, 또는 창조 원리 그 자체만이 실재한다고 가르친다. 온갖 차원 속에 존재하는 분리된 개체들은 이 거대한 하나의 존재가 무한히 변용한 결과일 뿐이고 우주의 모든 분리와 경계는 변덕스러운 환영에 불과하고 오직 `브라흐만` 만이 참된 실재이다.
절대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전생의 사건들은 그저 또다른 수준의 환영이자 마야의 연극에 지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모든 생명은 실체가 없이 비어있으며, 하나의 의식이 변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 이 현상계는 세부적인 면까지 매우 그럴듯하다. 이것은 연극이나 영화 등과도 비슷해서 그것들이 너무나 완벽하게 연출되면, 우리는 눈앞의 장면이 하나의 쑈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마치 진짜처럼 몰입한다. 훌륭한 배우들도 맡은 배역에 집중해 연기할 때는 자신의 진짜 정체성을 잊곤 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어쨌든 이처럼 우리의 진정한 본성에서 분리되어 세상의 본질과 실체를 모르며 그 장막 너머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신성과 만물의 공성에 대한 자각은 인생이나 삶에서 일어나는 혼란을 헤쳐나가는데에도 유용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여러가지 방법을 통한 일체지향적 상태를 체험하는 것은 우리의 감각적 인식을 섬세한 수준으로 향상시키기도 한다. 융의 말을 따르자면, 우리는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의 겉모습에만 매달려서 삶을 꾸려나가면 안된다. 내적탐구가 집단 무의식에서 건져올린 깊은 지혜와 물질계의 실용적 지식이 빚어낸 창조적 결합에 의해 우리의 의사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전략은 일상속에서 온전히 존재하면서도 자신의 신성과 존재의 신령한 차원을 깨닫도록 도와줄 수 있고, 이처럼 삶의 두 가지 측면을 통합하고 융화하는 능력은 신비 전통들의 가르침에서도 가장 높은 목표에 속한다.
일체지향적 상태의 연구들은 '궁극의 철학'의 기본 사상과 맥을 같이하면서, 소위 '영적 지성(spiritual intelligence)'에 의해 우리 삶의 수준이 결정된다고 말한다. 영적 지성은 자신의 본성과 현실에 대한 심오한 형이상학적, 철학적 이해를 일상 속에서 발현해내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형태의 지성을 성취하는데 필요한 심령적 변화의 특징, 우리의 지향점, 영적 성숙을 촉진하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이 책에서 살펴볼 기회가 있다.
역사상의 영적 스승들은 물질적 추구가 만족과 행복, 그리고 내적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한다고 한결같이 말해왔다. 극심해지고 있는 세계적 위기, 도덕성의 타락, 산업사회의 물질적 풍요에 수반되는 부작용의 심화는 이 오랜 진리를 뒷받침하고 있다. 신비 문헌들은 내면으로 주의를 돌려 자신의 마음속에서 해답을 구하고 깊은 심령적 변성을 체험하는 것만이 인류를 괴롭히는 실존적 불안의 유일한 치유책이라고 공통적으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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