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7. 21:45

뇌를 살릴 것인가, 바보로 만들 것인가.

어릴 때는 아무래도 감성 가득한 아날로그가 낫지 싶네요.

 

 

디지털 치매
만프레드 슈피처 지음, 김세나 옮김/북로드

TV·게임·인터넷·스마트폰에
어린 시절 중독땐 뇌 기능 손상

외국어·운동·악기연주 등
신경세포 늘어나는 학습해야
뇌력 증가하고 수명도 늘어

국가는 왜 디지털 남용 방치하나
미성년자는 투표권 없어 무신경

 

 

디지털 치매. 독일 심리학자·뇌과학자 만프레트 슈피처는 이 말을 제목으로 단 자신의 책(Digitale Demenz)에서 이를 “우리 후손들을 완전히 바보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디지털 치매는 컴퓨터, 스마트폰, 인터넷, 소셜 네트워크서비스(SNS), 온라인게임, 디브이디(DVD) 등 디지털 기기와 소프트웨어의 과용·남용으로 기억력·학습력·사고력이 떨어지고 뇌의 기능 자체가 손상당한 상태를 가리킨다. 한마디로 ‘바보화’다.

그는 이 말의 탄생지인 한국 학생들의 무려 12%가 인터넷 중독상태라는 교육과학기술부의 2010년 발표를 여러 차례 지적했다. 슈피처는 매주 평균 29.2시간을 인터넷을 하며 보내는 사람을 인터넷 중독자로 분류했는데, 독일의 경우 14~24살 연령대는 2.4%, 14~16살은 4%가 그에 해당한다고 했다. 하루 평균 7시간 30분을 미디어 사용에 쓰고 있다는 그들의 중독률이 최근 급상승하고 있다며, “아빠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으면서 왜 아무것도 안 하셨어요?”라는 원망을 나중에 자식들한테 듣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것이 그가 <디지털 치매>를 쓴 이유 가운데 하나다.

<디지털 치매>의 핵심 내용은 그가 작성한 한 장의 그래프(아래)에 압축돼 있다. 그래프의 가로축은 나이(수명)를, 세로축은 뇌기능의 형성 정도(뇌력)를 가리킨다. 끝에 화살 표시가 붙어 있지 않은 중심 포물선은 정상적(일반적)인 사람들의 뇌력과 수명의 상관관계를 나타낸다. 예컨대 유년기에 텔레비전이나 디브이디 등에 너무 빠지면 포물선이 금방 아래로 처진다. 이에 비해 2개 국어 구사를 위한 어학 공부를 열심히 한 아이의 뇌력은 정상 포물선보다 더 높은 곳을 향해 왼쪽으로 가파르게 상승한다. 그래프는 더 높고 큰 포물선을 그리는 쪽이 뇌력도 좋고 오래 사는 것으로 설정돼 있다.

그다음 단계에서 비디오 게임에 빠질 경우 그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같은 증세를 보이며 학교생활이 난조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대신 그가 손가락셈 놀이 등 두 손을 활용해 직접 세상을 파악하고 움직이는 쪽을 택했다면 더 큰 포물선을 그릴 것이다. 컴퓨터게임에 빠질 경우에도 학습시간 부족과 잘못된 식습관으로 이어져 음악과 스포츠·연극 쪽을 택한 아이와는 다른 포물선을 그리게 된다.

“학습에 따른 뇌의 변화, 그리고 이것이 유치원과 초·중·고, 대학교에서 의미하는 바를 20년 이상 연구해왔다”는 뇌과학자 슈피처의 <디지털 치매>가 설득력을 갖는 것은 학문적 실험 결과나 자료들로 이런 주장들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그는 영국 런던 시가지 구석구석을 알고 있어야 하는 택시기사와 그럴 필요가 없는 버스기사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택시기사 면허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의 뇌 속 해마가 커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대뇌피질 아래 관자엽 안쪽에 있는 해마는 위치 파악과 길 찾기를 관장하는데, 학습 즉 활용을 하면 할수록 활성화되면서 그곳 신경세포들이 자란다. 저글링을 배우는 사람은 시각적 운동을 처리하는 뇌의 부위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은 왼손 손가락을 담당하는 뇌의 부위가 커진단다.

인간 뇌에는 약 1000억개의 신경세포가 있고 각 신경세포는 최대 1만개의 연결부(시냅스)를 갖고 있어 시냅스 수가 약 1000조개나 된다. 예전엔 인간 뇌세포는 어릴 때 완성돼 더는 늘지 않으며 오히려 매일 1만개씩 사멸하는 걸로 알려졌으나, 최근 쥐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해마에서 날마다 5000개에서 1만개에 이르는 신경세포들이 새로 형성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슈피처는 학습의 결과 새로 생겨나는 신경세포들이 일정한 기능을 하려면 기존 신경망들과 연결돼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다시 사멸한다고 했다. 이 연결 역시 상당한 부하가 걸리는 학습의 힘을 통해야 한다. 대뇌피질은 새 뉴런이 형성되진 않지만 그것과 연결된 해마의 변화로 구조가 바뀐다고 한다.

그러니까 인간은 학습을 통해 뇌를 바꿀 수 있다. 온라인 게임 등에 탐닉하면 학습시간을 빼앗기고 사고력이 위축된다. 그것은 기성 지식을 그저 연결할 뿐인 단순한 스쳐가기 같은 것이어서 뇌력 증강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구글 검색 역시 그것을 활용할 지적 토대가 마련돼 있지 않는 한 뇌력 향상에 도움이 안 된다. 뇌는 이미 완결돼 있어 언제든 찾아서 쓸 수 있는 과제는 쉽게 잊어버린단다. 단순 검색 외에 인터넷 정보 짜맞추기, 베끼기, 스마트보드를 활용한 어린이 학습도 정보처리 깊이가 얕아 뇌력 증강엔 소용없고, 동시에 여러가지 일을 하는 멀티태스킹도 오히려 마이너스라고 슈피처는 주장한다.

청소년기에 텔레비전을 많이 본 사람들은 성인이 됐을 때 최종 학력이 평균적으로 많이 떨어진다. 몇 개월에 걸쳐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을 갖고 놀게 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 사이의 문자 해독력 비교테스트 결과는 하지 않은 쪽의 언어 학습력이 월등히 높았다. 언어능력은 자기 통제력과도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데, 우울증과 신경증, 스트레스, 불면증, 중독 등도 자기 통제력을 상실할 때 악화된다고 한다.

다시 그래프를 보면, 지속적인 온라인 이용은 중독과 수면 부족을 부르고, 운동부족으로 과체중을 야기한다. 멀티태스킹을 택하면 포물선은 아래로 처져서 실업과 질병, 사회적 퇴보, 고립, 우울증, 치매, 그리고 사망으로 이어진다. 그것 대신 공동체와의 유대감을 높이고 자원봉사 등 의미있는 사회적 활동을 하고, 웃고 노래하는 등 즐거운 감정을 유지할 경우 포물선은 더 높이 더 멀리 나아간다. 2개 국어를 구사하는 뇌력 소유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치매(알츠하이머)에 걸리더라도 증세가 평균 5.1년이나 늦게 나타난다고 한다.

치매환자가 50만이라면 뇌력 증강만으로 5년간 250만명의 치매환자 발생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인생 출발지점부터 정신력(뇌력)이 높이 올라가면 추락시간도 오래 걸린다는 얘기다. 따라서 아동·청소년기 디지털 과용·남용을 막아야 개인도 국가도 산다는 얘기를 그는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 관련업계, 업계 눈치는 보면서 투표권 없는 미성년자에겐 신경 안 쓰는 정치가들, 정부, 어용학자들, 한통속의 언론 때문이란다.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뇌 연구자라라는 슈피처는 지금 울름의 대학정신병원 병원장 겸 신경학센터 소장을 맡고 있고, 미국 하버드대 객원교수로도 가 있었다. 그는 전에도 폭력적 영상미디어가 폭력성향을 부추긴다는 <스크린을 조심하라>는 책으로 독일 학부모와 교사들에게서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청소년들의 과잉행동장애나 자살, 성범죄·폭력범죄 급증도 디지털 미디어 과·남용과 무관하지 않다고 슈피처는 지적한다. 독일 뇌과학자 얘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겠지만, 무시하기는 더욱 어려워 보인다.

한겨레 / 한승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