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2. 14:08

기문둔갑(奇門遁甲)

원래 `기문둔갑`은 전쟁터에서 적을 더 많이 죽이기 위한 방편이자 병가(兵家)의 술수였다. 그 이름도 처음엔 `음양술`로 불려지다가 나중에 `육갑`이니 `둔갑`으로 바뀌기도 했다. 그 옛날 크고 작은 수많은 국가들이 서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화살과 창, 칼을 든 대군들이 뒤엉켜 싸우는 전쟁으로 해가 뜨고 지던 정복의 시대에는 승패란 곧 국가의 흥망과 직결되었다.

따라서 개개인보다는 전체가 우선시되었고, 어찌하면 적을 더 많이 죽이고 전쟁에서 승리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가 병행되었으며 이로인해 병법과 기문둔갑술이 크게 주목을 받게 되었다. 자연스레 하나의 학문으로 계승, 발전되었을뿐만 아니라 `제왕학`이라는 별칭까지 얻게 되었으니 그 학문의 위치를 가늠해볼 수 있다.

상상해 보라.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강처럼 흐르는 무시무시한 벌판의 광경을... 힘쎄고 싸움을 잘하는 장수는 적을 여럿 죽일 수 있겠지만, 기문둔갑을 통달한 군사(軍師)는 시와 방위를 가려 이렇듯 수 만이 넘는 적들을 물리치는 위력을 발휘한다.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기문둔갑의 대가들은 그 옛날 주나라 무왕과 함께 은나라를 몰락시킨 `강태공`을 비롯, 한량에 불과했던 유방을 도와 중국을 통일한 한나라의 `장량`, 인지도가 최고이자 너무나도 잘 알려진 그러나 유일하게 뜻을 이루지 못했던 `제갈공명`, 그리고 주원장을 도와 명나라를 건국한 일등공신 `유백온` 등이 있다.

세월이 흘러 세상이 어느 정도 안정됨과 동시에 여러가지 제도가 정착하고, 백성들의 삶이 나아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인식에 개인의 존재감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면서 음양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서서히 개인의 운명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오행술, 자평학, 자미두수, 육효, 육임 등의 학문이 성장하게 된다. 유백온조차 말년엔 개인의 운명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 유명한 `적천수`를 집필하기도 했다.

기문둔갑에도 크게 `수(數)기문`과 `법(法)기문`이 있다. `법기문`은 부적이나 주문을 비롯해서 축지법을 쓴다든지 바람을 부르고 비를 뿌리며 변신술이나 맹수들을 다스리는 신비한 술수를 말하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것이 거의 없다.

그래서 보통 `수기문`을 많이 공부하는데, 그 근본 이론은 하늘을 운행하는 별의 위치를 살피고, 땅의 상태를 파악하며, 각 신들(八代神將)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참조하여 사람의 나아갈 길을 가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느 때 어느 방향의 상태가 어떤지를 알고서 `취길피흉`이라고 하는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가 있는 것이다.

전쟁이 뜸해진 후대에도 이 학문은 계속 발전하였고, 그 영역을 넓혀 나갔는데 앞날을 예측하여 길한 것은 취하고, 흉한 것은 피하는 점사(占事)의 도구로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다. 이러한 학문을 일러 `연국 시가기문(煙局 時家奇門)`이라고 한다.

한편 이 기문둔갑은 우리나라에도 전해지게 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학문이 독특하게 연구, 발전되어서 개인의 사주를 보는 `기문사주`의 새로운 영역으로 성장하여 하나의 독보적인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