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18. 16:43

`10월 유신`의 목적이 국가안보였나, 장기독재집권이었나.


‘10월 유신’ 안보 내세우더니…박정희 정권, 북에 두차례나 ‘사전 통보’

이후락 중정부장-북 인사 접촉 ‘미 비밀문서’ 등 공개
박명림 “겉으론 안보강화…뒤론 장기집권 작업” 비판

유신 쿠데타에 대한 박정희 정권의 명분은 국가안보 강화였다. 40년 전인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비상계엄령 선포문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세력균형 관계에 큰 변화가 일고 있어서 한국의 안보에 위험스러운 영향을 미칠 것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유신독재 시절 퍼스트레이디 구실을 했던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도 그동안 “유신 없이는 아마도 공산당의 밥이 됐을지도 모른다”(1981년 10월28일 일기)며 같은 인식을 보여왔다. 박 후보는 최근 5·16과 유신 등에 대해 “헌법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공식 사과했다.

1972년 10월31일 주한미국대사관이 국무부에 보낸 비밀문건.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박성철 북한 부수상을 만나 “남북대화를 지속적이고 성공적으로 지속하기 위해서는 정치 시스템을 바꾸는 게 필요하다고 우리 정부는 생각한다”고 말해 유신정권 출범을 북한에 미리 알려준 사실을 미대사관 쪽이 본국에 보고한 내용.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실제로는 북한 당국에 유신 내용을 두 차례나 사전 통보했다. 이러한 사실은 주한미국대사관이 본국에 보낸 비밀전문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외교문서 등에서 드러났다. 1972년 10월31일자 미국 대사관이 국무부에 보낸 비밀문건(2급·secret)에 따르면,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10월12일 박성철 북한 부수상을 만나서 “남북대화를 지속적이고 성공적으로 지속하기 위해서는 정치 시스템을 바꾸는 게 필요하다고 우리 정부는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이 비밀전문은 “남북조절위원회 남쪽 실무대표인 정홍진이 계엄선포 하루 전인 10월16일 북쪽 실무대표인 김덕현을 판문점에서 만나 명시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을 통보했다”고 적었다.

지난 2009년에 공개된 동독과 루마니아, 불가리아의 북한 관련 외교문서에는 이후락이 남북조절위원회 북측대표인 김영주에게 “박 대통령은 17일 북한이 주의해서 들어야 할 중요한 선언을 발표할 것”(10월16일)과 “헌법 수정을 통한 대화의 법적 근거를 만들 것”(10월18일)이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적혀 있다.

미 국무부 문서를 발굴했던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17일 “이 자료들은 박 정권이 겉으로는 공산화 방지, 즉 국가안보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북한과 내통하면서 장기집권을 위한 유신체제를 구축해 나간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실제로 남한의 유신체제에 맞춰 북한도 김일성 유일체제를 구축했다. 공교롭게도 유신헌법과 북한의 사회주의헌법(1972년 헌법)은 같은날(12월27일) 제정됐다.

한겨레 / 김종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