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트니 휴스턴 (Whitney Huston ; 1963 ~ 2012)
... 중학교 3학년 때 영어시험에 듣기평가 항목이 포함되어 있었던 탓에 시험을 치는 날이면 학생들이 저마다 집에 있는 카세트 라디오 큰 걸 경쟁적으로 가지고 오던 때가 있었다. 그 날도 오전에 시험을 끝내고, 오후 수업이 있는지 없는지 말만 무성하던 차에 점심 도시락을 먹은 후 따뜻한 날씨에 조금씩 나른함이 몰려 오던 2시쯤 급우 하나가 가져온 라디오를 틀었고, 마침 MBC FM 라디오에서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두 시의 데이트 김기덕입니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쳤으나 선생님은 오지 않아서 학생들은 조금 산만했고, 분위기는 느슨해져 있었는데 DJ 김기덕씨의 초반 멘트가 끝난 후 갑자기 신나는 비트의 흥겨운 음악이 조용해진 교실을 때렸으니 그때 나온 노래가 휘트니 휴스턴의 I wanna dance with somebody였다. 라디오를 튼 날라리 기질의 그 친구는 바로 걸상 위로 올라갔고, 때를 맞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의 반 전체가 일어나 시험이 끝난 해방감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몸을 흔들기 시작하는 진풍경이 일어났다.
춤이라곤 출줄 모르는 중딩들이 막춤을 추기 시작하니 거의 집단 히스테리 수준인 광란의 도가니가 벌어졌는데 그닥 오래가진 못했다. 뒤늦게 해당 과목 선생님이 앞문을 열고 들어오며 짧지만 강렬한 파티는 막을 내렸다...
지금의 소녀시대 정도 나이였던 휘트니 휴스턴이 I wanna dance with somebody로 수상식에서 상을 받을 때의 자유분방하고 호탕한 웃음으로 수상소감을 말하며 노래를 하는 모습을 본 뒤로 Greatest Love of All, All the Man that I Need, Didn't we almost have it all, 1988년 서울올림픽 때 불렀던 One Moment in Time 등등 아메리칸 팝 음악 역사에 길이 남을 주옥같은 명곡들을 차례로 히트시키며 80년대 팝 디바 중에서도 여제의 위치에 올라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1993년에는 케빈 코스트너와 함께 영화 `바디가드(Bodyguard)`에 주연으로 출연해 연기를 했고, 타이틀곡 I will always love you를 비롯해서 OST를 불렀던 그녀는 그 뒤 결혼 생활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었고 그로 인해 순탄치 못한 인생을 겪으며 급기야 마약에 손을 대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가끔씩 들려오는 그녀의 소식에 팬들은 충격과 안타까움을 표했고, 한때 새벽에 찍힌 사진이 공개되어 구설에 오르기도 했지만 배철수씨는 이것에 대해 "누구나 새벽까지 안 자고 있다가 사진을 찍으면 그렇게 나온다. 사진 한 장 가지고 모든 것을 단정짓지 말라."는 식으로 두둔하기도 했지요. 아마 그녀를 사랑하는 팬들이 다 그런 심정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살고 있는 저택의 화장실 모습이 담긴 사진에서 코카인에 쩔어 지내는 흔적들이 발견되며 세간은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지만 제작년인가 다시 재기를 꿈꾸며 새 음반을 준비하고, 콘서트를 위해 내한공연을 하는 그녀에게 사람들은 기대와 응원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어제 그녀는 운명을 달리했고, 세상은 그녀의 죽음을 뉴스로 듣게 되네요. 하지만 80, 90년대 팝의 여왕이라는 호칭은 언제까지나 그녀의 타이틀로 남아 있을 겁니다. 오늘 비오는 아침에 오랫동안 손대지 않았던 그 옛날의 LP 판을 다시 한 번 꺼내봅니다. 예전에 턴 테이블에 올려놓고 참 많이 들었던 앨범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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