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 3. 15:07

<역술열풍> 희망찾아 운세보는 불안한 청춘들

2010년 경인년(庚寅年) 새해가 힘차게 밝았다. 새해도 경기불황의 그늘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운세를 보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특히 20~30대 젊은층에서 점을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직장이나 결혼 문제로 고민하는 젊은 남녀들이 새해를 맞아 답답해진 마음에 사주팔자를 따져가며 점을 보는 것이다. 새해벽두에 본다는 전통 토정비결로 승진운을 가늠해 보고 타로점으로 소개팅 성공여부를 가리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6명은 올해 사주, 궁합, 토정비결 등 운세 서비스를 받아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절반은 돈을 지불했다. 시장조사기업 '엠브레인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20세 이상 남녀 109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운세 서비스 이용 행태와 비용, 태도 조사' 결과에서다.

'엠브레인트렌드모니터'에 따르면 응답자의 64.6%가 운세 서비스를 받아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 중 47.1%는 돈을 낸 것으로 조사됐다. 재수생 박모씨(22)는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꼭 입학해야 하는데 걱정"이라며 "고민이 있을 때마다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점집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경인년 새해가 밝았어도 극심한 취업난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상황은 취직을 하지 못한 20대 뿐만 아니라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도 큰 걱정거리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올 한해 운세를 점쳐본다.

서울시내 대학교에 재학 중인 김모씨(28)는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휴학을 했다. 이 기간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등 취직을 위한 노력을 더욱 기울였다. 하지만 새로운 한해를 맞아 불안한 마음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과연 자신의 선택이 옳은지 언제쯤 취업이 가능할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친구의 소개로 압구정의 '토정비결' 점집을 찾았다. 역술가는 "바쁘게 움직여야 살 팔자이고 관련 직종을 잘 선택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씨는 "일단 올해 사주가 나쁘지 않다는 소리를 듣고 그나마 위안을 찾았다"며 한시름 놓았다.

무역업에 근무하는 이모씨(32)는 최근 처음으로 점집을 찾았다. 평소 회사 분위기와 일에 적응하지 못했던 터라 이직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회사 동료로부터 논현동의 유명한 점집을 소개 받고 이직과 관련한 운세를 봤다. 이씨는 역술가로부터 "지난해보다는 올해가 더 실속있다"며 "디자인적인 감각도 좋고 무엇보다도 야망이 높은 사주라 새로운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씨는 "운세를 보니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던 것 같다"며 "올해는 본격적으로 이직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결혼과 이성 문제로 고민하는 젊은이들도 운세를 통해 자신의 결혼운과 애정운을 살펴보기도 한다. 이들은 주로 역술인을 찾아가기 보다는 사주카페나 타로카페 등을 많이 찾거나 인터넷 사주사이트를 기웃거린다. 박모씨(29·여)는 2006년 남자친구를 만났다. 만날 때 크게 다툰 적이 없었고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단순한 말다툼으로 지난해 3월 헤어지기로 결심했다.  박씨는 돌이켜보면 한순간의 감정 때문에 충동적으로 이별통보를 했다. 헤어진 이후 남자친구를 계속해서 그리워했다. 결국 박씨는 유명한 인터넷 사주사이트를 방문해 자신의 연애운을 살펴봤다. "연애에서 감정과 분노조절이 중요한 사주이며 무엇보다도 차분한 마음이 연애를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박씨는 "일단 점괘에 나온 것처럼 차분한 마음을 가지면 좋을 일이 있을 것 같다"며 희망을 가졌다.

회사원 조모씨(31)는 연애다운 연애를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 조씨는 대학 시절 선후배들과 몰려다닐 땐 "연애는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다"며 무시하고 다녔다. 직장인이 되서도 "일이 먼저지 연애는 나중"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주위 사람들도 "어떻게 연애 한 번 못해 봤냐"고 핀잔 줄 때도 있지만 조씨에게는 대수롭지 않았다. 막상 서른이 넘자 불안이 닥쳤다. 부모님도 "만나는 사람은 없냐"며 압박을 하기 시작했다. 조씨는 친구들과 함께 강남의 사주카페를 찾아 타로점 등을 보며 결혼운을 꼼꼼히 물었다. 점쟁이는 "올해는 여복이 더 강해지는 건 사실"이라며 "이성관계에서 상대에게 좀더 대범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면 연애와 결혼에 영양가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씨는 "이 점대로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지만 일단 마음만큼은 홀가분하고 가벼워 진 것 같아 만족스럽다"고 밝혔다.

이밖에 올해 자신의 건강운, 재물운, 학업운 등을 손금이나 관상, 이름풀이 등을 통해 궁금증과 심리적 불안감을 해소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20~30대 젊은 세대들이 연초에 점을 보는 것은 운세 속에서라도 희망을 찾고 위안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뉴시스 / 배민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